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교양 불교미술

가람배치의 시대적 흐름

同黎 2018. 7. 17. 02:29
한국의 가람배치

가람이란 스님들이 모여 생활하고 수행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범어에서 온 말입니다. 따라서 가람배치란 사찰의 건물들이 배치된 것을 말하는데, 이는 단순한 건물의 배치가 아니라 각 사찰에서 중심적으로 모시는 부처님과 경전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또한 시대에 따라서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삼국시대에는 불교 사찰이 교육과 교통의 역할을 하면서 국가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도시 즉 평야에 위치했습니다. 따라서 그 면적도 상당히 넓었습니다. 또한 삼국시대 가람배치의 특징은 탑을 상당히 중요시 여긴다는 점입니다.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선종이 유입되면서 고요한 선(禪)을 중시하는 선종의 전통에 따라 산지에 선종 사찰이 들어서게 될 뿐만 아니라, 화엄종 사찰의 경우에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게 되며(의상의 화엄십찰), 도선의 풍수사상이 유행하면서 산지 사찰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여전히 국가와 밀접한 사찰은 수도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산지 사찰이 더 많이 남아있는데, 이는 산지사찰이 전란을 피하기 용이하여 임진왜란 때 승병의 중심지가 되었고, 따라서 전후 복구의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으며, 산지 사찰이 산성, 사고 등을 수호하는 역할을 맞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①고구려의 가람배치
고구려 가람배치의 특징은 팔각의 탑을 중심으로 3개의 금당이 ㄷ자 모양으로 탑을 감싸듯 들어서있는 1탑-3금당형 가람배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치는 중국의 오성좌식 배치를 본 딴 것으로 보이는데, 오성좌식(五聖座式) 배치는 중앙의 황제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중앙을 감싸는 듯이 건물을 배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배치는 중앙의 탑을 상당히 중요시 했다는 것을 알려주며, 고구려의 경우 탑에 대한 신앙이 두터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오성좌식 1탑-3금당의 가람배치는 평양 청암리사지, 정릉사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평양 청암리사지

②백제의 가람배치
백제의 가람배치는 한 개의 금당 앞에 한 기의 탑을 놓는 1탑-1금당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부여 정림사지입니다. 이러한 1탑-1금당식 가람배치는 발전하여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3개의 독립적인 1탑-1금당의 구획 3개를 합쳐 하나의 가람을 이루는 3탑-3금당의 배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백제 부여 정림사지                                        백제 익산 미륵사지

③신라의 가람배치
고신라의 경우, 경주 분황사지에서는 고구려와 비슷한 ㄷ자 모양의 1탑-3금당 가람배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더 후대에 창건된 황룡사지에서는 3개의 금당이 일(一)자로 나란히 배치된 1탑-3금당식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신앙의 무게중심이 탑에서 점차 금당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 경주 분황사                                        신라 경주 황룡사지

④통일신라의 가람배치
통일신라에서는 통일 이전과 마찬가지로 일부 사찰에서는 1탑-3금당의 가람배치가 이어지나, 차츰 하나의 금당 앞에 2개의 탑이 나란히 서 있는 2탑-1금당형의 가람배치가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이 때의 탑은 대부분 이전의 목탑보다 크기가 작아지는 석탑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 불국사와 경주 감은사지의 가람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배치는 산청의 단속사지, 김천의 갈항사지에서도 보여, 경주 뿐 아니라 지방에도 상당수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신앙의 중심이 탑에서 금당으로 확실하게 옮겨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 경주 감은사지                                  통일신라 경주 불국사

⑤고려의 가람배치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의 2탑-1금당형 가람배치와 백제식 1탑-1금당형 가람배치가 병행하면서, 중심 불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부속 법당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한 사찰이 다양한 교리를 받아들이고. 불교가 일부 민간신앙과 합습하여 산식각 등이 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금당에 대웅전 등의 이름이 붙으면서 고려시대에 비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현재의 사찰 가람배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찰의 각 부분을 나누어서 북원과 남원, 서원과 동원 등으로 독립적인 공간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는 한 사찰에 여러가지 종파가 섞이면서 신앙의 대상이 여럿이 되면 나타나는 양상입니다.

 
         고려 묘향산 보현사                                                 고려 개성 흥왕사지

⑥조선의 가람배치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의 원칙에 따라 도시 가운데 사찰 건립이 금지되면서 산지 사찰만이 지어지게 됩니다. 조선시대 가람배치의 특징은 한 사찰이 하나의 교리에 의거한 건물들을 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리와 민간신앙이 섞인 건물들을 받아들이면서 가람배치의 원칙이 없고 대단히 복잡한 구성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특히 건물의 이름과 모셔진 불상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불국사 대웅전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져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여러 종파의 교리가 선종 중심으로 섞여있는 한국 불교 특유의 통(通)불교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선 부산 범어사                                                           조선 양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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