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0일 - 고야산6 (곤고부지金剛峯寺1)

同黎 2016. 8. 17. 03:09



도쿠가와가 영대에서 내려가는 길


옆길로 조금 내려가면 곤고부지 옆길이 나온다.


곤고부지 측면의 문


이 쪽으로 들어간다.

회화문이라고 하며 와카야마현 지정문화재이다.


총본산 곤고부지(금강봉사)라는 표석


동사진언종과 함께 총본산을 자처하는 고야산진언종의 총본산이다.


이 곳도 2번째이다.

예전에 왔을 때 너무 춥고 눈까지 만나 후다닥 보고 내려갔는데 이번엔 조금 더 잘 볼 수는 있을 듯하다.



기념촬영 중


경내는 무료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곤고부지는 고야산의 총본산이다.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홍법대사 공해(구카이)는 당에서 유학하여 밀교를 배워와서 천황의 큰 신임을 받았으며 이후 전설에 따르면 수행에 적합한 여러 땅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신들의 외호를 받아 고야산을 발견하고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후 구카이는 천황으로부터 고야산을 하사받았고 이후 고야산은 갈수록 성장하였다. 나라불교와의 갈등은 천태종과는 달리 이들의 기존 권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타협하였고, 또 천태종의 엔랴쿠지처럼 승병이 설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평탄한 길을 걸어왔으며 전성기에는 2000여 곳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약 100여 개가 남아 있다. 

고야산의 최대 위기는 오다 노부나가와의 대립으로 그는 엔랴쿠지를 정벌한 후 각지의 진언종 승려를

죽이고 고야산을 공격하려 했는데 마침 그 직전 혼노지의 변으로 그가 죽어 고야산은 화를 피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고야산을 정벌하려 했는데 무사 출신 승려의 중재로 사찰령 토지의

많은 부분을 바치고 고야산은 생존할 수 있었다.


들어가는 중


이행묵 뭐하는 거니?

귀요미?


마당에 땔감이 원통형으로 쌓여 있다.


거 참 이런 거까지 이렇게 만들다니


일본애들 참 대단하다.


멀리 종루가 보인다.


종루와 표문


건너편에는 거대한 현관과 대소가 있다.


본래 곤고부지(금강봉사, 金剛峯寺)는 고정된 사찰이 아니라 고야산에 있는 사찰들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었다. 20세기 이후 종교법인을 등록해야 하면서 세이간지(청암사, 青巖寺)와 코잔지(흥산사, 興山寺)

라는 가장 큰 사찰 두 곳이 통합해 지금의 곤고부지 자리로 이전하고 곤고부지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본래 청암사는 히데요시의 보리사로 지어진 사찰로 관백 히데츠구도 이 곳에서 자결하는 등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그리하여 승려의 수행, 생활 공간인 대소는 총본산 금강봉사(곤고부지)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고 근본대탑, 금당, 부동당 등 중앙 신앙의 권역은 단조가란(단상가람)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독립하되 기본적으로 곤고부지의 관리를 받도록 하였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라

지금도 고야산 내 여러 건물과 문화재의 소유관계가 복잡하다.


종루의 모습


와카야마현 지정문화재이며 본래 세이간지의 건물로 19세기 재건한 것이다.


안내판


현관의 모습


표문


이게 사실 정문이다

역시 19세기의 건물


아래로는 가장 큰 거리가 있다.


중심이 되는 대소

선종사찰에서의 방장에 해당하며 승려의 생활과 수행, 손님의 접대 등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안에는 대주전, 오서원, 별전 등이 이어져 있으며 이 중 눈에 보이는 중심 건물은 19세기 재건한 건물이다.


현관


공식적으로 방문한 높은 위치의 인물들은 여기로 입장한다.


현관 정면


매우 장식적인 지붕 박공의 모습


삐뚤어졌네


한쪽에는 오래된 나무도 심어져있고


연못 너머로 경장도 있다.


경전을 보관하는 곳이다.


특이하게 입구 쪽이 튀어나와 있다.


역시 19세기의 건물로 와카야마현 지정문화재


안내문


대소 풍경


크다. 엄청 크다


입장

입장료는 500엔


들어가면 보이는 풍경


사찰 현판과 함께 장벽화(후스마에)가 보인다.


아까 보았던 오쿠노인에서 죽은 거대한 삼나무


대소 대주전의 넓은 공간은 금박을 입힌 후스마에로 장식되어 있고


저 멀리 불칸이 보인다.


중앙에는 홍법대사 구카이(공해)를 모시고 있다.


여기서는 홍법대사가 부처님의 화신이다.

대일여래의 화신


화려한 후스마에들


19세기에 재건된 것이라 대부분 와카야마현 지정문화재이다


현관 부분


가장 안쪽은 이렇게 노송도를 뚜렷하게 잘 그려놓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매화의 칸

여기서부터는 대부분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다.


위치에 따라 그려지는 그림이 다르고 그 방의 격이 달라진다.


후스마에 앞에는


거대한 금강저가 모셔져 있다.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런지 닳아 있다.


한쪽에는 불연이 있다.


부처님이나 사리를 옮길 때 모시는 가마이다.


버드나무의 칸

이곳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외조카로 한때 후계자로 손꼽혔던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자결지이다.


보통 출가한 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점이나, 히데요시가 억지로 죄를 만들어 살생관백이라는 별명을 붙였다는 점, 히데쓰구의 할복 이후 그 자녀와 처첩을 모두 잔인하게 죽이고 시신을 거두는 것조차 금지하여

축생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최근에는 히데츠구가 불행한 모함을 당했다는 의견이 더 많다.


어쨌든 히데요시가 지나치게 자신의 친혈연에 연연해 사후 권력 누수를 자초한 사건의 현장인 셈이다.


지금은 버드나무 그림만 예전 그대로 남아있다.


여기 후스마에는 최근에 다시 그린 듯하다.


색이 최근 모습이다


이제 신별전 방향으로 가는 길

작은 정원이 나온다.


대표적인 고산수식 정원이다.

모래와 바위로만 이루어져 있다.


건물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정원


이 길다란 복도를 따라가면 별전, 신별전, 오전, 신서원 등 최근에 확장한 부분을 만날 수 있다.


그래도 이 담과 정원은 19세기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경내 안내판

현재 위치가 가운데 담벼락 정도이다.


측면의 작은 이끼정원

아까의 모래정원과는 담으로 나뉘어져 있다.


별전 앞의 정원인데 뭐 크게 볼 것은 없다.


정원 모습


뭐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다.


계속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


열심히 움직이는 중


드디어 끝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가 지나온 복도


그래도 예전에 왔을 때보다 춥지는 않구나


계속 이어지는 복도


기념사진 찍는 중


좋단다


나는 성큼성큼 가는 중


다 왔다


이곳은 새로 지어 확장한 곳이다.


멀리 유명한 거대정원인 와룡정의 풍경이 보인다.


하지만 일단 춥기 때문에


와룡정은 조금 이따가 보기로 하고


신별전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잠시 몸을 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