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야마 일대의 관광안내도
고다이지 입구. 올라간다.
총문에 도착
고다이지는 2번째이다.
입구인 고리 앞에서 기념사진
마침 날도 아주 좋다.
고다이지(고대사)는 2번째이다. 2차 여행기 참조
고다이지는 임제종 겐닌지파(건인사파)에 속하며 겐닌지의 말사이다. 히데요시의 정부인인
네네(기타노만도로코)가 도쿠가와 집안의 힘을 빌어 히데요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로서도 인기가 많은 히데요시를 잘 대접해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고,
또 네네가 히데요리의 편을 들지 않고 자신의 집권에 협조했기 때문에 매우 큰 사찰을 지어주었다.
에도막부 시대에 히데요시가 공식적으로 나쁜 놈 취급을 받았고, 도요쿠니신사가 훼철된 걸 생각해보면,
에도시대에 유래 없이 히데요시를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기관인 셈이다. 네네가 죽고 난 다음에는
네네의 오빠인 키노시타 이에사다에게로 관리가 넘어가 키노시타 집안의 보리사가 되었다.
이후 여러 번 화재가 나서 불전이 소실되어 복원되지 않았다. 대신 개산당과
히데요시 부부를 모신 영옥 등은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후시미성에서
이축해온 히데요시의 다실이 남아 있다. 바로 옆에는 유신지사들의 묘가 있는
호코쿠신사(호국신사)가 있어 최근 일본 우익들의 핫스팟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들어가면 보이는 건물
화장실이다.
저 멀리 우리가 지나온 기온탑이 보인다.
진짜 날은 아주 좋다.
입장료를 내고 관람을 시작한다.
처음 보이는 건물은 유방암(이호안)
요시노 다유(길야태부)라는 명기가 차를 즐겼던 건물이라고 한다.
고다이지에는 이런 다실이 참 많다. 히데요시가 차를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유방암 앞의 작은 정원
고다이지의 서원과 방장으로 올라간다.
방장 정원
고보리 엔슈의 작품이다.
모래로 만든 작은 산이 보이고
그 뒤로는 칙사문이 보인다.
계절마다 이 앞의 정원을 멋지게 꾸미는데 이번에 갔을 땐 자유 고요한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다.
모래로 만든 바로 양쪽으로 거북의 섬과 학의 섬을 만들어 놓았다.
이 나무는 아주 유명한 벚나무이다.
매년 봄이면 흐드러지는 벚꽃을 자랑하는데, 고다이지 안내 책자에 단골로 등장한다.
정원 전경
방장 내부
서원에서는 특별히 열반도가 공개 중이었다.
우리로 치면 괘불 크기 조금 안 되는 거대한 그림이었다.
김샘의 위대한 도촬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서원에서 바라 본 풍경
고다이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멀리 개산당과 영옥까지 한 번에 보인다.
날씨가 참 좋아서 다행이었다.
중간에 있는 연못은 언월지와 와룡지라고 한다.
달이 눕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하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보니 참 여러 장도 찍었다.
개산당 앞으로 보이는 작은 지붕이 관월대라는 건물이다.
연못에 비친 달을 감상하는 건물이다.
개산당으로 들어간다.
개산당 기념사진
원래 주로 닫혀있는 건물인데 특별공개 중이었다.
개산당은 중요문화재로 고다이지 창건 당시의 건물이다.
중흥조인 산코쇼에키(삼강소익)의 상과 함께 네네의 오빠인
키노시타 이에사다와 그 부인의 상이 안치되어 있다.
겨우 찍은 개산당 내부
네네가 특히 많이 머물면서 기도했던 절이라고 한다.
안쪽의 천장은 내내의 가마 천장을 옮겨 붙인 것이고,
바깥쪽의 천장은 히데요시가 타던 배의 천장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개산당에서 언덕 위의 영옥까지는 이런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와룡랑이라고 한다.
이 와룡랑은 고다이지의 명물이다.
