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1차 東京

東京紀行 - 2일 도쿄국립박물관 본관8 (도자, 화폐)

同黎 2018. 3. 21. 09:15



다음은 일본의 도자이다.

일본의 도자는 크게 나누어 고대의 3대요 / 중세의 미노야키+6요 / 근세의 이마리와 쿄야키이다.

고대의 3요는 중국의 청자를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고 거기에 나라시대 당삼채를 베낀 나라삼채도 잠시

나타난다. 그 후 주요 항구를 중심으로 미노와 고육요가 성립한다. 여기도 아직 도기의 상태에 지나지

않지만 각자의 매력을 만들어나가서 지금까지 지속된다. 특히 미노야키는 시노, 오리베로 계승되고

라쿠에도 영향을 주었다. 근세에는 조선 도공들의 영향으로 규슈에 처음에는 하기, 가라츠 등 조선을

본뜬 다완이 만들어지다가 완전한 이마리 백자가 만들어진다. 교토에는 18세기 이후 화려한 교야키가

나타나는데 이는 또 완전한 백자와는 다른 게 백자토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시대의 도기

중국 청자를 본딴 것이다.


가마쿠라시대 청자를 본딴 황유호

당시 중국에서 전해진 용천요 청자들을 재현하고자 하는 모습은 보여주지만 아직 턱이 없다.

중요문화재


중세 고육요 중의 하나인 시가라키의 작품

시가라키는 자연유를 덮은 붉은 색의 작풍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고육요는 미노야키(美濃焼)를 별도로 치고

아이치현의 세토야키(瀬戸焼)

아이치현의 토코나메야키(常滑焼)

후쿠이현의 에치젠야키(常滑焼)

시가현의 시가라키야키(信楽焼)

효고현 북부의 단바야키(丹波焼)

오카야마현의 비젠야키(備前焼)이다.


시가 쓰여진 접시

에도시대 쿄야키


채색한 선형 접시


벤또

역시 교야키


중요문화재인 노노무라 닌세이의 색회모란문미즈사시


노노무라 닌세이는 지금의 닌나지 앞 오무로에 요장을 열고 다완의 혁신을 가져온 쿄야키의 대표자이다.

이 미즈사시는 딱 봐도 단단하게 구워졌고 정교하지만 쿄야키는 대부분 장식성은 강하면서도

결국 흙이 백자 고령토가 아니기 때문에 어딘가 조금 분청의 느낌이 남아 있다.

그래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도 대부분 연질이다.


미노야키에 속하는 오리베 풍의 다완과 가이세키 접시


라쿠다완


특이한 사각형 모향의 라쿠다완

센노 리큐가 새롭게 고안한 라쿠야키는 쿄야키에 들어가진 않는다.

그러나 기와를 빚던 방식을 이용한 참신함과 그 짙은 검은색은 아주 큰 매력을 지닌다.


이카야키

하나이레와 미즈사시


비젠야키 미즈사시와 접시들


이마리 자기들

딱 봐도 완전 백자이다.


수출용 자기


전형적인 화려한 문양들


완벽에 가까운 백자이다.


수출용 대형 자기


이건 나베시마


아주 깨끗한 백자이다.


한쪽에서는 일본의 화폐라는 특집을 하고 있다.


나라시대의 오래된 동전부터 전시



일본화폐의 특징 중 하나인 대판과 소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진 이 금화는 전국시대 금광과 은광의 확대와

조선에서 들어온 정련법 전래로 가능했다. 특히 사도금광과 이와미은광은

일본에 대량의 금은화폐를 유통할 수 있게 하였다.


금화 뒷면


금화는 질량에 따라 대판, 소판, 일푼판의 3종류가 있었으며 대판은 다이묘에게 증여되는 것이었다. 본래 대판은 10량이었으나 그 이후로 점차 크기가 줄어들었다. 특히 금화의 주조는 교토에서 주로 하였으며

이를 전담하는 고토가는 대대로 고토시로베라는 이름은 습명하였다.


뒷면


금화에는 이렇게 제조가에서 품질과 무게를 보증하는 묵서를 썼다.


좀 더 얇은 형태의 금


순금으로 만들어진 후토가의 삼소물


시대별로 금화를 모두 모아 놓았다.


소판의 형식

각종 인장이 의미하는 것


대판의 형식


조선은 금은이 화폐로 유통되지 않았다.


작은 일푼금


은화


각종 은화의 형식


카이지방의 금화와 이와미지방의 은화가 각각 다케다와 모리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


카이의 금


이와미의 은

이와미의 은화는 멕시코 은과 함께 근세를 주름잡았던 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