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10일 텐리1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

同黎 2018. 6. 12. 22:09



계속 내려와 텐리에 도착


텐리역 앞마당

뭔가 공사 중이다.


텐리역

킨테츠와 JR이 동시에 다닌다.

여기서 걸어서 20분 정도 가야하지만


내 다리는 소중하니까


멀리 보이는 천리교 총본부


텐리시에 있는 텐리 특유의 건물들이 보인다.


이런 건물들


저기서 자봤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상시 머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각 교구에서 올라올 때 머무는 숙소 역할도 같이 한다.


처음 왔을 때 평양 같아서 무서웠는데 저번에 묵어보니 그래도 괜찮았다.


천리교 총본부 입구


거대하다


도시 이름 자체를 바꿀 정도로 거대했던 교세가 지금은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다지 나쁘거나 이상한 정당은 아닌 것 같다.


텐리대학이 보인다.

이소노카미신궁은 텐리대 뒤편에 있다.


드디어 도착

석상신궁이라는 표석


이번이 네 번째다.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 석상신궁)은 후츠노미타마라는 신을 모시는데 이는 신체인 후츠미타마노츠루기(布都御魂剣)라는 검에 들어있는 혼이다. 보기 드물게 신체와 신이 일체가 되어 있어 신체가 없으면 안 되는 신 중의 하나이다. 이 검은 일본신화에 두 번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른바 국토이양 신화인데, 스사노오의 자손인 오쿠니누시가 만들어 놓은 국토를 아마테라스의 후손인 니니기에게 넘길 때이다. 이 때 아마테라스는 뇌신인 타케미카츠치와 아메노토리후네를 파견하였고, 이들은 이즈모의 바닷가 바위 위에 후츠미타마노츠루기를 꽂아 놓고 국토이양을 주장한다. 이 때 오쿠니누시의 장남인 코토시로누시는 복종을 주장하지만 다른 아들인 타케미나카타는 이에 불복하여 타케미카츠치와 싸워 패배해 결국 국토를 이양하게 된다.

두 번째 등장은 진무천황의 동정이다. 규슈에 있던 진무천황은 야마토지방을 정복하려 하지만 태양을 맞서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 호족인 나가스네히코에게 패배한다. 이후 진무천황은 배를 돌려 구마노에 내려서 태양을 등지고 다시 나가스네히코를 공격한다. 그러나 다시 진무천황이 구마노 지역에서 흘러나온 독기 때문에 위기에 몰리는데 이 때 다카쿠라지라는 인물의 꿈에 아마테라스, 타카미무스비, 타케미카즈치가 나타나 검을 건네주었고, 이 검을 진무천황에게 전하자 영력으로 독기를 없애고 결국 승리하여 야마토정권을 열었다고 한다.

그 후 이 검은 궁중에서 보관되어 우마시마지노미코토라는 인물이 제사를 지냈는데, 이 인물이 바로 모노노베씨의 조상이다. 이후 10대 스진천황 때 모노노베씨에게 명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신사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 곳은 야마토정권의 무기고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스진천황이 삼종신기의 하나인 거울도 궁중에 모시기 거북스러워하여 밖으로 모시게 한 것이 이세신궁이다. 스진천황대에 천황가가 시작했다거나 혹은 천황 가문이 바뀌었다는 추측이 있는 것을 보면 이전 세력의 신보를 버릴 수는 없고 궁중에 놓기에는 정통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따로 신사를 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소노카미신궁은 이세신궁과 함께 신궁이라는 글자를 이름에 단 가장 오래된 신사이기도 하다. 이후 신궁이라는 이름이 무더기로 생기지만 그 중요성은 비길 바가 못 되었다. 사전에 따르면 스사노오가 거대한 뱀인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할 때 썼다는 토츠카노츠루기라는 검도 이곳에 봉안되었다고 하며 천황가의 무기를 대대로 이곳에 봉안했다고 한다. 이후 칸무천황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신보들을 옮기도록 했는데, 천황이 병이 나고 괴이한 일들이 나오고, 병고에 있던 무기들이 저절로 날아다니자, 무녀를 파견해 신을 달랬으나 오히려 무녀가 미쳐서 죽었다. 이에 급히 천황 나이만큼의 승려를 보내 독경을 하고 신보를 원상복귀했더니 겨우 멈췄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신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칠지도가 발견된 곳도 이곳이고 아직 공개되거나 발견, 발굴되지 않은 많은 보물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모노노베씨가 대대로 신관을 지내고 천황가에서도 애지중지하던 곳이라 감히 이곳에 칼을 대지는 못했다. 남아있는 주요 건물이 가마쿠라시대의 것으로 신사 건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고후쿠지와 깊은 관계를 맺어서 고후쿠지의 잇키가 들이닥친 것도 있고, 오다 노부나가의 노여움을 사서 사령은 몰수당한 적은 있지만 감히 누가 손대지는 못했다.

원래 본전은 존재하지 않은 신사고 배전 뒤편의 땅을 금족지라 하여 신성시하고 신체인 칼이 거기 묻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메이지시대 발굴로 각종 유물들이 발견되고 신체 후츠미타마노츠루기(布都御魂剣)로 추정되는 검이 발굴되자 이를 모시기 위해 본전을 세웠다.


쇼와시대에 세웠다는 비


도리이가 보인다.


제1 도리이


만엽가비


이제 본전 회랑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신의 사자로 닭을 기른다.


그냥 닭이 아니라 일본 고유의 동천홍계와 오골계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관상용 닭


유유히 돌아다닌다.

사람도 안 무서워하고


테미즈야


회랑


누문이 보인다

가마쿠라시대 후기

중요문화재


먼저 섭사부터 간다.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이 건물은


먼저 초치검의 혼을 신으로 모시는 출운건웅신사

본전


문제는 배전이다.

이것은 국보인데 인근에 있던 우치야마에이큐지라는 사찰의 스미요시신사 배전이었다.

가마쿠라시대 후기의 건물로 이렇게 가운데가 뚫려있는 것을 할(割)배전이라고 한다.

할배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판


본전


출운건웅신사

안내판


여기서 누문이 내려다 보인다.


외랑


거대한 삼나무들


안으로 들어간다.

국보 배전


담과 회랑


한쪽의 사무소


가마쿠라시대 초기의 건물로 불당풍의 건물이다.

시라카와천황이 황궁에서 신상제라는 가장 큰 제사를 지내던 신가전이라는 건물을 이축한 것이다.

불당식의 건물이자 대불양(천축양)의 건물로 드문 것이다.

그래서 국보로 지정


안에는 주신인 후츠노미타마가 모셔져 있다.

배신으로 삼종신기 외 십종신보라는 보물의 신인 후루노카타마노오카미,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쓰러트렸다는 검인 아마보하바키리노츠루기, 모노노베씨의 시조인 우마시마지노미코토,

시라카와천황 등이 모셔져 있다.


배전 내부


오랜만이었다.

이제 다음 장소로 가야 한다.


언제나 텐리는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