영옥으로 올라가는 길
영옥 입구
영옥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본 고다이지의 와룡지
문에는 도요토미가의 문장과 함께 천황가의 문장이 붙어 있다.
내부 사진은 잘 못찍고 겨우 문만 찍었다.
영옥 내부는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이때는 특별공개 기간이라 들어갈 수 있었다.
김샘은 험난한 감시를 뚫고 마침내 영옥 천장의 운룡도를 찍었다.
배에 카메라를 받치고 무심한 척 시크하게 몰카를 찍는다.
영옥 내부는 마키에 기법으로 만들어진 주자와 각종 가구들이 워낙 유명하지만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영옥 안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네네의 상이 모셔져있고,
가운데 히데요시의 원불(지념불)인 대수구보살상이 모셔져있다.
이 유명한 고다이지의 마키에 작품들은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영옥의 뒤편
영옥에서 내려다본 와룡랑
봄 가을에 특별 야간개장을 하는데 그 때 불 켜진 와룡랑이 장관이라고 한다.
지붕의 선
영옥을 지나면 후시미성에서 옮겨온 두 개의 다실이 나온다.
각각 산정(카사테이)와 시우정(시구레테이)라는 이름의 다실로 중요문화재이다.
히데요시가 애용했던 건물들이다.
산정
한 바퀴 돈다.
산정의 내부
시우정
이층 다락형태로 된 건물이다.
이런 다실이 흔치는 않다.
산정과 시우정 사이의 복도
뒤에서 본 산정
뒤에서 본 시우정
이제 슬슬 고다이지를 나선다.
내려가는 길
대나무가 울창하다.
운치있는 길
고다이지의 대나무 숲
여러모로 지루하지 않도록 포인트를 군데군데 잘 찍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다시 돌아온 방장정원
밖에서 바라본 칙사문
과연 이 문이 몇 번이나 열렸을지
천황의 칙사가 와야만 열리는 문이지만,
에도시대 내내 악당 취급을 받았던 히데요시의 보리사에 칙사가 왔었을까
칙사문 조각
부적 하나를 샀다.
마키에를 모티브로 한 이쁜 부적이다.
고다이지 나가는 길
고다이지에 입장하면 쇼미술관에 갈 수 있다.
손바닥 미술관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주 작다.
쇼미술관 입구
쇼미술관 상징
바로 여기까지 사진을 찍었다. 대단하다.
안에는 고다이지의 여러 보물들이 전시 중이다.
쇼미술관 바로 앞에는 고다이지의 탑두사원인 겟신인(월진원)이 있다. 네네의 사촌동생이 지은 절이다.
겟신인은 사실 절보다는 친왕파 호위병의 주둔지로 유명하다. 메이지 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
(효명천황)의 황릉 경비병이었던 이토 가시타로를 대장으로 한 15명의 황릉 경비병이 주둔하던 곳이다.
이들은 토막파로 유명하다, 이토 가시타로가 신센구미의 대장인 곤도 이사미의 초대를 받아 연회를 끝내고
돌아가던 길에 신센구미에게 습격당해 살해되고, 그 동지들 역시 살해되어 황릉 경비병은 사라진다.
안은 아주 조용하다.
고리가 보인다.
입구의 모습
우리는 납경을 받으러 세이류지(청룡사)로 간다.
가는 길에 고다이지의 과거 총문이 보인다. 고다이지의 사역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디어 도착한 세이류지
근데 문이 닫혀있고,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중
세이류지는 사실 별 게 없고 단지 납경만 받으러 온 절이다.
정토종으로 호넨의 제자 겐부츠(견불)이 중건했다고 한다.
안에는 성관음상을 모시고 있다. 낙양33개 관음성지의 제9번이다.
한참의 스미마센을 외치니 스님이 나온다. 식사 중이셨나보다.
옆의 쪽문으로 들아오란다.
납경장에 주인을 받는 중
세이류지 전경
본당
참배 중이다.
다시 절을 나서고 문은 닫힌다. 어쨌든 납경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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