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5일 교토 라쿠호쿠6 (센본샤카도 다이호온지千本釈迦堂 大報恩寺)

同黎 2017. 7. 31. 02:09



무애님이 가기 전 그래도 교토에서 불상이 집산된 곳을 찾기 위해 센본샤카도로 이동


정말 오랜만이다. 뒷문은 정말 찾기 힘들었는데, 택시 타고 오니 대로변에 위치한 정문으로 잘 왔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

정말 오랜만이네



국보인 센본샤카도 본당. 교토 시내에 남은 몇 안 되는 가마쿠라시대의 건물이고 또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창건 당시의 건물


센본샤카도의 정식 명칭은 다이호온지(大報恩寺, 대보은사)이지만 보통 센본이마데가와에

위치하기 때문에 센본샤카도(千本釈迦堂, 천본석가당)라고 더 많이 부르며

사가노샤카도라고 부르는 세이료지와 함께 양대 석가당이라고 불린다.

가마쿠라시대 초기에 오슈 후지와라씨의 3대 당주이자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후원자였던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의 손자가 히에이산에서 수행하다가 내려와 세웠으며, 처음에는 구사, 천태, 진언의 삼종을 겸학했다. 그러나 지금은 진언종 지산파에 속한다. 본래 근처의 기타노텐만구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으나 신불분리 당시 많은 건물과 땅을 잃고, 지금은 본당과 부동당, 영보관 정도만 있다.


어쨌든 본당은 잘 남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건축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건물


앞마당


본당 정면


반대쪽 광경


국보 표석


이제 이동하자


안내판


본당 앞으로


본당 정면


내부는 배관료를 내야 한다.

배관료는 600엔


표를 사고 이동


본당 위에 영보전이 있다.


본당 측면


마루 위로 올라갔다.


먼저 본당 안으로 들어간다.


측면의 문으로 가는 길


단풍과 하늘


멀리 보이는 부동당


본당 정면에서 보는 풍경


본당 내부의 모습


이 건물이 국보로 지정된 이유는 불전을 불상이 모셔진 내진과

참배를 위한 외진으로 나누는 불교건축 양식의 초기 형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에 보이는 것이 내진과 외진을 나누는 기둥 사이의 차양이다.


본래 불당에는 사람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라 불상이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밖에서 참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국도 그랬고, 지금도 많은 일본의 사찰은 본당 출입을 금한다. 그러나 차츰 의식이 건물 안에서 행해지게 되면서 많은 사람을 수용해야 하자 내진과 외진을 나누어서 불상의 신성성은 지키면서 인원은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맞췄던 것이다.


내진의 모습


내진 사천주에는 많은 벽화가 남아있다. 13세기 초의 벽화는 귀중한 유물이다.


주자 역시 건물과 함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이 사진에서 보이듯이 불단 사방이 돌면서 참배할 수 있게

뚫려 있는데, 이는 천태종의 상행삼매 수행방식을 위한 것이다.

진언종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으로 센본샤카도가 초기 천태와 진언을 겸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기도 하다.


내부에 모신 석가여래상은 가마쿠라시대의 작품으로 중요문화재, 비불이다.


가마쿠라시대 케이파의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불상으로 손꼽힌다.


내부의 여러 벽화들


금단청이 잘 남아있다.


사천왕상이 그려진 사천주


멀리서 본 모습



아직도 부분 부분 많은 단청이 남아있다.


한쪽에는 최근에 만든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불단 측면


이 관음상 옆으로 가


이 절에서 내려오는 전설인 오카메에 관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웃고 있는 여인상인 오카메는 이 사찰 본당 건축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본당을 지을 당시 대목장이 공사를 진행하던 중 기둥 부재 하나의 길이가 짧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민에 빠지는데, 그 부인이었던 오카메는 다른 기둥도 짧게 하라고 충고해줘서 위기를 넘기게 한다. 그러나 자기 때문에 남편의 명성이 흠집날 것을 걱정한 오카메는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자결하고, 이에 남편은 그녀를 기리며 사실을 밝혔고 (이러면 죽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아니 애초에 왜 죽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후 그녀의 얼굴은 일종의 부적이 되어 복을 불러오는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오카메 인형들


다이후쿠(大福)이라고도 불리며 일본에서는 복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여튼 이제는 본당을 나와 영보관으로 간다.

공포의 모습


본당 정면의 측면



이제 마루를 따라 영보관으로 간다.


영보관 전경


유물이 꽤나 많은 편이다.


내부의 모습


중요문화재인 경왕당 관계문서


과거 기타노텐만구에 있었던 경장은 신불분리의 과정에서 파괴되었고,

경전과 문서, 불상 일체는 센본샤카도로 옮겨졌다.


여러 인물들의 편지들


금강보살과 반야보살의 불화


한쪽에 모셔진 변재천 십오동자상



변재천에는 십오, 혹은 십육동자가 따라오는데, 이는 일본에만 있는 것으로

변재천경이라는 일본의 위경에서 초래된 것이다.


영보관에서 유명한 불상 중 하나인 십대제자상


나라의 카이케이 일문이 만들었다고 한다.


내부에서 복장유물이 나왔으며


현재 10구 전체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생동감 있는 인물묘사로 가마쿠라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명작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수보리존자

해공제일


마하가섭존자

두타제일


목건련존자

신통제일


사리불존자

지혜제일


아난다존자

다문제일


라후라존자

밀행제일


아나율존자

천안제일


우바리존자

지계제일


가전연존자

논의제일


부루나존자

설법제일


동조석가여래입상

가마쿠라시대 초기, 중요문화재


탄생불로 관정의식을 할 때 쓰던 것이다.


천수관음상


헤이안시대 후기의 작품

중요문화재


지장보살상


가마쿠라시대


부대사 이동자상


본래 기타노텐만구의 경장에 있던 것으로 무로마치시대의 것이다.

부대사는 중국의 거사이자 초기 불경 번역가 중 하나로, 일본의 경장에 필수적으로 있는 분이다.


한편에는 가마쿠라시대 케이파의 불사 죠케이가 만든 육관상도 있다.

모두 중요문화재로 이렇게 한꺼번에 육관음이 완전하게 모셔져 있는 경우는 일본에서도 드물다.


성관음


천수관음



마두관음


유일한 분노존


십일면관음



준제관음


진언종 계열에서의 육관음으로, 천태종 계열의 불공견삭관음에 유명세로는 밀린다.


여의륜관음


유일한 좌상으로, 바위 모양의 대좌를 잘 표현해냈다.


경왕당 현판


태고를 장식하는 태고연


역시 경왕당 전래 유물로 각각 일월을 상징하며


무로마치시대의 중요문화재


용과 보주가 있는 부분


석가여래와 아미타여래상


무로마치 막부의 5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카즈가 탔다는 수레의 바퀴


아시카가 막부와도 인연이 많은 곳이다.


안내문


본당의 명찰

건물을 세우거나 수리할 때 함께 다는 것으로 국보의 부속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나오는 길 마지막으로 찍은 본당 사진

 

안내판이 한쪽에 숨어있다.


급하게 한 곳을 추가하며 택시를 기다리는 중. 새끼고양이가 돌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