日/일본 여행기 7차

자체휴강 일본여행기 - 4일 교토 오하라2 (잣코인寂光院1)

同黎 2015. 1. 18. 00:24



잣코인 가는 길에 겐레이몬인의 무덤(建礼門院陵)이 있다.

찬찬히 설명하겠으나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딸, 타카쿠라천황의 부인, 안토쿠천황의 모친이고

잣코인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된 인물이다.


우리는 잣코인 방향으로 간다.


무덤 입구



오하라 서릉이라고 불리는 겐레이몬인의 무덤

중세 이후 대부분의 황족 능이 그렇듯 단촐하다.


오하라의 여인들은 오하라메라고 부른다.

오하라는 유배자들의 고장이고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오하라메는 땔감을 지고 하루종일 걸어 교토에 그것을 팔고 곡식을 사서 돌아오는 일을 매일 했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상품이 되어 기념사진 패널 속에서 보이지만


나도 하나


정씨도


강씨도

주변 지도를 보는 중


오하라의 행행이라는 제목의 가요를 설명하는 설명판

이 곳으로 유배당한 겐레이몬인을 그리는 노래라고 한다.


이제 드디어 잣코인(적광원, 寂光院) 입구에 도착


천황가를 상징하는 무늬가 새겨진 문짝


들어가자


눈이 오면 아름답다는 설명판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입구 앞에는 오하라의 명물인 쯔게모노(절임)을 파는 가게가 있다.


들어가는 길 


계단 위에 산문이 보인다.


작고 아담한 문이다.


산문 아래 계단 중간에 있는 작은 정가 앞에 잣코인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보인다.

잣코인의 창건시기는 알 수 없다. 성덕태자 창건설, 구카이(공해) 창건설 등이 있지만

현재 잣코인에서는 겐레이몬인의 창건설을 믿고 있다.

겐레이몬인은 무사정권의 첫번째 집권자였던 다이라씨의 수장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딸로

타카쿠라천황(고창천황)에게 시집가서 안토쿠천황(안국천황)을 낳았다. 타카쿠라 천황은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압박으로 사실상 정권을 놓친 뒤 3살짜리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요절하였다.

그러나 다이라씨 일족은 미나모토 요리토모 등 미나모토씨 일족에게 단노우라 전투에서 패하고

겐레이몬인과 안토쿠천황 등은 배를 타고 바다로 피신했다가 모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겐레이몬인만 살아 나아 이 잣코인에 유폐되었고

 비구니가 되어 평생 남편과 아버지, 아들의 명복을 빌며 살았다고 한다.

다이라씨 일족의 일대기를 담은 헤이케 모노가타리에는 후에 타카쿠라천황의 아버지이자

안토쿠천황의 할아버지인 고시라카와 천황(당시는 퇴위 후 출가했으므로 법황)이

겐레이몬인을 찾는데 이 때 겐레이몬인이 제행무상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유명하다. 


잠시 이야기를 하며 정자에서 쉬는 중


지붕에 이끼와 고사리가 자란다.


팜플렛을 들여다 본다.


이런 감각은 참... 


천정


정자 앞의 노지


정자 뒤의 작은 연못

출입금지란다


멀리 건물이 있는데


뒤에 숙소로 쓰는 건물인가 보다.


이야기 듣는 애들

나랑 다닐 때 일본사를 잘 모르면 왜 오는지 모르는 곳이 많다.



이제 정자를 나선다.


이제 본당 앞으로 왔다. 본격적으로 잣코인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