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9일 오쓰1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미이데라三井寺 온죠지園城寺1)

同黎 2018. 6. 10. 03:00



오늘은 멀리 나왔다. 오쓰까지

서울서 오신 분들 마지막 일정이기도 했고

천태종 미술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신라선신당으로 간다.


이곳을 찾아가려면 오쓰시역소(시청) 제2별관을 내비에 찍어야 한다.

기차로는 미이데라역보다 오쓰시야쿠쇼마에역가 훨씬 낫다.

대중교통은 지난 여행기 참조



여기서 좀 들어가야 하는데

지장존이라 쓰여 있는 석비

원래 불상이 있어야 하는데 도난당한 것 같다. 대좌만 있다.


약간 이런 데로 가야 하나 싶으면 맞다.


미이데라의 사유지이니 아무나 주차하지 말라는 경고판


신라선신당 안내판


신라선신당(신라젠신도, 新羅善神堂)는 본래 미이데라의 진수신사로 엔친이 당에서 귀국할 때 배가 조난당할 위험에 처하자 나타나 구해줬다는 신을 모신 것에서 유래되었다. 신라명신이 엔친의 꿈에 나타나 미이데라에서 모실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헤이안시대 후기의 무장인 미나모토노 요리미츠가 여기서 관례를 치루고 이름을 신라사부로라고 한 것이 유명하다. 이 미나모토노 신라사부로 요리미츠가 아시카가씨나 다케다씨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신라명신은 은근 많이 신앙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남북조시대에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세운 것이다. 본래 이곳도 미이데라 경내인데 폐불훼석 중 미이데라 탑두 승방들이 전부 밀리고 거기 관공서와 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이곳만 경외지로 남아있다.


정면


낮은 문과 담으로 본전이 막혀있다.


정면


올라가본다


앞으로 길게 향배가 나와있는 건물이다.


丁자형 건물


반대쪽


내부에는 국보로 지정된 신라명신상이 모셔져 있었다.


국보 신라명신상


눈이 아래로 처진 점이나 머리에 쓴 관이 매우 특이하다.

일반적인 일본의 신라명신상, 아니 다른 신상과도 매우 다르다.

엔친의 자각상이라고 전해오나 양식상 11세기 경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는 비불로 1986년, 2008년 공개된 이후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반적인 신라명신상은 이렇게 당풍의 복두를 쓴 할아버지 모습이다.


하여튼 우리랑 관계가 깊은 곳


보통 신라를 시라기라고 읽지만 이곳은 신라라고 읽는다.


측면 담을 살짝 올라가본다.


보다 정확한 측면


보기 힘들다


이제 차를 타고 5분 거리의 미이데라로 간다.


인왕문 혹은 대문

무로마치시대의 건물로 본래 다른 사찰의 문이었던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기증해서 이축했다고 한다.

중요문화재


경내도


미이데라(三井寺, 삼정사). 정식 명칭은 온조지(園城寺, 원성사)이지만 별칭이 더 유명하다.

현재 천태사문종 총본산이다. 

미이데라는 본래 천태종 전래 이전 세워졌는데 오미 지방의 호족인 오토모씨의 우지데라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 오토모씨는 바로 텐지천황의 아들로 임신의 난으로 황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코분천황의 후예이다. 신라선신당 옆에 코분천황의 무덤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텐지천황이 오쓰쿄를 조영할 때 자신의 염지불인 미륵보살을 모실 절을 세울 뜻을 가졌는데 임신의 난 이후 코분천황의 아들인 오토모요다왕이 텐지천황의 염지불을 모시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 또 본당 뒤편에서 나오는 샘이 텐지, 텐무, 지토 세 천황이 태어났을 때 아이를 씻기는 산탕수(産湯水)로 쓰였기 때문에 삼정사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후 금당 근처에서 나라시대 기와 등이 발견되어 오토모씨와의 관계는 사실일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후 9세기 천태종이 전래되면서 오미지역 일대가 천태종화 되었고 미이데라도 천태종 사찰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산문사문의 항쟁에 휘말리게 된다. 엔닌과 엔친은 나이가 20살 차이가 난다. 둘 모두 당에 유학하여 천태 밀교를 도입했는데, 엔닌은 사이초와 그 고제인 1대 천태좌주 기신에게 모두 사사받아 3대 천태좌주가 되었고, 엔친은 기신에게 사사받아 5대 천태좌주가 되었다. 이 때 엔닌의 제자는 산문파, 엔친 쪽은 사문파로 칭했는데 이들은 서로를 죽이면서까지 항쟁을 했고, 1세기 가까운 항쟁 끝에 엔닌 측이 엔친 측을 죽이려고 하자 엔친 측이 미이데라로 피했다. 그 결과 이들은 에도시대 이전까지 무려 50여 회에 걸쳐 서로 승병을 이끌고 부딪히며 방화와 살해를 일삼았다. 오다의 대토벌 이후 승병이 아작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싸움은 없었지만 갈등은 계속되어 이 작은 오쓰시 안에 천태종 총본산 엔랴쿠지와 천태사문종 총본산 미이데라, 천태진성종 총본산 사이교지가 모두 존재하며 천태 3종을 이루고 있다.

