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25

관서구법순례기 - 8일 사쿠라이 (하세데라長谷寺)

이제 급하게 하세데라로 간다.킨테츠 하세데라역에 도착한 건 4시 20분 경, 내리면 금방인 줄 알았는데2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4시 30분까지 입장이기 때문에 역 앞에 대기하고있던 택시를 잡아타고 5분 만에 절 입구에 도착했다. 하세데라 인왕문하세데라(장곡사 長谷寺)는 진언종 풍산파의 총본산으로3000여 개의 말사와 300만의 신도를 거느린 대사찰이다.아스카시대 말 텐무천황의 승인으로 세워졌다.창건 당시의 동판 법화경은 아직도 남아있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나라국립박물관 보관)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에도 막부 초기에 대대적으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국보 동판 법화경 설법도 인왕상 하세데라 경내 안내도 인왕문을 지나면 바로 하세데라의 명물 등랑이 이어진다.500개의 낮은 계단이 3번 휘어지며 본당까지..

관서구법순례기 - 8일 우다 (무로지室生寺)

드디어 혼자 무로구치오노역에 도착.우네비고료마에에서 무로구치오노까지 역으로는 몇 개 안 되지만,중간에 환승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여기서 버스를 타고 15분 올라가야 무로지에 도착한다.만약 버스를 놓친다면 역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는 것이 좋다.매시 정각에 버스가 출발하는데, 한 시간에 1대만 다닌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중 무로자로 올라가는 길은 약간 무서울 정도로 숲이 우거져있다. 정류소에 도착내려가는 버스는 매시 30분에 있다.참고로 걸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만용을 부리면 안 된다.차로 15분이라고 하지만 엄청난 오르막길을 달려야 한다.버스 요금은 400엔 정도로 비싸다.버스에서 내리면 제법 큰 냇가를 건너 무로지로 가야한다. 다리 입구의 표석. 여인고야 무로지(실생사)라고 써있..

관서구법순례기 - 8일 카시하라2 (카시하라신궁橿原神宮)

여기서 나와 다른 사람들은 헤어진다. 너무 일정이 빡빡해나는 메이지 때 조성된 카시하라신궁을 건너뛰고 바로 무로지로 간다.이후 카시하라신궁 팀은 아스카로, 나는 하세데라로 간다. 카시하라신궁 입구카시하라진구(강원신궁)는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신무천황)이 내려와 도읍으로 삼았다는카시하라쿄(강원경)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세운 신사이다. 바로 옆에는 무려 진무천황릉까지 있다.본전과 신락전은 메이지시대 황궁의 일부를 하사해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하며,나머지는 60년대의 건물이다. 메이지신궁, 헤이안신궁, 이소노가미신궁 등과 함께천황가의 후원을 직접 받는 몇 안되는 신사 중에 하나이다. 신궁 표석 남신문 손 씻는 곳 남신문 앞 외배전 내배전엄청 넓은 신궁이다. 내배전에서 바라 본 회랑 신락전메이지천황이 하사한 건물..

관서구법순례기 - 8일 카시하라1 (카시하라고고학연구소 부속 박물관橿原考古学研究所附属博物館)

우네비고료마에역 도착여기는 일본의 1대 천황인 진무천황의 능이 있는 곳이다. 한적하다 걸어도 5분만 가면 카시하라고고학연구소가 나온다.우리가 가는 곳은 그 부속 박물관 박물관 입구 박물관에 들어간다.여기 갈 때에는 여권을 꼭 소지해야 한다. 외국인은 입장료가 무료이다. 들어가자마자 만난 아스카쿄 유적지에서 가져온 석조물 유수시설 로비로 들어가면 다이마데라에서 출토된 전불의 복원품이 있다. 이것이 원품이다. 중요문화재, 아스카시대의 것이다. 대형 하니와 모형 아스카시대 대형 건물 모형 태극전 앞에 세우는 그...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것 모형이다.새가 달려 있는 것을 보니 부안 석당간도 생각나고, 솟대도 생각난다. 다가성비 복제품 전시관 내부생각보다 훨씬 크고 잘 되어 있어서 놀랐다. 옹관묘 일본 고훈시대..

