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5일 교토 아라시야마1 (다이카쿠지大覚寺1)

同黎 2017. 8. 4. 02:30



이제 사가 지역으로 이동한다.

란덴을 타러 이동


키타노햐쿠바이초역 도착


어느새 인기가 많아진 란덴이 도착한다.

란덴은 수많은 명소를 지나간다. 고류지, 닌나지, 도지인, 묘신지, 료안지,

기타노텐만구, 쿠라마자키신사, 로쿠오인, 아라시야마까지 유명한 곳이 셀 수도 없이 많다.

게다가 기차도 한국에서 보기 힘든 2량짜리 작은 전차라 수용인원의 한계를 넘어가는 일을 종종 보곤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기타노선과는 달리 아라시야마본선은 사이인, 오미야, 텐진가와와 연결된다.

카타비라노쓰지역에서 환승


야세역의 라이트업 광고

데마치야나기부터 쿠라마, 야세까지 이어지는 에이잔전철은 본래 란덴과 한 회사로 함께 운영이 되었지만 에이잔전철이 계열 분리되고, 야세~히에이까지의 로프웨이선만 아직도 자회사로 운영 중이다.

야세~히에이의 로프웨이는 히에이잔을 올라가는 교토 시내에서 접근하기 빠른 교통수단이지만(야세 이헤이잔구치역도 시골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쓰까지 간 다음 사카모토까지 가서 케이블카 타는 것보다야...) 간사이 쓰루 패스가 안 되는 관계로 가보질 못했다.


아라시야마역 도착


역시나 교토의 중요 관광지답게 사람이 붐빈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을 바로 건너뛰고 바로 택시를 타고 다이카쿠지로 이동


사적 대각사어소라는 표석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다이카쿠지(대각사, 大覚寺)는 진언종 대각사파의 대본산이다. 일본사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찰이기도 하다. 개산조는 사가천황으로 헤이안시대 사가천황이 자신의 이궁을 사찰로 바꾼 것이 시초이다. 사가천황은 꽃꽂이로도 유명한데 지금까지 내려오는 화도(華道) 중 사가어류의 시조이기도 하다.

사가천황의 신임을 얻는 구카이가 오대명왕을 이궁 안에 안치하고 사가천황의 죽음 이후 이궁을 다이카쿠지가 되고 황자들의 대대로 주직을 맞는 문적사원이 됐다. 가마쿠라시대 고우다천황이 퇴위 후 출가하여 다이카쿠지를 부흥하면서 이 사찰은 일본사의 중심에 서게 된다. 

가마쿠라시대 88대 천황인 고사가천황의 후계는 대단히 번성한다. 그의 적통으로 나온 자식이

고후카쿠사천황과 카메야마천황이다. 그 외에 서통으로는 가마쿠라막부의 6대 쇼군인

무네카타친왕이 있으며 그 외 아들들은 천태좌주가 2명이고 시텐노지, 미이데라,

엔만인, 닌나지, 쇼호인, 겐초지, 호주지로 진출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그러나 정작 적통인 두 아들 중 형인 고후카쿠사천황이 아닌 동생 카메야마천황의 둘째아들인 고우다천황을 생전에 황태자로 정하고 고후카쿠사천황과 카메야마천황 중 누구를 원정의 주인공, 즉 치천의 군주로 해야할지 안 정하고 죽어 버려 이후 황위 계승의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하여 고후카쿠사천황의 자식과 카메야마천황의 자식들이 번갈아 즉위하는 병립이 암묵적인 룰이 된다.

이후 고우다천황의 아버지 카메야마천황의 계통은 다이카쿠지통라고 하며 남조의 선조가 되고, 고후카쿠사와 그 아들 후시미천황의 자녀들은 지묘인통이라고 칭하며 북조의 선조가 되는데 이 질서가 깨지면서 나오는 것이 남북조시대의 혼란이다.


다이카쿠지로 들어가는 길


가을이라 본존 오대명왕상 등을 공개하는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다이카쿠지 앞마당


거의 성이나 저택에 가깝다.

사찰이라는 느낌은 별로 안 든다.


들어가는 길의 해자



공사 중인 문은 아케치문이라고 그의 영지에서 가져온 것


현판


다이카쿠지 입구

천황가의 문장이 박힌 휘장


멀리 신전이 보인다.


입장


가을이라 국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꽃꽂이의 원류이기도 하니


현관으로 들어서면 진언종 사찰의 고리, 생활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식대가 펼쳐진다.

이 식대는 아케치의 어전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천황이 타던 가마


밖으로 신전과 정원이 보인다.


신전으로 간다.

신전은 중요문화재로 고미즈노오천황의 부인이자 에도막부 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 도후쿠몬인의 거처를 옮겨온 것


안내판


신전답게 정원에는 귤나무와 사쿠라가 심어져 있다.


문무관을 상징하는 나무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신전의 후스마에


화려한 모란의 칸의 후스마에


에도시대 초기의 어용화가인 가노 산라쿠의 작품으로


수백 점의 후스마에 중 이것이 가장 유명하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후스마에는 정 지정 116면, 부지정 124면 총 240면에 이른다.


신전 정면 앞마당


사쿠라와 뒤편에 보이는 칙사문


가을이라 곳곳에 신기한 국화를 심어 놓았다.


사가 국화라고 불리는 이 국화는 본래 다이카쿠지에 있는 큰 연못인 대택지 근처에 있는 야생 국화종인데, 사가천황이 개량한 것이라고 한다. 이 근처에만 자라는 자랑거리라고 한다.


노란 국화


19세기 재건한 칙사문


한 그루 단풍나무와 어우러진다.


신전에서 본 앞마당


춤을 추는 무대를 가운데 두고 사방에 여러 건물이 모여있다.


신전의 다른 칸


노송도와


버드나무 그림들


특이한 나무


가운데 보이는 건물은 어영당


이제 회랑으로 다가간다.


일렬로 심어진 국화


신전 학의 칸


이것은 조금 시기가 뒤로 간 듯하다.


어영당


이 작은 건물은 야스이당(安井堂)

교토 히가시야마에 있는 야스이문적 렌게코인의 어영당을 이축한 것이라고 한다.


메이지시대에 이축


그 옆에는 정침당

중요문화재이다


먼저 다이카쿠지의 명물인 회랑을 따라 영명전부터 가보자


회랑에서 본 신전


격식 있는 건물답게 노송나무 껍질 지붕이다.


회랑 너머로 보이는 건물들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정침전이 보인다.


정침전에서 보는 신전 정면


정침전 내부

정침전은 중요문화재로 고우다천황이 머물며 원정을 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은 물론 에도시대에 재건한 것

그러나 안에는 삼종신기 중 검과 곡옥을 보관하던 곳도 있고, 남북조의 강화회의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벽지에 선명한 국화문


내부의 화려한 후스마에


홍매의 칸. 역시 유명한 후스마에 중 하나이다.

중요문화재

 

이제 돌아나간다

정침전 측면


뒤를 돌면 영명전이 나온다.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건물로 조선총독과 총리대신을 지냈고 만주국을 승인했었던 사이토 마코토가

1920년대 교토에 지었던 일불사라는 사찰의 본당을 전후에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사이코 마코토를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영명전으로 가는 길


회랑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다이카쿠지의 특징

이 회랑은 도열해있는 기둥을 비, 구부러진 모습을 번개에 비유해 지었다고 한다.

천장은 칼과 창을 들고 설칠 수 없도록 낮은 높이로 설계했다고

 

특이한 국화들


이제 신앙 공간 쪽으로 이동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