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4차

겨울 교토 여행기 - 3일 교토 무라사키노4 (다이토쿠지 고토인大徳寺 高桐院)

同黎 2013. 2. 6. 19:52



고토인 가는 길

여러 탑두사원이 보인다.


무슨 집안의 묘소였다.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고토인(고동원)이 나온다.

저 앞으로 길이 끊임없이 펼쳐져있는데 다 다이토쿠지 탑두사원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고토인은 주변부터 심상치않다. 울창한 대숲이 펼쳐진다.


고토인 입구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간다.


고토인은 전국시대 말기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지은 절이다. 고토인의 첫 주지는 타다오키의 숙부가 된다.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여기에 묻힌 이후 호소카와가의 보리사가 되었다. 

호소카와 타다오키는 단순한 무장일뿐만 아니라 센노 리큐의 일곱 제자 중의 하나로,

그의 다도를 이은 사람이라 고토인도 센노 리큐와 관련이 깊다.

호소카와 가는 전국시대의 활약으로 에도 막부에서도 구마모토번, 고쿠라번의 번주가 되고 중책을 맞아

승승장구할뿐만 아니라 패전 이후에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를 배출한 당대의 명문가이다.


표문까지 꽤나 긴 길이 이어진다.


표문을 들어서면


대나무 숲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끼 정원에 대나무가 가득 자라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기념사진 투척



저 멀리 앞으로 절이 보인다.


정말 빽빽한 대나무숲

안에 들어가면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가득해진다.



정말 아름다운 진입로이다. 아라시야마의 치쿠린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 같다.



가는 길에 만나는 조그만 문

지붕 위로 이끼가 자라서 아름답다


저기 입구가 보인다.


고리 앞의 작은 정원





문에 그림이 그려져있고 만 냥부터 열 냥까지 글씨가 써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고토인의 단풍. 한 번 꼭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 안으로 진입


객전에 올랐다.


고토인 객전의 풍경

정원 감상을 위한 다다미가 깔려있다.



객전 내부



객전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정원


객전 밖으로 그 유명한 고토인의 정원이 보인다.


고토인의 정원

넓은 빈 공간에 이끼가 깔려있고 뒤에는 대나무와 나무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거기에 딱 하나의 등롱이 서 있는 풍경


한쪽으로는 정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겨울이라 더욱 특별한 느낌의 정원이 펼쳐진다.


통상 단풍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다시 정원 감상중

아마 다이토쿠지 정원 감상 중 절정이 아니었나 싶다.


넋을 잃고 보는 중


아래는 그냥 보세요. 





객전 내부의 불단

객전은 곧 본당이기도 하다.



아마 이 절을 만든 스님이 아닌가 싶다.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목상



정원에서의 기념사진

큰 도화지에 점 하나 찍어놓은 느낌의 정원



건물 내부


달마도가 그려져있다.


고동원 현판


정원으로 걸어나가는 길이 보인다.



음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실상은 화장실 가는 길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객전을 나와 서원으로 간다.


서원의 다다미 복도



서원 의북헌 내부


센노 리큐의 저택을 옮겨와 지은 것이다. 매우 의미가 깊은 건물이다. 


매우 단아한 선종화풍의 장벽화가 그려져있다.



서원에서 바라 본 정원


이제 서원을 나와서 정원을 걸어다닌다.


정원으로 내려가는 길




정원 한 켠의 탑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오면 정말 아름답겠지만

고토인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겨울의 고토인도 아름다운 것 같다.





다실로 들어간다. 송향헌이라고 하는 다실은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직접 지은 다실이라고 한다.


다다미 2첩짜리 작은 다실이다.




저 구멍에 화로를 넣고 찻물을 끓인다.







내려와서 본 단풍의 정원




이 길을 따라가면 호소카와가의 묘소가 나온다.


꾸물거리는 노준석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사용하던 우물


우물을 지나 저 문으로 들어가면


역덕(역사 오덕)들이 킁킁거리며 집중하고 있는 곳을 보게 된다.


바로 이 석등 아래 호소카와 타다오키와 그의 부인 호소카와 다마코, 별칭 가라샤가 묻혀있다.



호소카와 타다오키와 다마코(가라샤)는 뛰어난 외모의 부부로 유명했고 금슬도 아주 좋았다고 한다.

가라샤는 오다 노부나가를 죽여 역적 소리를 들었던 아케치 미츠히데의 딸이었지만, 둘 사이의 금슬을 알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특별히 그녀를 용서하고 가라샤는 천주교로 개명하며 평생을 조용히 살았다.

가라샤는 그녀의 세례명으로, 그라시아의 당시 일본어 표기다.

그러나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에야스에 대해 반기를 들고 세키가하라 전투를 준비하면서 교토에 머물고 있던 여러 무장의 부인을 인질로 삼으려 했는데 그녀는 남편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사실상 자결(천주교는 자살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죽은 것은 아니다.)을 선택한다. 호소카와는 분노하여 이에야스의 동군에 가담하고 승전 후에는 적극적으로 미츠나리의 참수를 주청한다.


이 등롱은 임진왜란 때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조선을 왕실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조선의 궁궐엔 석등이 없고, 형태로 전형적인 일본 등롱이라

한국의 석등과 거리가 멀어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이 등롱은 천하제일로 유명한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롱을 탐내자 타다오키가 일부러 석등에 흠을 내어버렸다고 한다.


잘 보면 석등에 금이 가있다.


타다오키 부부의 묘 옆으로는 역대 호소카와가 당주들의 무덤이 있다.


무덤에 붙인 사람들의 이름


역대 당주들의 묘






이제 고토인을 나서기 시작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신기한 석조가 있어서 다가가 보니


전형적인 일본의 손 씻는 돌그릇인데


사연을 본 즉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 왕성의 초석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음 근데 광화문의 초석은 이렇게 생기지도 않았고... 뭐지... 이런 건 조선에 없는데...



하여튼 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고토인을 나선다.

이제 마지막 탑두 사원인 다이센인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