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일 - 교토히가시야마2 (교토료젠고코쿠신사京都霊山護国神社2 - 사카모토 료마의 묘坂本龍馬の墓)

同黎 2016. 5. 18. 19:38



바로 옆에는 토사번의 동지 사카모토 료마와 나카오카 신타로가 나란히 묻혀있다.


두 사람의 묘


두 사람에게 정4위의 관직을 증직하면서 세운 비석


수많은 비석 가운데, 산간을 치고 도리이를 세워 다른 곳과 구분해 두었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메이지 유신 최고의 스타이다.

토사근왕당을 만들어 존왕양이운동을 하고, 고베 해군 훈련소를 설립하는데 관여하여 일본 해군의

기원이 되고, 사츠마와 조슈번의 삿초동맹을 이끌어내서 메이지유신을 가능하게 하고, 대량의 총을

무역해오는데 성공해 유신세력의 군사력을 갖추게 하고, 대정봉환을 입안해 정치에도 관여하였으며,

가이엔타이(해원대)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해 후의 미츠비시 재벌의 효시가 되기도 한다. 테라다야 사건으로

죽을 뻔하고 끝내 오미야 사건을 통해 교토에서 동지 나카오카 신타로와 함께 암살당했다.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라는 소설로 일약 스타가 되었는데 그의 역할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慎太郎)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사카모토 료마와 함께 토사번의 무사로

토사근왕당에 함께 참여하였다. 삿초동맹의 실제 큰 역할은 그가 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료마와 동등하게 활약했던 사람이다. 료마에게 해원대가 있었다면 그는 리쿠엔타이(육원대)라는

무력집단이 있어 실질적인 양이활동을 하였다. 오미야사건에서 료마와 함께 암살당했다.


이 두 사람의 무덤을 뒤로 하고 올라가면


이케다야 사건으로 죽은 이들의 무덤이 있다.

1864년 삿초동맹에 위협을 느낀 막부세력이 교토 후시미에 있던 이케다야라는 여관에 있던

사카모토 료마와 조슈번 양이지사들을 신센구미가 습격했다.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토시조,

오키다 소지 등 신세구미 지도부가 대거 출동해서 신센구미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13명의 양이지사가 죽고 다수의 지사들이 체포되었다.

(사실 자꾸 은혼 등장인물이랑 이름이 헷갈린다.)



줄지어 서 있는 양이지사들의 무덤


올라가는 길 야마구치번 초혼사가 서 있다.


야마구치번은 바로 조슈번이다.

바로 이케다야 사건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었던 조슈번이기에

바로 그 옆에 조슈번의 초혼사가 서 있는 것이다.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등

신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낳았고, 아베 신조도 바로 이 곳 출신이다. 일본 제국 육군의 탄생지이며,

야스쿠니신사의 원래 이름이 조슈신사였을 정도로 극우적 색채를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료젠 초혼사가 서 있다.

바로 교토 출신의 존왕양이지사를 모신 곳이다.

교토에는 막부에 밀려 권력을 잃었던 공경 출신들의 근왕파들이 있었고

이들은 천황제를 복원하자는 의미에서 조슈, 토사 등의 번과 연합하였다.



정말 무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무덤들 사이로 큰 비석이 서 있다.


사람들의 이름이 써 있는데 무슨 비인지는 모르겠다.


가는 길에 지금의 나가사키 지역인 오무라번의 번사이자 근왕지사였던 마츠바야시 렌노스케(松林廉之助)의 비석이 서 있다. 본명은 마츠바야시 한잔(松林飯山)으로 교육에 힘쓰다가 결국 암살당했다.

 

이제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랐다. 여기가 바로


유신삼걸이라고 불리며 청년시절에는 가츠라 코고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의 무덤이다.

무려 종1위에 증직되었다.


무덤 옆에는 작은 비석이 있어 그가 정2위에서 종1위로 증직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메이지 35년 종1위를 추증받았다는 비석

종1위면 거의 올라갈 수 있는 최상급이다.


기도 다카요시. 본래의 성은 와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가츠라가의 양자로 가면서 성도 가츠라로 바뀐다.

그래서 33세까지는 가츠라 코고로로 불리는데 이후 2차 조슈전쟁이 있던 때 조슈번의 번주였던

모리 타카치카가 그에게 기도라는 성을 내려주어 이후 기도 다카요시가 되었다.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토시미츠와 함께 유신삼걸이라고 불리며 조슈번 출신으로 요시다

쇼인의 제자 중 한 명이다. 양이지사 활동을 할 때는 도망을 너무 잘 다녀 도망의 코고로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번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박탈하는 판적봉환과

봉건제 자체를 없애는 폐번치현을 주도한 인물이다. 5조목의 맹서문으로 천황제를 확립시켰고

이와쿠라 사절단의 한 사람으로 서구문명을 보고 왔으며 입헌군주정을 주장했다. 급진파로 당장의

정한론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와는 달리 온건파였고 서남전쟁을 보지는 못한 채 45세로 사망했다.

