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10일 사쿠라이1 (단잔신사談山神社1)

同黎 2018. 6. 15. 01:49



이제 잠시 오미와신사를 들린다.


밖에 보이는 거대한 도리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도리이다.


미와명신이라는 팻말


뒤돌아 보이는 거대한 도리이


JR 미와역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작은 역인데 신사의 참배인원이 많을 때만 여는 임시역이다.


대신신사라는 표석

오늘은 납경만 받으러 왔으므로 설명은 저번 답사기를 참조



도리이


긴 참도



급히 납경을 받고


사쿠라이역으로 간다.


이곳 남쪽 출구 앞 버스정류장에서 단잔신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1번 노리바에서 가면 된다.


버스 시간표

이렇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야한다.


마침 도착하는 버스


이걸 타고 종점까지 간다.


한적한 버스 안


산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으으


최근에 산사태가 났는지


강둑 정비공사가 한창이다.


여기가 원래 입구

신교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리면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종점 도착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

역시 한 시간에 한 대

그나마도 출퇴근과 점심시간엔 안 다닌다.


여기서 또 걸어서 7~8분 정도 가야한다.


겨울이라 참배객이 없어 식당도 다 문을 닫았다.


신사로 가는 길


파란 하늘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가면 요시노가 나온다.


나라 산지


단잔신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계단


급하다


여기서 조금 더 가다보면


중간에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십삼층석탑이 있다.


이런 오솔길을 따라 들어간다.


약간의 오르막


단잔신사가 보이는 곳


그 언덕배기에 묘가 있다.


담해공이라는 것은 후지와라노 후히토에게 내려진 작위


안내판


시대가 언제 것인지는 좀 불명확하다.

일본서기의 주 편찬자 중의 한 명이고 후지와라씨의 전성기를 연 후지와라노 후히토

텐지천황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버지는 소가씨를 몰아냈는데, 정작 자신은 소가씨와 결혼해서 아들을 3명이나 낳았다. 후지와라 4가 중 남가, 북가, 식가가 여기서 나왔다. 또 딸 둘은 각각 몬무천황과 쇼무천황의 부인으로 시집보냈다.

부인 중의 하나는 본래 텐무천황의 측실로 천황 사후 후히토와 결혼했다. 이 다음이 더 개족보이다.

3번째 부인에게 낳은 미야코는 몬무천황과 결혼해 쇼무천황을 낳았다.

그리고 후히토의 4번째 부인이 낳은 코묘시는 쇼무천황, 즉 조카와 결혼했다.

하여튼 공식적으로는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무덤은 불명이다.


하여튼 다시 내려간다.

 

가는 길에는


토노미네 관광호텔이 있다.


과거 단잔신사의 문


과거 단잔신사가 절이었을 때 자원의 문이었던 것 같다.


신사로 가는 길


반대쪽으로 가면 신교가 나오는 곳이다.


중요문화재인 석등롱


고다이고천황이 봉납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석등 중에 아직도 돌을 깎은 듯한 모습이 남아있는 명품이다.


안내문


춘일형

가스가대사에서 유래한 유형이다.


측면


더 안으로 들어가면 별격관폐사 담산신사라는 표석이 나온다.

단잔신사는 두 번째이다.



