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1차 東京

東京紀行 - 1일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

同黎 2018. 3. 16. 07:43



시간이 아까우니까 아사쿠사에 나왔다.


아사쿠사역에서 나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저 건물은


아사쿠사 문화관광안내센터이다.

전망대도 있다고 한다.


탁발승


다들 사진찍는 중


힘들다


그 유명한 뇌문


태풍 때문인지 사람이 많지는 않다.


뇌문 정면

하지만 모두 다 허기가 너무 들었기 때문에 밥부터 먹기로 했다.


아사쿠사 상점가


안으로 들어가본다.


소바 집이 바로 눈에 띈다.


식사시간이 좀 지난 2시였기 때문에 얼른 들어간다.


소바 한 그릇에 천 엔이 넘으니 싼 편은 아니지만 도쿄에다가 관광지니까


입갤


입갤


카드 따윈 받지 않는다.


메뉴 고르는 중

뭐가 좋냐


다들 비 때문에 지쳤다.


종류별로 시키기로


이것저것 종류별로 시켜봤다.


마와 계란이 들어간 자루소바


기본 자루소바


에비텐동


나는 자루소바와 에비텐


산채소바


일본 나무젓가락


맛있다



밖으로 나오니 황금색 똥이 보인다.


아사히 맥주 본사이다.


센소지 경내

원래 거대한 경내였던 곳이 메이지시대 일부 경내지를 빼앗겨 공원화되면서 지금처럼 줄었다.

그나마도 도쿄대공습 때 피해를 받아 본방인 전법원을 제외하고 전소되어 재건한 것이다.

그래도 이만큼 크다.


아사쿠사의 상징 카미나리몬(뇌문)

본래 문은 풍뇌신문으로 풍신과 뇌신을 모셨다.

본래 헤이안시대 때 무사시노쿠니의 국사인 타이라노 키미마사가 지었다고 하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화재와 재건을 반복했다. 특히 에도시대 때 센소지가 서민신앙의 중심이 되면서 풍속화 등에 많이

등장하는데 1866년 화재로 사라지고 한동안 재건되지 못했다. 이후 박람회나 전승식 때

가설되었으나 러일전쟁 종전 후 개선문으로 다시 세워졌다. 이후 도쿄대공습으로

불탄 것을 1960년에 마츠시타 전기산업, 현 파나소닉에서 재건한다.


카미나리몬의 상징인 거대한 대등은 700kg이라고 한다.

파나소닉에서 만들었으며 뼈대는 대나무, 종이는 화지로 불을 켜는 것 외에는 모두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현재의 등은 2003년 봉납된 것이라고 하며, 직경 3.3미터, 높이 3.9미터이다.

오늘은 태풍 때문에 접어놓았다.


안내문


센소지(浅草寺, 천초사)는 본래 천태종 사찰이었으나 전후 독립하여 성관음종이라는 종파를 선언했다.

전설에 따르면 7세기 초 스이코천황 때 스미다가와에서 고기를 잡던 히노쿠마노 하마나리와 타케나리

형제가 그물로 성관음보살상을 건져 내었다고 한다. 이후 이 불상을 집에 모시고 있다가 7세기에 절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그후 엔닌이 이곳에 전립상을 만들어 모시고 천태종 사찰이 되었으며 타이라노

키미마사가 무사시노쿠니의 국사가 되면서 칠당가람을 지어 바쳐 큰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문헌상에 나오는 바로는 가마쿠라막부가 세워지면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중흥시켰다고 하며

고시라카와천황도 참배하였다고 한다. 이후 에도가 세워지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지를 기증하고

소실되었던 사찰을 재건하였고 이곳은 에도성의 귀문으로 정하였다. 이후 이 곳에는 역대 에도막부

쇼군의 참배가 이어지고 지금도 그들이 봉납한 에마 수백 장이 남아있다.

