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9차

9번째 간사이원정기 곁다리 - 7일 교토5 (고다이지高台寺)

同黎 2016. 3. 7. 20:56



이제 헤이안신궁을 떠나 고다이지로 간다.

비와호로부터 끌어들인 물이 운하를 거쳐 가모가와로 흘러간다.


운하를 따라 가다보면 기온 뒷골목이 나온다.

야사카신사의 사하촌(社下村)으로 성장해 한때 교토 최고의 유흥가였던 곳이다.


멀리 뾰족한 첨탑을 달고 있는 건물이 보인다.

가이드북에 단골로 등장하는 건물이지만 정작 소개는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건물은 1920년대

지어진 기온카쿠(祇園閣)라는 탑으로 다이운인(大雲院)이라는 꽤 큰 사찰의 건물이다. 나름 금각, 은각과

함께 3대 각이 되겠다고 구리를 써 동각(銅閣)이라고 부른다던데 참 말 만드는 건 잘하는 교토사람들이다.

다이운지가 통상 비공개사찰이기 때문에 사진에는 많이 등장하지만 가이드북에는 소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교토의 3대 누각으로는 금각, 은각과 함께 니시혼간지에 있는 국보로 지정된

비운각(飛雲閣)인데, 이게 워낙 비공개이다보니 여기저기 말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다이운인 앞의 지장보살상


입구

규모가 꽤 큰 절인데 한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로 관백 자리를 이어받았던 도요토미 히데츠구가

숙청당할 때 함께 떼죽음을 당한 그 측실들과 가솔들을 공양하던 절이라고 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고다이지의 입구가 나온다.


낮은 돌계단을 올라가면 

고다이자가 숨어 있듯이 나타난다. 참 기가막힌 배치이다.


숲 속에 숨어있는 듯한 산문을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고다이지의 공간이 나타난다.

고다이지를 다 보고 나오면 넓은 주차장과 바로 옆에 보이는 료젠관음을 보며

어떻게 이런 넓은 곳이 있었지? 라며 궁금할 정도이다.


고다이지(高台寺)도 몇 번 와봤다. 고다이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인 기타노만도로코 네네가

말년에 이에야스의 후원을 받아 지은 사찰로 그녀가 출가하여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네네는 고다이인이라는 원호(院號)를 받는다. 

네네는 히데요리의 생모인 요도도노(요도기미)와 큰 정치적 갈등을 가졌고, 히데요리가 히데요시의

아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결국 네네가 이에야스 측에 서면서 히데요시가 키운

무장들은 이에야스를 지지할 명분이 생겼고 이에야스는 네네에게 고다이지를 지어 주고 후시미성에

있던 건물들을 옮겨주어 히데요시를 추억하며 말년을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한 차례 화재로 불전 등이 소실되고 지금 남은 사찰을 방장을 중심으로 스님들이 수행하고 생활하던

공간과 정원이 대부분이다. 임제종 건인사파의 사찰인데 당초에는 얼마나 컸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고다이지에서 바라보는 기온카쿠

여기서 보는 기온카쿠의 모습을 교토 가이드북의 단골 사진이다.


방장을 거쳐 정원으로 들어가면 알본의 유명한 작정가인 고보리 엔슈가 만든 정원이 펼쳐진다.

연못 가운데 다리를 놓고 회랑을 놓았으며 가운데에는 관월대라는 작은 정자를 지었다.


방장의 정원

전형적 모래정원인데 그때 그때 이것저것 설치를 한다.


흙으로 언덕을 만들어 바위와 나무를 설치하고 연못을 만들었다.

에도시대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개산당

중요문화재이다.


개산당에서 언덕 위에 있는 영옥(靈屋)까지 와룡랑이라는 회랑을 지어 이어주었다.

중간에는 연못이 있어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만들어준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 와룡랑


영옥(오타마야)

안에는 히데요시와 네네의 상을 모셨다.

역시 중요문화재. 내부 전체를 마키에라는 일본 전통의 옻칠 공예로 장식해 놓았다.

옻에 금이나 은가루를 섞어 화려한 회화적 장식을 하는 기법을 마키에라고 하는데

고다이지의 마키에는 그 정점에 오른 작품이라고 평가되며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와룡랑이 바로 이 곳에서 끝난다.

비를 맞지 않고 바로 영옥으로 올라가는 기능적 역할도 하겠지만 히데요시와 네네의 혼이

아래로 내려가 노닐기 좋게 한다는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켠의 무덤들


언덕 위에는 후시미성에서 가져왔다는 두 채의 다실도 있다.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모두 일본 다도의 성인이라는 센노 리큐의 작품이나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앞의 것은 산정(傘亭)이라고 한다. 센노 리큐가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 옆의 2층 다실은 시우정(時雨亭)이라고 한다. 비와 단비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다실이다.


순로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옆에 괴물처럼 들어 앉은 료젠관음이 보인다.

메이지유신과 2차대전에 죽어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관음상이라는데

의도도 괘씸하고 아름다운 히가시야마의 광경도 망쳐놓는 무식한 조형물이다.


어쨌든 고다이지의 정원은 아름답다.

비록 조선의 원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이토록 아름다운 건 참 모순적이다.


고다이지의 칙사문

불탄 것을 재건한 것이다.


고다이지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대흑천을 모신 작은 건물이 나온다.

이렇게 7일차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