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0일 - 고야산9 (곤고부지 단조가란金剛峯寺 壇上伽藍)

同黎 2016. 9. 3. 20:46



단조가란으로 가는 길

여기도 예전에 왔었다.



오쿠노인부터 대문까지의 길쭉한 고야산 경내의 모습을 구카이는 용에 비유했다고 한다.

그 중 이 부분이 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뱀의 배 길이라는 이름에서 사복로라고 부른다.


대가람이라는 현판


경내로 들어가는 길


200미터 정도의 오솔길이 펼쳐진다.


드디어 멀리 건물이 보인다.

단조가란(단상가람, 壇上伽藍)은 곤고부지의 중심부, 즉 신앙공간에 해당하는 곳이다. 본래 고야산은

근본대탑과 금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단상가람을 중심에 놓고 여러 사찰이 난립한 모습이었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토지와 대지의 소유권 문제 등이 생기면서 지금의 총본산 곤고부지를 세우고,

단조가란도 곤고부지의 소유로 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상 고야산 전체의 신앙지 역할을 하며

나머지 각각의 사찰은 수행과 생활의 공간이 된다.

단조가란의 건물은 수 차례의 화재로 부동당 등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하면 다 재건된 것이며, 에도시대 후기의 건물도 많다.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동탑

헤이안시대 후기 시라카와천황의 명령에 따라 지어졌으며 본래 상황의 등신대 상을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수 차례 소실되어 지금의 탑은 1984년 재건한 것이다.


옆에는 고야산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다.


동탑의 모습

전형적인 다보탑이다



뭘 이렇게 많이 찍었니


동탑 안내판


동탑 옆으로 거대한 근본대탑을 비롯한 수많은 건물이 펼쳐진다.

고야산은 진언밀교의 총본산답게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이름의 건물도 많다.


근본대탑-대회당-삼매당의 순으로 서 있다.


삼매당


삼매수행의 의식을 하던 곳이다. 지금 건물은 19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삼매당 앞에는 헤이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유명한 사이쿄(西行)가 심었다는 사쿠라가 있다고 한다.


사이쿄가 심은 사쿠라 뒤로 보이는 거대한 건물은 대회당이다.


대회당은 도바천황의 딸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었다고 하며 학습을 위한 공간이다.

현재 법회를 수행하는 곳이며 19세기에 재건된 것이다.


대회당 옆에는 국보로 지정된 부동당이 보인다.


이 건물 역시 헤이안시대 후기인 12세기 말 도바천황의 딸이 발원해서 지은 것인데,

14세기에 재건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메이지시대에

옮겨온 것으로 안에는 유명한 부동명왕과 팔대동자상이 모셔져 있었다.

고야산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노송나무 껍질로 지붕을 올려 격이 높은 건물임을 알려주고 있다.


부동당 현판


부동당 안내판


부동당 앞에는 연못이 있다. 다리 건너 섬에는 선녀용왕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데, 선녀용왕의 화상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부동당 정면


지붕의 모습

귀족적 건축에만 쓰이는 특이한 처마이다.


부동당에서 보는 애염당과


대회당


음 사진이 다 똥같이 나왔다.


애염당은 고다이고천황의 명으로 세워진 것으로 안에는 고다이고천황의 등신대상과 애염명왕을 모셨다.

현재 건물은 19세기 재건한 것이다.


애염당 현판


이제 근본대탑의 모습이 보인다.


엄청난 크기의 근본대탑

20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역시 거대한 금당도 보인다.


근본대탑은 고야산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이 거대한 다보탑은 구카이가 중국에서 돌아오면서 계속 세우고자 했으나

결국 그의 조카이자 2대 좌주인 신넨의 대에 세워질 수 있었다.

안에는 태장계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금강계 사방불과 16주의 보살이 모셔져 있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어 오랫동안 재건되지 않았으나

1937년 홍법대사의 입정 1100년을 기념하여 재건하였고 쇼와천황이 친필 현판을 하사하였다.


크기가 엄청나다.