주군인 모리가와 메이지천황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훈1위 종1위이며 후손들에게는 공경가를

제외하고는 오쿠보와 함께 유이하게 후작을 받았다니 그에 대한 예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옆에는 그의 부인이 나란히 묻혀 있다.


처의 무덤에서 바라본 기도 다카요시의 묘


료젠의 무덤은 그의 무덤을 기점으로 하여 아래로 펼쳐져있다.

이제 다른 쪽으로 내려가본다.


바로 아래는 금문의 변 당시 죽인 이들의 매골탑이 있다.

금문의 변이란 1863년 조슈번의 양이파들이 교토 수호직이었던 아이즈번의 마츠다이라 가타모리를

몰아내고자 교토에서 벌인 시가전이다. 이때 3만 가구가 소실되었다고 하니 엄청난 사건이었다.


위령비



여기저기 2차 세계대전으로 죽어간 이들의 무덤이 보인다.


미토번주의 묘라고 되어 있는데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다.


옆에 보니 미토번 초혼사가 보인다.


미토번은 특이한 번이다. 미토번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가 직계의 단절을 우려하여

대비책으로 자신의 세 아들을 다이묘로 봉한 고산케(御三家)의 하나이다.

실제로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바로 미토번의 자손이다.

그러나 미토번은 대대로 존왕파가 많았고, 번주가 주도로 일본 특유의 국학이 발전하여 미토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적 조류를 이룬다. 이른바 만세일계라는 천황에 대한 환상은 바로 이 미토번에서 시작되었다.

미토번 안에서 많은 존왕지사가 나왔고 대표적인 게 텐구당이다. 심지어 9대 번주였던 도쿠가와 나리아키는 이이 나오스케와 갈등 끝에 감금되기도 했다. 참 막부가의 후손이 막부철폐에 앞섰다니 희한한 일이다.


옆에는 지나사변, 즉 중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전몰자 위령비가 서 있다.


수 많은 무덤 무덤 무덤


이번엔 후쿠오카번이다.


여기에는 후쿠오카현 초혼장이라고 써 있어, 폐번치현 이후에 설치된 비석임을 알 수 있다.


쿠로다 가문의 후쿠오카번도 나름 200여 명의 근왕지사를 낳았다고 한다.


후쿠오카번의 대표적 양이지사인 히라노 쿠니오미(平野国臣)의 비석


히라노 쿠니오미는 사츠마의 사이고 다카모리 등과 교류를 하며 무력 봉기를 꾀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거병 중 잡혀가 교토에 있던 중 아이즈번과 사츠마번의 공무합체파(천황가와 막부가를 결혼시켜 막번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파)가 조슈번의 양이지사들을 몰아내던 8월 18일의 변에서 사살당했다.


이번엔 기후현이다.


바로 옆에는 구마모토번 초혼비가 서 있다.



기후현 초혼사

여기도 많은 양이지사들이 있겠지

조슈나 다른 곳에 비해 인지도가 밀리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이렇게 한바퀴 돌아보니


다시 사카모토 료마의 무덤으로 돌아왔다.

함께 죽은 이들의 동상이 서 있고


무덤은 말이 없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지 꽃은 가득하다

계속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서구 제국주의 앞에 정말 아시아의 길은 같은 제국주의 괴물이

되는 것 밖에 없었는지 그것이 숙명이었는지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역사학이라는 과거의 학문을 하면서 자꾸 만약을 가정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료마의 묘 바로 옆에는 아까 지나친 쇼와의 사가 서 있다.

그 앞에는 대동아전쟁 종군기념비라는 비석이 서 있다.

어디가 대동아라는 말이냐


쇼와의 사

전쟁 전 쇼와시대를 추억하는 신사이다.

제국주의를 숭고함으로 치장하는 곳이기도 하고


만주군에 대한 추모비


다음은 구축함이다.

태평양전쟁 때 참전한 나가나미(長波)의 기념비이다.

1942년 완성되어 과달카날 전투, 라바울 해전, 레이텐 만 전투 등 굵직한 해전에 참전했던 구축함이다.


옆에는 구축함 나가나미의 위령비가 서 있다.


교토료젠호국신사를 짓는다는 청동비

1868년 전국 최초로 내려진 호국신사 건립에 대한 칙령을 담고 있다.


옆에는 보병 제109연대의 전공패와



죽은 이들의 이름을 적은 거대한 비석이 서 있다.


교토의 야스쿠니, 교토료젠고코쿠신사는 생각보다 엄청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