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12일 오사카2 (이카스리신사坐摩神社·이마미야에비스신사今宮戎神社·이쿠쿠니타마신사生國魂神社)

同黎 2018. 3. 15. 03:41



이제 다른 신사를 찾으러 간다.

신불영장을 하는 이유는 쉽게 알 수 없는 신사와 고찰을 알 수 있기 때문

오사카도 나름 오래된 곳이라 유명한 신사가 많은데 신불영장 덕분에 알 수 있게 됐다.


이카스리신사(坐摩神社, 좌마신사) 도착

특이하게 도리이 3개가 연달아 있는 미츠토리이가 정문이다.


좌마신사 표석


본전의 모습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다.


이카스리신사는 연희식에 대사로 존재하는 신사이며 지금 오사카부 중심부인 셋츠노쿠니의 가장 으뜸 신사인 이치노미야였던 신사였다. (스미요시대사와 공동) 모시는 신은 총 5주로 이카스리노카미(座摩神)이라고 뭉쳐 부르는데 자세한 전래나 족보는 알 수 없고, 우물과 거북이 등 주로 물과 관련된 신이며 와타나베씨의 시조라고만 알려져있다. 심지어 신기관에서 직접 모시던 궁중신 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천황의 거주지를 수호하는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공황후가 삼한을 정벌하고 돌아오던 중 요도가와 하구에 자리를 잡고 행궁을 설치하고 이카스리노카미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후 요도가와 하구의 나루터의 신으로 중시되었는데 후에는 구마노순례를 시작하는 곳이 되어 최초로 참배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요도가와의 선착장이 오사카성의 축성으로 인해 이전하면서 신사도 이곳으로 옮겨졌고, 상인들의 신앙을 받으면서 말사로 도자기 도매상과 섬유 도매상을 위한 신사가 추가되었다.


지금은 옛 건물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거대한 회관이 남아 있어 옛 영화는 알 수 있다.

이곳은 이세신궁에 있는 신사 본청의 분소인 오사카신사청을 겸하고 있다.



납경받는 중


결혼식 중이라 본전 근처로 가기가 좀 그렇다.


메이지시대 관폐중사가 되면서 기존의 작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본전을 지었으나

오사카 대공습으로 소실되었고 1960년 과거의 본전을 철근콘크리트조로 다시 지었다.




한쪽에는 회랑이 있고 섭말사가 모여있다.


도기신사


섬유신사


오쿠니누시신사


텐만구


상전신사(相殿神社)


회랑을 배전삼아 본전이 쭉 늘어서있다.


복도 회랑의 모습


다시 길을 나선다.


나가는 길에


나니와신사도 보이지만 지나간다.


다음 도착한 곳은 이마미야에비스신사


이마미야에비스신사(금궁계신사) 표석


이마미야에비스신사(今宮戎神社)는 쇼토쿠태자가 시텐노지(사천왕사)를 짓고 서방의 수호신사로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주신은 에비스일 것 같지만 의외로 아마테라스, 코토시로누시(오쿠니누시의 아들이자, 초대 진무천황의 장인), 스사노오, 츠쿠요미(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의 남동생 혹은 여동생), 와카히루메노미코토(稚日女尊, 아마테라스의 옷을 짜다가 스사노오의 장난으로 죽었다는 여신) 등 5주이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나면... 에비스는 원래 일본의 전통 지역신으로 바다의 신이지만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등장하지 않아 신의 계통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바다와 어부의 신, 그리고 풍요의 신이 되면서 서민적으로 크게 신앙받았고, 그 자체로 불교의 신 중 하나가 되어 칠복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신도가 불교에서 분리되려고 하면서 에비스를 코토시로누시와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국가양도신화에서 오쿠니누시의 사자가 그를 방문했을 때 낚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억지로 떼어 붙인 것이다. 하여 메이지시대 때 억지로 다섯 주의 신을 에비스 대신 모셨지만 지금은 그냥 퉁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도 납경을 받는다.


본전의 모습

에비스를 모시는 총본산은 효고현 니시노미야의 니시노미야신사인데,

이곳도 그만큼 에비스 신앙이 오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역시 오사카대공습으로 파괴된 것을 1950년대 재건한 것이다.

 

너무 현대식인 섭사 오쿠니누시신사



본전 내부


섭사인 오쿠니누시신사


내부


다시 택시는 달린다.


마지막 목적지인 이쿠쿠니타마신사 도착


이쿠쿠니타마신사(생국혼신사) 표석


본전의 모습


이 신사는 매우 낯설지만 무려 관폐대사로 천황가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제신은 이쿠시마노오카미(生島大神)와 타루시마노오카미(足島大神)의 두 신, 그리고 배위로 오모노누시가 모셔져 있다. 현재 명칭은 일본서기의 명칭을 택하고 있지만 연희식 등에는 나니와대사, 나니와대신사 등으로 표기되어 있고, 나니와쿄가 수도였을 당시 세워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쿠쿠니타마신사의 두 제신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계도에 등장하지 않는 신이다. 그러나 신기관에서는 두 신을 천황이 통치하는 국토를 담당하는 신으로 궁중에서 모셨다. 우리로 치면 종묘 칠사당에 있는 여러 신에 해당하는 셈이다. 또 헤이안시대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는 천황이 즉위하면 무당이 새 천황의 의관을 상자에 넣어 여기서 제사지내고 나니와 항구로 가서 바다에 바쳤다고 하니 대단히 중요한 신사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두 제신은 최근 연구로는 나니와로 수도를 정하면서 이 지역의 토착신을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니와가 수도로 정해지면서 신사가 세워졌는데 이후 전국시대까지 자세한 기록은 미상이다. 이후 일향종(정토진종)의 이시야마혼간지가 이 신사 바로 옆에 위치하면서 같은 해자 안으로 들어가 혼간지 세력에 의해 크게 부흥했으나 오다와의 싸움에서 소실된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을 지으면서 신사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다. 메이지유신 이후 신불분리로 신궁사인 법안사가 분리되고 관폐대사가 되었다. 이후 화재로 재건하지만 오사카대공습으로 완전 소실되고 1956년 모모야마시대의 모습으로 재건된다.


사무소


경내

많은 섭말사가 있다.


본전의 모습



본전 내부


도리이


시치고산이 진행 중


말사 텐만구


본전


안내문


옆으로 보이는 신사 본전


스미요시신사




현판


황대신궁


이세신궁의 분사이다.


아마테라스를 모신 곳


뒤편의 본전


시기노신사


세이친사

본래 변재천을 모시던 연못이 있었으나 그 연못 자리에 도리이를 세우고 사대주신을 모셨다.


이외에도 즐비한 섭말사


하치만구

과거 오사카성의 귀문을 지키던 신사


후이고신사

불과 금속공예의 신


가조조신사

토목건축의 수호신사


특이하게 에도시대 음유시인 조루리와 가부키의 창시자인 치카마츠 몬자에몬을 모신 신사가 있다.

왜 이곳에 모셔졌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이렇게 12번째 일본 답사가 끝났다. 한국으로 갈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