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9차

9번째 간사이원정기 곁다리 - 7일 교토1 (고류지広隆寺)

同黎 2016. 3. 1. 23:47



한편 김동영의 여행기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우메다로 가서


한큐를 타고 교토로 향한다.


평일이라 한가한 특급칸


한큐 사이인역에서 하차


여기서 란덴열차로 환승을 해야 한다.


란덴 사이인역

란덴열차는 전차가 사라진 한국인에게 묘한 느낌을 주는 열차이다.


차도 한가운데 나 있는 전차선

여길 지나면 끼익 하는 쇳소리가 난다.


반대편 열차 도착


이쪽 열차도 도착


조금만 가면 바로 우즈마사고류지역

여기서 내리면 바로 고류지의 누문이 보인다.

여기도 참 여러 번 왔다.

신라계 도래인이라는 하타씨(秦氏)의 씨족사찰로 일본서기에서 쇼토쿠태자가 신라에서

받은 미륵보살상을 모시는 사찰로 등장한다. 교토 천도보다 훨씬 더 오래된 사찰이다. 일본 측의

기록에는 하타씨를 진시황제의 후예라고 하고 있다. 최근의 기록도 아니고 나라시대에 만들어진

신찬성씨록에도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최근에 진한의 유민, 즉 신라의 유민으로 보는 견해와

백제의 유민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일본세기에 백제인을 이끌고 귀화했다고 써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사찰의 명맥을 잘 이어왔으나 광대한 사역은 매우 줄어들었다.

과거의 영광은 이제는 영보관에 남아 있는 많은 불상으로만 남아있다.



누문

인왕상을 모신 에도시대의 건물이다.

워낙 오래된 불상이 많은 곳이니 이 정도 문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시내에 이런 문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보면 여러 감회에 젖게 하는 건물이다.


들어서면 바로 약사당이 보인다.

안에는 헤이안시대 전기의 약사여래입상이 모셔져있다고 한다.


정면엔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강당으로, 후에는 금당이라고도 불렸다.

12세기에 재건한 건물로 헤이안시대 건축이다. 근세에 개축되었으나 건물 모양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안에 모셔진 아미타불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본당인 상궁왕원태자전(上宮王院太子殿)

고류지는 진언종 계통의 단립사원이지만 성덕태자를 본존으로 모시고 있다.

안에 모신 성덕태자상은 중요문화재로 매번 천황의 즉위식에 쓰인 옷을 하사받아 입히고 있다.


본당과 강당 사이의 태진당

우즈마사당으로 읽는다. 

고류지를 만든 하타씨의 조상 하타노 카와카츠(진하승)과 그의 부인을 모시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그 신상은 영보관에 있다.


경내는 무료이지만 영보관에 가려면 700엔을 내야 한다.


영보관 입구


유명한 국보 보관미륵

한국의 국보 87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똑같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라의 것이라는 설이 강력하지만 이설도 있다.


옆에 있는 우는 미륵

아스카시대의 불상으로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보관미륵과 대비되어 보발미륵이라고도 불린다.

광륭사 자재장에 두 체의 미륵보살을 모시고 있다는데 이것이 위의 두 반가사유상을 가리킨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 이외에는 미륵보살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 기록과 야추지의 반가사유상 명문 덕에 반가사유상=미륵보살상이라는 설이 굳어졌다.


헤이안시대의 웅혼한 기운을 보여주는 불공견색관음상

국보이다


역시 헤이안시대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십이신장상

국보이며 약사여래의 협시이다.


강당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상

국보로 지정된 헤이안시대의 불상이다.


영보관을 나온다.


본당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 김동영

일본인에게 부탁했나보다.



이런 무리하게 여러 장 찍게 시켰나보다.


한쪽에 서 있는 비석


중요문화재 강당

헤이안시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정면 벽 좌우의 창문은 선종풍으로

가마쿠라시대 이후의 변형이 보이는 것 같다.


이렇게 김동영이 혼자 다닌 첫 일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