메이지시대에는 이곳이 공원화되면서 능운각이라는 최초의 엘레베이터를 갖춘 전망대가 들어섰고

일대는 도쿄 최고의 환락가가 되었다. 또한 신불분리로 갈 곳을 잃은 가마쿠라 츠루가오카하치만구의

불교관련 유물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센소지는 관동대지진 때는 기적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고 5만명을 수용하는 피난지가 되었다. 그러나 도쿄대공습을 피하지 못하고 국보인 본당과

오층탑과 경장, 인왕문 등이 소실되었다. 이후 대기업들의 후원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간신히 복구되었다.


뇌신상


풍신상


입갤


카미나리몬을 들어서면 나카미세라고 부르는 상점가가 늘어서있다.


문 뒤편에는 천룡상과


금룡상의 두 상이 있다.


나카미세

태풍으로 대부분 닫았다.


불교용품점


전법원통이라는 간판


전법원은 센소지의 본방이다.


전법원 입구


이곳은 특별공개 기간 외에는 공개를 하지 않는다.


다행히 전법원의 현관, 객전, 대서원, 소서원, 신서원, 대소는

공습 피해를 면해 에도시대 초기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모두 중요문화재

정원은 고보리 엔슈의 작품이라고 하며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현관


본방의 본존인 아미타여래


전법원 다실


안으로 쭉 들어간다.


멀리 보장문이 보인다.


옆에는 센소지의 역사를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본존의 현신


센소지의 창건


자각대사 엔닌이 전립상을 만들고 중흥


타이라노 킨마사의 중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참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보호


보장문


거대한 이층누각문이다.


본래 인왕문으로 1960년 오쿠라중공업의 지원으로 재건되었다.

2층은 문화재 수장고이며 무게를 줄이고 화재를 막기 위해 기와는 티타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안에는 헤이안시대의 대표적인 장식경인 국보 법화경이 모셔져있다.


기념사진 찍는


이행묵


여기도 있는 거대한 등


셀카질


거대한 짚신


10년에 한 번씩 만들어 바친다고 한다.


이제 보장문을 지나면


본당인 관음당이 나온다.


에도시대 지어진 것으로 이례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건물이었다.

국보였지만 현재 건물은 이후에 재건한 것이다.


내부에는 쇼군들이 봉납한 200장이 넘는 에마가 있었는데

다행히 전쟁 전 보수공사 때 분리해놓았기에 무사하다고 한다.


보수공사 중인 오층탑

역시 재건한 건물이다.


현재는 공사가 끝났다고

에도의 4탑이라고 불렸다는 대규모 탑이었다는데 아깝다.

관동대지진도 이겼다는데


가까워진 본당


이곳은 사이코쿠 삼십삼소 관음영장의 동일본 판인 반도삽십삼소영장의 한 곳이다.


오미쿠지하는 사람들


향 피우는 사람들


태풍 오는 날 기모노 입고...


향 피우는 외국인


좋냐


중국인이 많나 보다.

향을 중국 스타일로 뭉태기로 태운다.


본당


철근 콘크리트조로 엄청 거대하다.


사람들이 많다


관음당이라는 현판


경내 안내도


내부의 모습


비불을 모신 궁전

사진촬영 금지 따윈 포기했다.


목조 전립상


비불의 모습을 그대로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본존은 절대비불이라 현존하는지 여부도 불분명했는데

메이지시대 한 번 조사하여 나라시대 불상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다고 한다.


내부 외진의 모습


천정화


일본화의 거장인 도모토 인쇼의 작품


오미쿠지하는 장지훈


뽑았다


종이를 뽑았는데 말길이다.


별로 좋지는 않은 점괘


따라서 이곳에 묶어두고 간다.


이제 본당 옆으로 간다.


이 곳은


신불분리 당시 분리된, 본래는 진수사였던 아사쿠사신사가 있다.


신사 전면


건물은 에도시대 초기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지은 권현조 건물로

본전, 폐전, 본전이 붙어 있으며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공습을 피했다.


좋냐


모시는 신은 센소지 본존을 발견한 두 형제와 처음 모시고 승려가 된 사람이고

도쇼쿠가 소실된 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합사하였다.