단잔신사은 토노미네(多武峯)라는 산에 있다. 이름에 담(談)자가 들어가는 것은 이 지역에서 후일 텐지천황이 되는 나카노오에 황자와 당시 성으로는 나카토미노 카마타리가 다이카 개신에 대해 논의를 했다고 해서 붙었다. 본래 후지와라노 카마타리는 다른 곳에 묻혔는데 (현재 오사카부에 있는 아부야마고분으로 추정) 그의 장남인 조에(정혜)가 견당사의 자격으로 당에 갔다온 후에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해 이곳에 십삼층탑을 세웠다고 한다. (목탑으로 추정) 이후 텐무천황 때 강당을 세우고 묘라쿠지라는 절을 세웠다. 이렇게 후지와라씨의 후원을 받아 번성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헤이안시대 이곳이 천태종으로 개종을 했다는 사실. 같은 후지와라씨를 기원으로 삼는 법상종의 고후쿠지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헤이안시대에서 무로마치시대에 이르는 기나긴 전쟁이 시작됐다. 심지어 고후쿠지 승려들이 후지와라노 카마타리를 모신 십삼층탑도 불태웠다. 하지만 역시 후지와라씨의 후원을 받아 매번 재건하고 거대한 가람을 자랑한다. 무로마치시대부터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는 묘라쿠지를 중심으로 막부군에 대항하는 3번의 잇키군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곳도 막강한 승군 조직이 있었던 것.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야마토코리야마성 아래로 절을 옮길 것을 명하고 탑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을 파각시켰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귀산을 허용하고 부흥시켰다. 지금 대부분의 건물은 이 때 재건된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신불분리령으로 묘라쿠지는 사라져 단잔신사가 된다. 승려들을 환속하고 불당을 밀어버리는 대신 건물은 신사로 재활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서 신사 중 거의 유일하게 불교식 탑이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은 후지와라노 가마타리(나카토미노 가마타리)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그런데 과거 불상도 아직 일부가 남아있다. 일부는 다른 사찰로 이설. 고후쿠지와는 달리 이곳은 폐불훼석이 그리 심하지 않은 편


입구가 보인다


배관료 600엔


도리이

최근에 만든 것


비불 공개

안내판


여기서 반대편으로 빙 돌아간다.

정문은 신들의 문


멀리 건물이 보인다.


옆으로 돌아가는 길


마치 성 같은 축대가 보인다.

과연 잇키의 본거지


섭사가 보인다.


아무리 동선을 조정했다지만 섭사 입구로 시작되는 동선은 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말사인 총사 본전과


배전

모두 중요문화재


에도시대 초기의 건물이다.


총사 본전


에도시대 초기의 건물이지만 모모야마 풍이 많이 보이는 건물

현재 건물은 본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은 본사 본전 건물을 18세기 이축해 총사 본전으로 삼은 것이다.

총사는 모든 신을 모시는 신사를 의미한다.


안내문


배전


벽화가 보인다.

가노 에이노우의 작품이라고



한쪽에서 나오는 물


절이나 신사의 신성한 우물인 알가정(아카이)의 근본이 되는 물


이 우물을 모신 건물도 중요문화재


에도시대 전기


신묘배소

뒤편 십삼층목탑을 예배하는 곳

에도시대 초기, 중요문화재


총사 배전


안에는 수노인을 모셨다.


안내문


수노인상


이곳은 야마토 칠복신 중의 하나에 속한다.

칠복신 중 수노인을 모시고 있다.


옆에서 본 신묘배소


과거 강당이었다고 한다.


중요문화재



수리 기부자 기념비


계단 위로 권전과 십삼층탑이 보인다.

저긴 조금 이따가 보고

먼저 본사 아래쪽을 보러 간다.


신묘배소 정면


이 아래쪽으로 가면


아까 막혔던 계단이 보이고


본사 배전 아래쪽 무대가 나온다.


본사 양 옆에는 창고가 2개 있다.

모두 중요문화재로 이것은 서보고


교창식 건물이다.



멀리 보이는 십삼층목탑


멀리서 보이는 동보고


지나온 거대한 배전


이곳은 동전이라고 불렸던 곳으로 현재는 말사인 연신사이다.


역시 중요문화재

후지와라노 가마타리의 부인과 두 아들을 모시는 곳이다.


안내문


이상하게 연애의 신사가 되어 있다.

한쪽에는 신석이 있다.


동보고

역시 중요문화재



배전과 회랑의 모습


본전이 회랑과 배전, 누문으로 둘러져있다.


다시 배전 아래를 지난다.


정갈한 모습


축대에 기대어 쌓은 무대 받침이 인상적이다.



중요문화재 권전

본래 아미타상을 모시던 곳이고, 예능을 하는 무대 역할도 하는 건물이다.

무로마치시대 후기에 재건한 것이다.


이제 본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