들어가려면 200엔을 내야 한다.


근본대탑 안내문


역시 사진이 똥망이라 다른 곳에서 퍼왔다.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


이제 금당 쪽으로 간다.


금당 측면


아 사진...


결국 퍼왔다...

고야산을 창건할 당시 홍법대사 구카이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근본대탑과 함께 고야산 신앙의 중심이다.

1926년에 소실된 것을 1934년 재건했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었으며 너비 30미터, 높이 24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건물이다. 안에는 본존 약사여래 등 7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었으나 26년 화재로 6구가 소실되었다.

괜히 비불이라고 아끼다가 이렇게 사진조차 안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고야산도 이렇고 히에이잔도 그렇고 그냥 공개하자


중문이 보인다.

저번에 왔을 때는 안 보였는데 그새 재건공사가 끝났다.


한쪽에는 거대한 종이 걸려있다.


고야 시로(高野四郎)라는 애칭이 붙은 이 거대한 종은 모모야마시대의 것으로 직경이 2미터가 넘는다.

원래 초대 종은 구카이가 발원하고 신넨이 완성했다고 하지만 지금의 종은 4번째로 주조된 것이다.


멀리 어영당이 보인다.


어영당은 홍법대사 구카이를 모시는 곳으로 정사각형의 당에 정면 어칸만 한 칸 튀어나와 있다.


19세기에 재건된 건물로 안에는 공해(구카이)와 그의 십대제자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여러모로 다른 어영당 건축의 모범이 된 건물이다.


어영당 현판


어영당에서 바라본 금당


아 이것도 사진이...


삼고의 송(三鈷の松)이라고 하는 이 소나무는 홍법대사의 삼고저가 자란 것이라고 한다.

홍법대사가 귀국할 때 일본의 수행지를 찾기 위해 중국 명주에서 일본을 향해

삼고저를 날렸는데 그것에 와서 꽂힌 것이 이것이라고 한다. 뭐 믿거나 말거나


나는 힘들어서 어영당에서 일단 쉰다.


멀리 보이는 종루


전형적인 일본의 종루


다음은 서탑이다


서탑은 본래 근본대탑과 쌍이 되는 탑으로 안에는 금강계 대일여래와 태장계 사방불이 모셔져있다.


현재의 건물은 19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재건한 것이라고는 해도 나름 격이 갖추어진 웅장한 건물이다.

위키백과에는 중요문화재라고 되어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서탑 안내판


상대적으로 넓어서 안정감과 웅장함을 느끼게 해주는 서탑


다음은 준제당


준제관음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으며 본래 식당에 모셔져 있던 준제관음을 모셨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메이지시대 재건한 것이다.


공작당

공작명왕을 모시는 곳이다.


본존인 공작명왕상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은 영보관에 있다.


옆에서 본 서탑의 모습


내려다 본 근본대탑의 풍경


가장 안쪽으로 왔다.

산왕원 배전이 보인다.


산왕원은 고야산의 진수사로 고야명신을 비롯한 이 지역의 지역신을 모시는 곳이다.


반대편의 본전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6세기의 건물이다.


붉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고


도리이 너머에 본전이 언뜻 보인다.


건물은 잘 안 보이네


안에는 니우명신(丹生明神), 고야명신(高野明神), 그리고 수많은 신을 모신 총사의 3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도리이와 담까지 모두 중요문화재이다.


이 배전 건물 역시 16세기의 건물이라는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진 않았다.


안내판


멀리 육각경장이 보인다.


금당 앞편의 길


육각경장은 도바법황의 황후가 지었다고 하나 지금의 건물은 1934년 재건한 것이다.


중문의 모습

2015년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금당의 정면


중문 역시 에도시대 대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재건되었다.


중문에 모셔진 사천왕


광목천과 증장천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비사문천과 지국천은 화재를 면한 것으로,

본래는 이 2개 상만 모셔져 있었으나 후에 사천왕으로 늘린 것이라고 한다.

사진은 화재를 면한 비사문천(광목천)상


이렇게 단조가란까지 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