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7일 교토 라쿠사이3 (고류지広隆寺)

同黎 2018. 6. 1. 23:48



7일째 처음 찾은 사찰은 고류지


참 많이 왔었다.

심지어 오고도 기록을 안 했던 적도 많다. 고류지(광륭사, 広隆寺)는 교토 천도 이전의 선주민이자 도래인인 하타씨의 우지데라로 시작한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본래 지금의 히라노신사 자리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보이고 이 때는 우즈마사데라라고도 부르는 하타씨의 사찰이었다. 쇼토쿠태자가 미륵반가사유상을 봉안하려고 하자 하타노 카와카츠(진하승)가 나서서 자신이 사찰을 지어(혹은 자신의 사찰에) 모셨다고 전해진다. 또 일본서기에 신라와 임나의 사절이 일본에 방문해 불상을 바쳤다고 하는데 이것이 호류지에 내려오는 두 구의 반가사유상(보관미륵과 우는 미륵)이라고도 한다. 다만 쇼토쿠태자의 불상이나, 일본서기의 불상이 현재 전해지는 불상이라는 명확한 확증은 없다. 다만 유명한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은 적송을 주재료로 하고 일부 녹나무를 섞어 썼기 때문에 도래계로 보는 의견이 유력하다. 또 한편으로는 쇼토쿠태자의 이궁 터라는 의견도 있는데 이건 대중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 전설 덕분에 계궁원이라는 팔각당이 있는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헤이안 천도 이후에 지금의 지역으로 이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헤이안시대 초기 대화재로 당초 건물이 대부분 소실되는데 이후 고류지 별당으로 취임한 진언종 승려 도창이 건물을 재건시킨다. 이후 몇 차례의 화재가 있었으나 계속해서 재건이 된다. 물론 창건 당시보다 가람의 규모가 대폭 작아진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가마쿠라시대 쇼토쿠태자 신앙이 강해지자 수혜를 크게 입었으며 진언종 산하에 있었다가 단립으로 독립했다.



고류지 유래비


중간에 파낸 부분이 보인다.


진씨가 진시황제의 후손이라고 썼던 부분

너무 말이 안 돼서 결국 지웠으나 현재도 중국계인데 한반도를 거쳐 도래했다고 주장하는 중


본당인 상궁왕원태자전

18세기 초의 건물이다. 안에는 본존인 쇼토쿠태자를 모시고 있는데 중요문화재이며,

천황이 하사하는 옷을 입는 전통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면


내부는 비공개


대신 여러 인물들의 현액만 가득하다.


태자당 내부


본존 쇼토쿠태자상

입고 있는 옷이 천황의 예복이다.


태진당

개산조인 하타노 카와카츠 부부를 모셨던 곳


태자전을 옆으로 지나

영보전 쪽으로 가면


계궁원이라는 표석이 보인다.


비공개 지역으로

가마쿠라시대 호류지 몽전을 본따 만든 것으로 국보이다.


하지만 언제 공개될지 모르는 비공개 건물이다.

비불도 아니고 왜 건물이 비공개인지..


석등롱

가마쿠라시대


들어가는 길

배관료는 700엔


영보관

규모는 작지만 안은 꽉 차 있다.


영보전 현판


오랜만에 고류지 도록으로 설명한다.

광륭사가람도


강당 내부의 불상들


국보 아미타여래상

헤이안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중후한 느낌이 나는 수작이다.


허공장보살상

중요문화재


지장보살상

중요문화재


한국의 국보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똑같은 목조미륵보살반가상

원래 금박이 붙어 있었다고 하며, 적송으로 만들어 한반도 도래상으로 얘기가 되었지만

1968년 조사 결과 뒤판은 녹나무로 되어 있어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에서도 왈가왈부 중


자세히 알려지 있지는 않지만 뒷부분 같은 경우는 아주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안면부도 미세하게 전체를 깎아내서 상호가 변했다는 평가가 있다. 너무 날카로워졌다고

수리 전 사진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금동상처럼 좀 더 중후하고 부드러워 훨씬 비슷했다고 추정 중이다.


또 다른 국보인 우는 미륵상

역시 아스카시대의 목조 반가사유상이다. 백제에서 전해졌다고 전승된다.

쇼토쿠태자와 관련된 곳엔 관음이던, 미륵이던 반가상이 많다.

주목해야 할 부분


헤이안시대 후기

고류지의 개산조 하타노 카와카츠 부부상으로 전해지는 신상

중요문화재


국보 불공견삭관음상

나라시대 덴표 시기의 불상으로 고류지 화재 이전에 만들어져 안치되었던 것이다.

본래 7관음상 중의 하나였다고 전해지며 높이가 3미터가 넘는 거대한 불상이다.


국보 천수관음입상

이곳에는 헤이안시대의 불상도 풍부하다.

9세기의 작품으로 본래 강당에 봉안했던 불상이라고 전한다.

높이 2.6미터가 넘는 거대한 불상이다.


중요문화재인 약사여래삼존상 중 일광보살상


칙명으로 봉한 비불 약사여래의 협시보살로 헤이안시대 작품이다.

중요문화재

약사여래는 11월 22일 쇼토쿠태자의 기일에만 공개된다.


국보 십이신장상

헤이안시대 이후 한동안 약사여래가 본존으로 바뀌었을 때의 권속상이다.

헤이안시대 후기 만들어졌다고 하며 12개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마니라대장상


천수관음상

중요문화재로 헤이안시대 후기의 거대한 불상이다.


비사문천상

헤이안시대 초기로 추정

중요문화재


오발문수보살좌상

문수보살의 다섯 지혜를 의미한다. 헤이안시대 후기, 중요문화재


흔치 않은 소조미륵보살좌상

헤이안시대

중요문화재


길상천입상

헤이안시대 초기

중요문화재


성덕태자반가상

구 계궁원 본존으로 가마쿠라시대의 작품이다.

쇼토쿠태자상 중 아름다운 작품이다.


사천왕상 중 하나

4구가 다 남아있는 헤이안시대 작품이다.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후기 지장보살상

매목지장보살이라는 별칭이 있다.

중요문화재


장왕권현상

가마쿠라시대 초기

중요문화재


부동명왕상

헤이안시대 초기

중요문화재


성관음입상

헤이안시대 초기

중요문화재


여의륜관음상

계궁원 내에 안치되었던 불상이다.

헤이안시대 후기, 중요문화재


철종

가마쿠라시대, 중요문화재


준제불모상

가마쿠라시대

중요문화재


능혜법사회사

도다이지의 승려로 대반야경을 서사하던 도중 열반에 들었으나

염라대왕이 다시 살려줘서 서사를 완성했다는 이야기이다.

가마쿠라시대의 중요문화재

 

국보 광륭사자재장

국보 광륭사자재교체실록장

모두 헤이안시대 초기의 문서로 고류지의 불상 등을 기록한 목록이다.


영보전 밖의 변재천당


이제 영보전을 나선다.


태자전을 지나


강당으로 간다


헤이안시대 후기의 건물

무로마치시대에 수리되긴 했지만 그래도 헤이안시대의 모습을 갖춘 교토 시내의 몇 안 되는 건물이다.

중요문화재


안내판


강당 앞의 꽃


초롱꽃이 피었다.



강당 안내판


안을 들여다 보니 국보 아미타여래상이 보인다.


상호


허공장보살상


지장보살상


에도시대 18세기에 재건한 누문


이제 밖으로 나간다.


길가의 작은 석불


늘 오던 아게타테이에서 점심을 먹는다.


내부


언제나 맛있는 텐동


오야코동도 맛있다.


이제 닌나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