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0일 - 고야산4 (고야산 오쿠노인 묘원高野山奥の院墓原3)

同黎 2016. 8. 10. 00:03



아직도 무덤은 계속된다.


흥교대사 밀엄당이라는 표석


저 멀리 작은 전각이 보인다.

안에는 아마 탑을 모시고 있을 것이다.


헤이안시대 후기 고야산에서 교전 중심의 중흥을 이끌다가 기존 세력과 대립 후

신의진언종을 세워 따로 나온 흥교대사 카쿠분(覚鑁, 각번)의 무덤이다.

고야산과 싸우고 나갔지만 역시 유해의 일부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뒤편으로도 여러 오륜탑과 보협인탑이 보인다.


밀엄당 앞에서 한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왔냐고 말을 걸었다.

역사공부 때문에 이러저러해서 왔다고 얘기했더니 신기해한다.


그 옆에는 선니상지비라는 조그만 남북조시대의 석비가 있다.


안내문에 일본어로는 이 비석에 귀를 대고 들으면 극락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 해놓고,

영어로는 hell의 소리가 들린다고 해 놓았서 매우 웃었다.


아주 작은 사암질의 비석이다.


뒤편에는 무슨 사연인지 모를 최근에 세운 위령비가 서 있다.


나무 틈 사이에도 석불들이 모셔져 다.


이건 왠 호주 국기가 서 있나 했더니


2차대전 당시 북 보르네오섬, 즉 지금의 말레이시아에서 싸우다 죽은

호주군과 일본군 및 현지 주민들의 위령비라고 한다. 그래서 3국기를 걸었단다.

깨알같은 코알라들


이건 아마 다른 집안의 비석인 듯하고


여튼 뭔가 자신들의 범죄를 묻어가려는 거 같아서 좀 씁쓸하다.


국기게양대 옆 위령탑의 모습


그 옆에는 땀 흘리는 지장(汗かき地蔵)이라는 지장보살을 모신 건물이 있다.


아마 결로현상으로 생기는 땀을 세상의 고통을 걱정하는 지장보살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 바로 옆에는 거울 우물(姿見の井戸)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들여다봐서

자신의 모습이 모이지 않으면 3년 내로 죽는다고 한다. 이건 또 뭐냐


어느 새 1km 정도를 왔다.

중간의 나카노바시(中の橋)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니 도쿠가와 사천왕이라고 불렸던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와 그 부인의 무덤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동에서 시작하여 평생을 그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맹활약을 펼쳐

이후 이세 쿠와의 10만석 영지를 얻었다. 게다가 장남인 혼다 타다마사는 이에야스의 장남

노부야스의 딸 쿠니히메와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낳은 혼다 타다토키는 또 다른 손녀

센히메와 결혼해 쇼군과와 겹사돈이 되었으니 얼마나 총애가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의 도호쿠지역 야마가타현에 있었던 데와 쇼나이번(出羽 庄内藩)의 번주였던 사카이(酒井) 가문의 무덤


무츠의 시라카와니혼마츠번(白河二本松藩)의 번주 니와 나가시게(丹羽長重) 및 일족들의 무덤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출발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충성한 이이다.

지금의 도호쿠지방의 정비를 맡을 정도로 이에야스에게 충성했던 인물이다.


지금의 후쿠오카현 남부인 치쿠고(筑後) 지역 쿠루미번(久留米藩)의 번주 아리마(有馬)가의 무덤이다.

아리마 토요지(有馬豊氏)가 대표적 인물로 히데요시에서 시작하여 역시 이에야스에게 충성한 인물이다.


무라카미번(村上藩)의 번주인 나이토(内藤) 가문의 묘소

혼다 가문을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접근한 가문이다.


하다하다 이시다 미츠나리 무덤도 나온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가 30살에 생전 무덤으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히데요시 막하에서 대표적인

문치파로 활동했으며 히데요리를 지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제거하기 위해 세키가하라 전투를

일으켰으나 결국 인망이 넓지 않아 상당수의 무장들에게 외면받아 멸망한 이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살아나면 바로 전쟁 일어나겠다.


사츠마번(薩摩藩) 초대 번주인 시마즈 이에히사(島津家久) 혹은 타다츠네(忠恒)와 그 아들

시마즈 미츠히사(島津光久) 그리고 또 그의 아들인 시마즈 츠나히사(島津綱久)의 무덤이다.

 시마즈 집안에는 우둔한 군주가 없다고 할만큼 가마쿠라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사츠마를 지켰으며,

이후 메이지유신을 주도하며 정계를 주름잡았고, 당주는 공작가문에 방계도 많은 귀족 작위를 받은

명문가이다. 쇼와 천황의 황후인 코준황후의 외가도 시마즈가인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시마즈 이에히사는 대단히 유능한 장수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 때 그에게 항복했으며 초대

사츠마번주가 된다. 류큐 왕국을 침공해서 류큐국왕을 시마즈번까지 끌고 오고 재상을 삶아 죽이기도

했다. 장남은 전쟁 중에 죽고 차남인 미츠히사가 대를 이었는데.. 아 장남 츠나히사는 요절했다.


