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3차

관서구법순례기 - 9일 텐리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

同黎 2012. 11. 12. 00:30

텐리시로 간다.


텐리로 가는 길이 만만하지는 않다.

한 번 갈아타야 한다.


환승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중

20~30분에 한 대 꼴로 있다.


동생을 데리고 가는 여자애


텐리시 도착

킨테츠 텐리역은 종점역이다.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이소노카미 신궁으로 간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2km 정도 거리가 되는 것 같다.

택시를 타면 640엔이 나온다. 기본요금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

콘크리트 건물인데 일본식 단청 같은 색을 칠해서 분위기가 묘하다

평양 같다.

 


텐리대학

몽유도원도의 소장처로도 유명하다.


텐리대학



도시가 전부 이렇다.


이소노가미 신궁에 도착.

이소노가미신궁(석상신궁)은 전해지기로는 스진천황(숭신천황) 때 세워졌다고 한다.

그대로라면 4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라고 전해진다.

(사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신사는 미와신사) 뭐 칠지도가 전해내려질 정도니...

이와카미묘진, 후루다이묘진 혹은 호츠노미타마노카미, 사지후츠노카미라는 이름의

신을 모시고 있으며, 황실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소가씨와 싸워 패배했던

일본 토착 종교의 신관 집안인 모노노베씨가 이 신사의 신관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모시는 신체가 모두 일본 고대 천황의 검이나 허리띠이며,

그것만 봐도 아주 대단한 위세를 가진 신사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사 입구의 도리이


전설상으로는 진무천황이 구마노에서 야마토 방면으로 진격할 때 고생을 했는데, 이 때

타카미무스히와 아마테라스가 원군으로 타케미카즈치노카미(武甕槌神)를 보내려다가 그 대신 영검인

후츠노미타마노츠루기(布都御魂剣)를 내려보냈고, 그 검이 내려온 것이 구마노의 구마노하야타마신사의

원궁인 카라쿠라신사였다고 한다. 현재 이 검이 바로 이소노카미신궁의 신이자 신체이다.


표석


기념사진




무슨 시비다.



신목




사무소



특이한 건 여기서 닭을 키우고 있다.

일본. 태양의 근본인 나라이니 태양을 부르는 닭을 신성히 여기는 것인가?


꼬리가 긴 금계

멋지다.

처음 봤다.





옆에는 또 흰 닭들이 있다.





한 쪽에는 또 오골계가 살고 있다.

오 이것도 신기하다.





천연기념물인 호수인데 뭔지 잘 모르겠다.



본전으로 가는 길

옆에는 여러 섭사가 있다.


섭사인 출운사



섭사 천신사

사진을 미처 못 찍었는데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국보 섭사출운사 배전이다.


본전의 누문



중요문화재이다.


회랑 안으로 들어가서 본 누문


배전, 가마쿠라시대에 복원, 국보이다.

이소노가미신사는 본래 22개 관폐대사 중 하나로 22대 신사에 속했으나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적이 있다.




측면에서 본 배전

뒤에 본전이 있다.


배전 내부




본전(신전) 입구




종을 보관하던 궤

무려 남북조시대의 것이다.


불 끄는 소방기구


이소노카미신궁이 유명한 건 무엇보다도 칠지도 때문이다.

칠지도는 출토된 것이 아니라 신고에 보관해 오던 것을 신궁의 신관이 발견해낸 것이다.

본래 녹이 두텁게 붙어 있었는데 긁어내자 글자가 나왔다고 한다. 최근에 백제의 칼에서

글자를 금상감한 것이 발견되었는데 칠지도의 상감 기법과 비슷하다고 한다.

내용이야 뭐 너무 잘 알려져 있어 내가 굳이 다룰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하사냐 진상이냐의 논쟁을 바라보면 비슷한 사건이 중세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고 막부가 닛코에 도쇼쿠를 지을 때 사신을 보내 인조와 효종에게

폐백과 어필을 하사해달라고 부탁한 기록이 실록에 남아있다. 그래서 논란 끝에 보내주었는데

지금 닛코에는 그것이 조선왕이 진상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칠지도도 뭐 



명문


물론 가도 칠지도 진품은 볼 수 없다.


배전 뒤의 영역은 담으로 둘러쌓여져 있고 신성하게 보여되는 금족지이다.

이 금족지는 한 차례 발굴조사되었는데 많은 유물이 나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대의 황실과 관련된 유적 발굴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창고가 신고이다. 여기서 바로 칠지도가 발견되었다.




이소노카미신궁을 나선다.



꽃무릇이 활짝 피어있다.


신궁 밖에 위치한 말사. 에비스를 모시고 있다.


걸어서 역까지 간다. 30분이 넘게 걸렸다.

텐리대가 보인다.


텐리시는 텐리교의 총본산이 있는 곳이고 도시 전체가 특정 종교의 교인들이 사는 곳이 되었다.

텐리교는 근대 일본의 여러 민족종교 중 가장 성공한 축에 속하는 종교이다.

미키라는 한 아줌마가 어느 날 신이 들려 자신이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를

보았다고 하고 그 신탁을 내린 것이 시작이었다.


전체가 이런 신자 숙소로 이루어져 있다.


94호 모옥


제4 식당


길 가운데 있는 조문시대 초기 유물 출토지



사람이 별로 없다.

어쩐지 으스스하다. 편의점도 별로 없다.









음.. 건물이 다 이렇다.


원래 여기서 카시하라로 가서 단잔신사를 가려 했는데 시간이 늦어 포기했다.

텐리역 광장에 앉아 늦은 점심을 때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