어쨌든 미이데라도 매우 중요한 사찰이었고, 특히 교토의 공경과 귀족들에게는 천태밀교, 즉 태밀이 지배적이었으므로 가끔씩 히에이잔을 견제하는 의미에서도 기증이 이어졌다. 엄청난 장원을 지녔고 후지와라노 미치나가, 시라카와천황 등이 직접 참배했다. 가마쿠라막부에서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기증을 받았으며 호조씨에서는 고케닌 등을 시켜 직접 재건하기도 했다. 무로마치막부 역시 히에이잔을 견제하기 위해 많은 기부를 하였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 미이데라는 결정적 타격을 맞게 되는데, 왜 히데요시가 미이데라에 격노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때 폐사가 명해지면서 대부분의 불상들이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건물들도 히에이잔으로 이축된다. 현재 엔랴쿠지 사이토의 석가당이 바로 과거 미이데라의 본당이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죽기 직전 부처의 가호를 받기 위해 재건을 명하고 정실인 기타노만도로코 네네가 거금을 들여 대부분의 건물을 복원한다. 이 때 지어진 건물로 국보만 3건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많은 토지를 잃었지만 그래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인왕문 안내판


인왕상


잘 안 보이는군



먼저 보이는 석가당

구 식당이다


1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교토고쇼의 청량전을 이축한 것이다.

재건 시 하사받은 것


안내문


본존 석가여래입상


세이료지식 불상으로 무로마치시대의 작품


문화재로 지정은 안 되어있다.


변재천당


저 위로


금당의 측면이 보인다.


지증대사 엔친의 유훈


계단을 오른다


거대한 측면의 박공


본래의 금당도 거대한 것이었지만 지금의 금당은 네네가 지은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다.

내부의 본존은 미륵보살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가 되지 않았다.

도래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는데 정확치 않다고 한다.


종루

역시 16세기 건물로 중요문화재


내부에 있는 동종도 중요문화재로 1602년에 만든 비교적 큰 종이다.


미이데라의 만종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다른 면


종루 정면


오미팔경이라는 안내문


금당 앞의 오래된 석등


덴지천황이 을사의 변으로 소가씨를 제거하고 나서

그 죄악을 씻기 위해 자신의 무명지를 잘라 석등 아래 묻었다고 한다.


안내문


금당 쪽에서 본 종루


거대하다


정면


안내문

이제 안으로 들어가본다.


금당 처마


금당 뒤편에 이렇게 여러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미타여래삼존상

에도시대


부동명왕상

무로마치시대



역행자상

에도시대


그래도 잘 생겼다.


부동명왕입상

헤이안시대


대일여래

헤이안시대



석가여래상과 엔공불


엔공불

엔공이라는 에도시대 승려가 전국을 돌며 만든 새로운 형태의 불상이다.

팔용왕상


대흑천상

무로마치시대


보관석가여래좌상

무로마치시대


보기 드문 건칠불



존성왕상

북극성을 형상화한 불상이다.

뒤에 북두칠성이 붙어 있다. 천태사문종 특유의 존상이다.



염마천상


대흑천상

무로마치시대


아미타여래삼존상

가마쿠라시대


아미타여래

무로마치시대


본당 지붕 모형


두텁다


금당을 나왔다


엄청난 규모의 금당


알가정옥

중요문화재


내부에 샘이 있다.


안내문


텐지, 텐무, 지토 3천황의 목욕물


안내판


공포


금당 측면



작은 건물

교대당이라고 교대대사상을 모시는 곳


작은 신사


미이데라 진수사 중 하나인 듯하다.

 

여길 지나


샘에서 나오는 물을 건너가면


영종당이 나온다.


벤케이종이라는 나라시대 종을 모신 곳


이 종은 나라시대의 것인데 중요문화재로 온몸에 긁히고 닳은 자국이 있다.


히에이잔의 승려였던 벤케이가 미이데라를 공격하고 이 종을 약탈해 올라가던 중 종에서 이노 이노 하는 소리가 났는데 간사이벤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라 그럼 돌아가보라며 산 아래로 굴려버렸다고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라시대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다른 면


전설을 설명한 패널


한쪽에는 벤케이의 국냄비라는 거대한 철확이 있다.


안내문


벤케이는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전경


종고리가 중국 종 같다.


이제 다른 영역으로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