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9일 교토 라쿠호쿠 (이마미야신사今宮神社)

同黎 2018. 6. 11. 23:39



숙소로 돌아왔다가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급하게 택시를 탔다.


이마미야신사 도착


이마미야신사(今宮神社, 금궁신사)는 역병과 관련이 깊다. 헤이안 천도 이전에도 이미 이곳에는 역신으로서의 스사노오를 모시는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신과 스사노오가 원래 같았는지는 의문이다. 그냥 역신이었을 수도 있다. 하여튼 헤이안 천도 이후에도 역병이 생길 때마다 이곳에서 어령회나 각종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특히 헤이안시대 후기에는 민중 주도의 제사가 이루어졌다. 물론 조정에서도 신여를 보내는 등 중시하는 곳이었다.

1001년 역병이 다시 유행하자 이치조천황의 꿈에 따라 역신의 기운을 어느 정도 눌러야 한다는 신탁이 내리고 역신을 잠시 인근 후나오카야마에 옮겨놓고 오쿠니누시, 그의 어머니인 쿠시나다히메, 아들인 코토시로누시의 3주를 주신으로 모시고 역신을 다시 섭사로 모셨다. 이후 번창하여 신계 정1위를 받는 등 숭배가 높아지다가 오닌의 난으로 신사가 전소당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시로 복구했으나 결정적 재건은 에도시대였다.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측실이자 5대 쇼군 츠나요시의 어머니인 케이쇼인은 본래 이 지역 니시진의 청과물 가게집 딸로 오타마라고 불렸다. 이후 그녀가 쇼군의 어머니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여성이 되자 자신의 고향인 니시진의 이마미야신사에 대한 숭배를 지극히 하여 거대한 규모로 신사를 재건했다. 지금 신사의 얼개는 이 때 짜여졌다. 이후 니시진의 염직 산업이 번창하면서 상인들이 이곳이 많은 봉납을 하였고 노 공연도 하였으나 직물산업이 가라앉으면서 1970년을 끝으로 중단되고 만다.

지금의 건물은 안타깝게도 메이지시대에 소실된 것을 5년 후에 재건한 것이다.

건물 전체가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두 번째이다



거대한 누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간다.


한쪽의 보물고


일단 사무소로 가서 납경을 받고


본전으로 간다


직진


배전과


뒤편의 섭사 역신사와 본사


역석(力石)

자랑 하는 돌


누문


한쪽의 다리


겐로쿠시대의 유구라고 한다.


과거 물이 흐르던 곳


배전


본전 중문


여기가 본사이고


바로 옆에 섭사 역신사가 있다.


스사노오를 주신으로 한다고


직희신사

니니기의 어머니인 타쿠와타치지히메를 모셨다.

직물의 여신으로 모시는 것으로 니시진의 직물 상인들이 모시던 신사이다.


팔사


여덟 신을 한꺼번에 모신 곳


반대편


한쪽엔 돌이 놓여있다.

들면서 소원을 비는 것


섭말사들


팔번사


대장군사


일길사


이나리신사


오다 노부나가와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혼노지의 변 이후 처음 오다가의 유골이 수습된 곳은 아미다지라는 사찰

그곳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장사지냈던 곳에 있던 이나리신사가 여러 번 천좌하다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약궁사

본래 아타고산 위에 있던 것으로 가운데에는 이자나미를,

좌우에는 역대 가모신사의 재궁으로 있던 이들을 모신 곳이라고


에마전


케이쇼인의 초상


이제 신사를 나선다.


밥 먹으러 가는 길


교토국립박물관 앞 코코이치방야


에비카레


그라탕으로 피곤한 하루를 끝냈다.


가모가와를 지나


늘 지나는 타카세가와를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