배전 정면


중요문화재 안내판


막부에서 만든 것답게 화려하다.


안쪽에 폐전과 본전이 보인다.


정면


처마의 단청


앞으로 뺀 부분의 공포 장식


경내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다.


고찰의 흔적


미처 보지 못한 건물이 있는데 중요문화재인 이천문이다.


에도시대 초기의 건물로 공습을 피했다.


지국천과 증장천 상은 본래 이에미츠의 에도 영묘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이제 본당을 기준으로 반대쪽으로 가는 중


반대쪽의 작은 정원 같은 곳엔 많은 건물과 구조물이 있다.


중요미술품인 석교


본래 센소지에 있었던 도쇼쿠에 설치했던 것이라고 한다.


다리 반대편에서 보이는 정원의 계곡


꽤나 잘 만들어 놓았다.


석교

에도시대 초기의 건물


나름 조각을 잘 해놓았다.


도쿄도문화재인 판비


무로마치 초기에 만든 판비라고 한다.


서불이라는 인물이 누군지는 정확치 않으나 명문이 명확하고 조각이 우수한 판비이다.


세부



아미타불 삼명호공양탑

19세기 상인의 공양탑이라고 한다.


영향당


영향당은 신도의 신이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모시는 곳으로 최근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9개의 불상과 칠복신상이 모셔져 있다.



안내문


옆에는 육지장을 새긴 석등롱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12세기, 14세기 건립설이 있다.

간주석에 명문이 있는데 화재를 입어 판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보호각에서 본 모습


안에를 찍어 본 모습


치치부의 산신을 모신 삼봉신사


각종 신사


한켠에 있는 육각당


비록 작지만 무로마치시대의 건물로 센소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도쿄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안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일한지장이라는 지장상

매일 지옥과 아귀도를 왔다갔다한다고 전해진다.


본상은 목조로 따로 보관 중이고 안에는 석조로 만든 후세의 상이 모셔져 있다.


에도시대 18세기의 동조관음보살상


에도시대에는 상인, 서민 등에 의한 이런 동조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아직 문화재로 평가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부동당


약사당


역시 최근에 만든 건물


하시모토약사당으로 본래 3대 쇼군 이에미츠가 관음당을 만들었는데

이후 소실되고 자리를 옮겨 다시 만든 것이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아와시마당

본래 신사건물인데 본당 소실 후 임시 본당으로 썼다고 한다


앞에 위치한 석등롱은 다리 사이로 아이가 통과하면 건강하다고 한다.


이 청동통은 본래 빗물을 받던 천수통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본존을 이 통에 넣고 땅 속에 묻어 화를 피했다고 한다.


당의 표석


옆에는 사경봉납탑이 있다.


역시 에도시대 만든 아미타여래상


17세기 천 명이 발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보장문


뒤편에 보이는 건물들


여러 신사들


청동보협인탑

17세기에 건립한 것이다.


비둘기 폰포의 노래비라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장보살상


발을 치료해준다고 만지는 이행묵


너 의경출신 아니니


이제 밖으로 나간다.


다 문 닫은 상점가

이런 날 미쳤다고 비행기가 떴다니


메론빵 파는 빵집

맛있겠다


아사쿠사 거리


아직도 4시까진 시간이 남아 아사쿠사관광문화센터에 가본다.


도쿄 시내 모형



8층 전망대는 태풍으로 진입이 불가능하단다.


그래도 멀찍이 보는 풍경


황금 똥이 보인다.


돌아오는 길 로손과


세븐일레븐을 거쳐


집으로 왔다

멀리 도쿄 스카이트리가 보인다.

하지만 너무 비싸서 가진 못한다.


드디어 눕


딱 1~2인 아파트


바깥 풍경


요를 까니 꽉 찬다.


장을 본 것들

나는  이렇게 찍었니


그래도 도쿄 첫날이라고 기념사진

다들 해맑군


마파두부밥


그라탕


각종 빵과 에다마메

내 사랑


이렇게 도쿄 첫날밤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