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8일 교토 라쿠난1 (센뉴지泉涌寺1)

同黎 2017. 8. 24. 22:44



8일째 아침

오늘은 교토 동부를 훑는 날이다.

킨테츠를 타고 출발


조금 늦게 나와서인지 비교적 한가하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

도후쿠지역 하차


센뉴지는 도후쿠지역에서 오르막길로 10~15분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습한 날에는 꽤나 고역이다.

총문을 지나 대문에 도착. 센뉴지는 총문과 대문 사이의 도로가 있고 그 맨 위에 본사가 아래로 내려오며 말사들이 늘어서있는 구조이다. 그래서 보통 맨 위의 센뉴지부터 천천히 내려온다.


센뉴지는 세 번째이다.



센뉴지(천용사, 泉涌寺)는 진언종 천용사파의 총본산이다. 초장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은데 구카이가 처음 세웠다는 설과 후지와라씨가 헌납한 별장이라는 설이 있다. 어쨌든 헤이안시대 초기에 세워져서 후기에는 거의 황폐화되었다가 가마쿠라시대에 크게 부흥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가마쿠라시대에 송 유학승에 의해 재건되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송풍으로 재건되었고, 오닌의 난으로 전소되었지만 원래 양식대로 복구되었다. 또한 곳곳에 황실에서 하사해 이축한 건물들이 가득하다.


센뉴지는 황실과 대단히 관련이 깊어 어사(御寺, 미테라)라고 불리는데, 센뉴지 뒤편에는 수많은 천황과 황족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도시대의 고미즈노오천황부터 메이지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천황까지는 모든 천황이 이곳이 묻혔다. 그래서 신불분리가 심각했던 메이지~쇼와시대에도 센뉴지의 모든 건물의 축조와 수리비용은 궁내청에서 대었다고 한다.


대문은 중요문화재로 교토고쇼에서 이축한 것이다.


여기서도 꽃꽂이 축제가 한창이다.


대문 바로 앞에는 불전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왼쪽으로는 양귀비관음당과 보물관이 있다.


양귀비관음당 푯말


건물 앞 작은 정원


관음당


이른바 양귀비관음이라고 불리는 남송시대의 이 관음상은

센뉴지 중건 시에 중국에서 모셔온 것으로 생각된다.

 

상호

오랫동안 100년에 한 번 공개하는 비불이었다가 전후 일반공개했다.

비불이었던 관계로 색이 그래도 남아있다.


머리 위의 보관이 엄청 화려하다.


안내문


건물 옆의 정원


동백


보물관인 심조전

매번 전시유물이 바뀐다.


후스마에


마키에 연상


천황가에서 헌납한 것들


변재천상

에도시대


본래 히덴인 소장품


길상천상


헤이안시대




여러 회화작품들



목판도 있다


이제 불전으로 내려간다.



점점 커지는 불전

에도막부 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츠나가 만들어 바친 것으로 중요문화재이다.


욕실

원래의 자리는 아니고 이축해온 것이지만 에도시대의 건물이다.



욕실 정면


불전의 모습



내부에 들어가볼 수 있다.


석가·아미타·미륵 삼세불을 모시고 있는데 진언종 사찰보다는 차분한 선종사찰을 보는 듯한 내부구조이다.


불단 뒤편 벽면에 마치 한국처럼 관음보살도가 그려져있다.


본전 옆의 수옥형


센뉴지라는 이름의 근원이 되는 샘이 솟아나는 곳이다.


지금도 물은 계속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쪽에는 시조천황 외 24명의 천황릉의 참도라는 표석이 서 있다.

천황을 25명이나 모셨으니 어마어마하다.


수옥형 안내문

역시 에도시대의 건물이라고


원래 물이 있어야 하는데 많이 말라있다.


뒤편에 보이는 공양탑


샘이 흘러나와 고인 연못


이제 불전을 지나 뒤편 사리전으로 간다.


뒤편으로 본방과 고어좌 등이 보인다.


여기도 단풍이군

어쩐지 교토의 단풍은 좀 처연한 느낌이다.


불전의 창문

선종풍이다


사리전은 부처의 치아사리를 모신 곳이다.


본래 에도시대 초기 교토고쇼의 건물 중 하나를 이축한 것이라고 한다.

어소 건물들은 대부분 중요문화재인데 이곳은 아직 교토부문화재이다.


안내문


내부에는 1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다.


측면에서 본 사리전

이제 올 때마다 놓치고 지나간 천황들의 무덤인 월륜릉을 보러 뒤편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