토사번의 초대 번주인 야마우치 카츠토요(山内一豊)의 무덤이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삼대를

넘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공으로 토사번 20만석을 하사받았다. 참치 타다키의 시조이시기도 하다(...)


스오국 이와쿠니번(岩国藩)의 번주였던 킷카와(吉川)가문의 무덤

본래 모리씨의 가신이었으나 킷카와 히로이에(吉川広家)가 몰래 뒷공작을 벌여 이에야스 가문과 내통했고

또 모리 데루모토가 서군 총대장이 된 건 본인의 뜻이 아님을 적극 해명해 이와쿠니번 번주가 될 수 있었다


가다가 이상한 건물이 나온다.

서양인들이 카메라 촬영을 하고 있어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무려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의 영묘이다.

전국시대 관동지방의 맹주였으며 다케다 신겐,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3대 영웅으로 떠받들여진 인물이다.

특히 다케다 겐신과는 라이벌이었다고 한다. 또 여성설도 있었고, 스스로도 결코 여성과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는 맹세도 했던 특이한 인물인데, 지금은 동성애자였다는 설이 더 우세하다. 그러나 같이 모셔진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의 경우 나쁘지 않았지만 오다 노부나가에게 몰리고 히데요시에게 항복해서

과거와 같은 영화는 버렸다. 히데요시 휘하에서 오대로까지 되는 등 대접을 받았지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츠나리의 편을 드는 바람에 완전히 몰락해 강제로 이봉되고 중소 다이묘로 남았다.

그래도 이 건물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 하나의 중요문화재 건물인 사타케씨(佐竹氏)의 영묘. 쿠보타번(久保田藩)의 번주 가문이다.


한때 히메지번주였던 사카이 가문의 묘소


중간에 보니 이런 바위가 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홍법대사 구카이(공해)가 휴식을 취하던 바위란다.


모르고 앉았지만 쉬기 적당하다.

벌써 2km 정도 걸었다.


키슈 도쿠가와가의 7대 번주인 도쿠가와 무네노부(德川宗将)의 묘

특이하게 돌로 문을 만들었다.


가다가 주변을 보니

다케다 신겐의 묘도 나온다.


와카야마현 지정문화재란다.


역시 전국시대의 맹주였으며 오다 노부나가를 능가해, 갑작스러운 죽음만 아니었다면

천하인이 될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묘이다.


큰 좌측의 것은 다케다 신겐의 묘이며 우측의 작은 것은 아들인 다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의 묘이다.

오랫동안 다케다 가츠요리가 무능하여 아버지의 업적을 말아먹었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뭐 지금은 재평가도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카이의 호랑이라고 불려지던 다케다 신겐도 죽음 후에는 허무한 가문의 몰락을 바라봐야만 했다.

이거 원 대망에 나오는 인물들 총출동이다.


히젠국의 성주 나베시마씨(鍋島氏)의 묘소


카즈토리 지장. 한문으로 수주지장(授籌地蔵)이며, 죽어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고야산 오쿠노인에 왔으니 죄를 감해달라고 빌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미즈노(水野)가의 무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외가이고 극성기에는 24만 석의 대영주였으니 위력도 대단하다.


맞은편에는 키슈 도쿠가와가의 초대 번주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0남인 도쿠가와 요리노부(徳川頼宣)의 무덤이다.


역시 석문을 만들어 놓았다.


갈가에 쵸이시(町石, 정석)이라고 불리는 표석이 서 있다.

오쿠노인부터 근본대탑까지 36기, 산 아래의 지손인(慈尊院)부터 산 위까지 180기가 22km에 걸쳐 서 있다.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지장보살


8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무덤


모리 타다마사(森忠政)의 묘

츠야마번(津山藩)의 번주로 히데요시를 섬겨 도요토미성을 하사받기도 하였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이에야스편에 가담했다.

그 옆으로는 그 집안의 무덤이 함께 있다.


오카야마번의 이케다 가문의 묘소

히메지에서 이봉해간 이케다 가문의 묘소이다.


또 다른 시마즈가의 묘소

앞의 것보다는 좀 더 후대의 무덤이라고 한다.


지장보살들이 보인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센다이 이토가문의 묘소


이제 이치노바시(一の橋) 입구에 다 왔다.


오쿠노인 홍법대사라는 표석이 보인다.


기념사진

이제 죽어도 지옥에는 안 가는 건가


이렇게 기나긴 오쿠노인 기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