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9일 오쓰4 (엔랴쿠지延暦寺 도토東塔)

同黎 2018. 6. 11. 02:36



이제 엔랴쿠지로 간다.



12치 여행기에 워낙 길게 써 놓아서 따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일본 천태종의 시조 사이초가 자리잡은 이후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사이초가 기존까지 도다이지, 규슈 칸제온지 등 전국에 3개만 있던 계단을 뒤로 하고 새로운 계단을 만들려고 해 나라불교세력, 특히 고후쿠지와 투쟁한 이래 남도북령이라고 하여 고후쿠지와 엔랴쿠지의 세력은 강력한 승병집단을 키웠다. 엔랴쿠지는 천태좌주가 주석하며 근본중당, 대강당 등을 관리하는 히에이잔 중심사찰의 상징적 이름이었고, 실제로는 사카모토부터 히에이잔 전체에 널려있는 승방들과 자원들이 중심이 되었다. 고후쿠지와 히에이잔의 승병에 대항할 만한 승병세력은 신의진언종의 네고로슈, 정토진종의 잇코잇키 정도였고 이마저 전국시대 혼란의 시기에 나온 것이다. 조정이 수백 년간 두려워한 것은 남도북령의 두 세력이었다.

천태종은 본래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다른 것은 방편으로 여기는 새로운 불교운동이었지만 일본에서는 같은 시기 들어온 진언종의 밀교가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천태종은 경쟁적으로 밀교를 받아들였다. 사이초가 직접 구카이에게 관정을 받기도 했지만 이것은 부족했다. 엔닌, 엔친 등이 경쟁적으로 입당해서 교의를 배우고 경전을 들여왔다. 그 결과 천태종은 동밀과 쌍벽을 이루는 태밀을 만들고 신도와 결합해 산왕신도를 탄생시켰으며 수험도와도 결합한다. 히에이잔이 교토의 귀문에 해당한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교토에도 수많은 절과 신사를 배치한다. 황족과 공경을 출가시켜 이들을 천태좌주의 자리에 올리기도 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결국 적어도 13세기부터는 천황은 즉위할 때 니조가에 의해 주도되는 태밀의 즉위관정을 치루어야 했다. 무려 고메이천황까지 즉위관정을 치뤘다.

물론 댓가는 톡톡히 치뤄야 했다. 강력한 군세는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긴키 지역의 천태종 사찰은 거의 다 불태워졌는데 남은 사찰 중에 국보가 수두룩하니 원래는 어땠을까? 에도시대 이후 승군은 사라졌고 텐카이의 천재적 수완으로 천태종은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히에이잔의 횡포에 대한 기억은 여전하여 메이지시대 폐불훼석의 여파가 톡톡히 미쳤다. 많은 승방들이 사라졌고 건물도 많이 줄었다. 결국 히에이잔의 3구역을 묶어 하나의 종교법인 엔랴쿠지로 재구성되었다. 현재 천태종 교세는 결코 작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크다 할 수도 없다.

천태종 내부에서도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쫓아내 천태사문종과 천태진성종이 나왔고, 가마쿠라시대 이래 염불수행에 대해서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으나 이제는 오히려 사이좋게 히에이잔이 배출한 역대 종파의 개조들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종조만 해도 천태사문종과 천태진성종, 융통염불종, 정토종, 정토진종, 임제종, 조동종, 일련종, 시종... 진언이나 남도불교 외에 거의 전부이다.


들어가는 길 히에이잔 출신의 고승들을 소개하는 그림들이 늘어서있다.


한중일 삼개국 천태종에서 세운 기념비


한글도 보인다


안내문


사실 한국 천태종은 천태종이라 하기가...


필총

다 쓴 붓을 묻는 곳


대강당


중요문화재로 본래는 산 아래 히요시도쇼구의 찬불당 건물이다.

1950년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던 대강당이 소실되면서 내부의 본존 대일여래와 협시보살도

함께 불탔다. 이후 도쇼구의 찬불당을 옮겨왔고 내부에는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사이초 및 역시 히에이잔이 배출한 종조들을 모시고 있다.


안내문


크다


지금 히요시도쇼구 본전은 이리 크지 않은데


엄청나다


내부


니치렌도 보이고, 호넨, 신란, 잇펜 등도 보인다.

각 종파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대강당을 나왔다.


근본중당으로 가는 길


멀리서 보이는 근본중당


대흑당

대흑천을 모신 건물


회랑 부분이 공사 중이다.


내려가는 길


근본중당 지붕

거대하다


문수루


근본중당 가기 전에 이곳부터 들린다.


작은 석탑



석탑형 석등


이쪽 구석에 장보고기념비가 있다.


엔닌이 모신 적산대명신과 엔친이 모신 신라대명신 모두

당시 중계무역을 하던 장보고와 관련있는 신라신이라고 추정하고 있기 때문


엔닌은 직접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장보고를 언급하고 있고 편지도 보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여기 있는 장보고기념비


뒷면 비문

입당구법순례행기의 내용 일부가 인용되어 있다.


문수루는 근본중당의 정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본중당의 산문 역할을 한다.


17세기 재건되었으며 중요문화재이다.


2층 내부의 문수보살


사자를 탄 도해문수상이다.


이제 근본중당으로 간다.


급한 계단

좁은 계곡 사이에 비집고 들어선 모습이다.


좌우를 막아놨다


2018년 현재 이런 모습일테니...


아마 올 일은 없을 듯 싶다.


근본중당

본래 천태종의 가장 중요한 곳이다.

안에는 본존으로 사이초가 스스로 조각했다는 약사여래상이 봉안되어 있다.

비불로 1988년 한 번 공개된 적이 있다고 한다.

약사여래가 왜 본존일까 지금도 의문이다. 다만 이곳이 교토의 귀문이고

태밀이 진호국가를 표방하는만큼 나라를 수호해주는 약사여래를 중히 여긴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건물은 오다 노부나가가 불태워버린 것을 에도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재건한 것이다.


공포의 모습


근본중당은 국보, 회랑과 문은 중요문화재이다.


내부

특이하게 내진 중진 외진의 3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중진과 내진은 외진으로부터 2미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한쪽에 있는 전교대사 사이초의 상


중앙에는 전교라는 쇼와천황의 친필 사액이 걸려있다.


가운데 불멸의 법등


사이초 이후 1200년 이상 꺼지지 않았는데 오다의 침입 당시 한 번 꺼졌다고 한다.

그 후 야마가타현에 모시고 있던 다른 사찰의 불씨를 다시 모셔와 이어가고 있다.


법등 3개


외진의 장식들





천정화




밖으로 나왔다


자체 소방서도 있다.


이곳은 식당이 회관에 딱 하나 있으니 대충 우동을 먹는다.


겨울에는 거의 장사도 안 한다.


이제 서탑 지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