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1차 東京

東京紀行 - 2일 도쿄국립박물관 본관6 (노와 가부키, 우키요에와 의장)

同黎 2018. 3. 21. 01:10



이제 무로마치시대부터 시작된 노와 에도시대 서민들의 유흥거리인 가부키에 관한 곳이다.

노는 일본 전통의 무악으로 세련된 가면극으로 발전했으며 무로마치막부의 쇼군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후원에 의해서 계속 발전하였다. 노는 신사에서 신에게 바쳐질 정도로 고급 문화로 발전하였다.

니시혼간지의 노무대는 국보로 지정되었다.

가부키는 노와는 반대로 노래, 춤, 연극이 합쳐진 것으로 본래 여성이 추던 가부키오도리가 시작으로

유녀들이 주가 되었으나 17세기 풍기문란을 이유로 남자배우들만 연기하도록 바뀌었다. 물론 가부키

남자 배우들은 남색을 했다(...) 이후 겐로쿠시대에 절정을 맞이하였으며 지금은 고급예술이 되었고

유명한 가부키 배우 가문은 대대로 습명을 하며 지금까지 배우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노에 쓰이는 의상들


노가면

가운데서 보면 무심, 위에서 보면 기쁨, 아래서 올려다보면 슬픔이나 분노를 나타나게 표정이 변한다.


이런 가면이나 의상들은 명문가에서 내려오는 것도 많다.


남만형 복식



가부키의 원형 중 하나로 희극적 요소를 강하게 띄고 있는 만담극인 쿄겐을 그린 회권


쿄겐의 공연 모습


2층 마지막 전시실인 우키요에와 의장 실

우키요에(부세회)는 17세기 에도시대부터 유행한 서민풍속화이다. 흔히 다색판화로만 알려져 있는데

육필화라고 하여 일반 회화처럼 그린 그림도 있다. 호쿠사이, 샤라쿠, 안도 히로시게 등등이 유명한데

이들이 풍경이나 유녀, 춘화를 그린 그림첩을 판화로 만들어 유통시키면서 서민들도 회화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사실 우키요에는 고등학교 때 고흐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가 영향을 받은

쟈포니즘 작품을 보면서 호쿠사이를 조금 알게 된 정도이다. 어쨌든 이들의 과감한 표현과 색채는 후기

인상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때 저가의 우키요에 일부가 네덜란드 등에 포장지로 수출되었다가 크게

유행한다. 그래서 일본보다는 서양에서 먼저 재발견되었고 크게 수집되었다. 이후 일본에서는 오히려

유출된 우키요에를 수집하여 다시 역수입한 경우가 많다. 도쿄박물관의 우키요에도 서양미술로 유명한

과거의 재벌인 마츠카타의 컬렉션 8000여점이 기초가 된 것이다.

사실 우키요에와 민화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민화도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궁중화, 장식화 등과 무속화 등을 모두 합쳐 이르는 말로 부정확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우키요에는 풍속화나 장식화이기는 하지만 작가도 모르는 민화와는 다르다. 오히려 오츠에와 같은 그림이 민화와 비슷할 것이다.


각종 복식



화려한 가을 꽃들


매화



이런 옷들은 거의 예술품으로 감상하는게 더 좋아 보인다.


유리로 된 비녀와 빗 등


수정 비녀



각종 장식빗


네츠케(네즈케, 根付)


허리에 인롱이나 연초함, 휴대용 필기구 등을 달 때 띠에 거는 장식품이다.

설명하기가 어렵네

 

안내문


인롱은 허리에 다는 작은 상자로 안에는 약이나 담배 등을 넣는다.

초소형 벤또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우키요에이다.

키타가와 우타마루 작품

주로 여인화를 많이 그린 작가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


이번에는 주로 육필화가 많이 전시되었다.



춘화... 까지는 아니고



유녀들이 유난히 많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

흔히 안도 히로시게로 불리는 인물로 에도 말기에 대활약한 작가이다.

특히 히로시게 블루라고 불리는 파란색이 유명하며, 고흐가 그의 그림을 모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연작들





귀여운 금붕어




안도 히로시게의 작품으로 달 아래에 있는 토끼

중요미술품. 이렇게 우키요에 중에 중요문화재나 중요미술품이 꽤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

중요미술품


갑양원교지도 라는 제목



에도의 백인 미녀도


계속 히로시게의 작품

육필화이다


헌상하는 말의 행렬도



이곳을 나가면 밖의 특별전시실에 타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친왕이 기증한 네츠키 컬력션이 전시되어 있다. 노리히토 친왕은 현 천황의 사촌, 쇼와천황의 조카에 해당되며 다이쇼천황의 4남인 미카사노미야

가문의 3남이었다. 그러나 내리 딸만 낳고 죽으면서 현재는 궁가가 단절 예정인 상태.

아들만 가문을 이을 수 있는 일본 황실전범이 이상한거다.

어쨌든 일본축구협회 총재를 지냈으며 비교적 개념이었다고 한다.


각종 화려한 네츠케


황실에서 직접 기증했으니 함부로 할 수가 없었겠지


수산석으로 된 말 모양의 네츠케가 대표작


보석이나 상아로 된 것들이다.


이제 1층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