관서구법순례기 - 8일 이카루가3 (호린지法輪寺·호키지法起寺)

호린지로 가는 길길가 도랑에 가재가 산다. 물이 맑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건드리니까 집게를 지켜든다. 웃기네 저수지를 끼고 논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날이 개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다.멀리 호린지 목탑이 보인다. 800미터 정도를 걸어가면 호린지(법륜사)가 보인다. 호린지 입구 하마석 호린지(법륜사)는 성덕태자의 아들인 야마시로오에왕이 창건한 사찰이다.본래 호류지의 2/3 정도의 크기였다고 하는데 그 후로 사역은 줄어들었다.지금은 아주 작은 절이다. 그나마 창건 당시의 삼중 목탑이 남아 있어 호류지, 호키지의탑과 함께 이카루가의 3대 명탑으로 불렸는데 1940년대 낙뢰로 인하여 소실되었다.지금의 목탑은 그 후 다시 지은 것이다. 재건했어도 우뚝하다. 호린지 담장 기와에 새겨진 법륜사 안에 들어가면 건..

관서구법순례기 - 8일 이카루가2 (호류지法隆寺2)

입장이 회랑도 국보. 아스카시대의 건축이다. 비가 갑자기 많이 와서 잠시 회랑에서 비를 피한다. 경루가 보인다. 국보 금당 회랑의 주춧돌은 반쯤만 다듬은 자연석이다. 기둥에 지붕의 하중이 직접 전달되는 고식 건축이다. 탑과 금당 중문과 금당 좌우로 소나무가 여럿 심어져 있다. 회랑 중문에서 내려다본 남대문 오층탑, 국보, 아스카시대 지금까지 서있는 건 거의 기적이겠지? 탑 내부 사면의 소조상에 대해서는 2차 여행기에서 다 소개했다.그 중에 여러 상을 분리시켜 전시한 도록 사진이 있어서 몇 개 소개한다.유마거사 문수보살 북면 열반장면의 우는 승려 다른 우는 승려. 역시 비통해한다. 목탑과 금당 사이로 보이는 대강당강당의 위치는 본래 회랑 뒤쪽이었는데 헤이안시대에 다시 지으면서 회랑 안쪽으로 들어왔다. 악마..

관서구법순례기 - 8일 이카루가1 (호류지法隆寺1)

아침 일찍 우메다의 오사카역으로 간다. JR을 타고 호류지역으로 간다. JR 오사카역 뭐가 좋은지 브이질이다. 열차 타러 가는 길 열차 기다리는 중나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열차를 기다리면서 잠깐 끼니 때울 준비를 한다. 삼각김밥 샌드위치닭고기 계란 샌드위치 열차를 탄다오사카에서 호류지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호류지역 도착 여기서 호류지로 간다. 여기서부터 1.4키로미터 가야된다. 여기도 일본공산당이 선거 유세중이다.또 자전거다. 음... 공산당에서 공구한 자전거인가. 호류지로 가자 호류지 가는 길 좁은 길이다.역까지 도로를 좀만 정비해주면 좋으련만 날이 흐리다.이번 내내 왜 이러냐 가다가 길을 건너서 주택가 쪽으로 들어간다. 400미터 남았다. 소나무가 보이면 호류지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관서구법순례기 - 3일 나라3 (홋케지法華寺·카이류오지海龍王寺)

이제 걸어서 나라 서쪽 일대의 절들을 마저 본다. 나라 동쪽의 나라공원 사찰들이야 많이들 가지만 홋케지, 카이류오지, 후타이지 같은 절은 다들 안 간다. 특히 카이류오지는 어떤 가이드북, 심지어 나라현 관광안내사이트에도 안 나온다. 국보도 있는데. 벼가 익어 간다. 나라는 참 평화로운 곳이다. 논을 따라 가다가 사선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간다. 십 분정도 걸다 보면 홋케지라는 감이 온다. 정식명칭은 법화멸죄사 사각문, 중요문화재 눈 앞에 보이는 건물이 본당이다. 하지만 여기로 들어갈 수는 없다. 홋케지 입구 홋케지는 쇼무천황(성무천황)의 부인인 고묘황후(광명황후)의 발원으로 지어진 비구니 사찰이다. 전국의 국분사를 관장하는 총본산이 도다이지였다면, 전국의 국분니사,즉 비구니 사찰을 관장하는 총본산은 홋케지..

관서구법순례기 - 3일 나라2 (헤이죠쿄平城京·헤이조궁적자료관平城宮跡資料館·헤이조쿄유구전시관平城京遺構展示館)

이제 나라시대 궁궐유적인 헤이조쿄 유적으로 간다. 여기는 2011년에도 한 번 다녀왔으니 이전 여행기를 참고 바란다. 1차 여행기http://ehddu.tistory.com/137 우리는 사이다이지에서 출발하여 서쪽에서 동쪽을 관통하는 경로를 간다. 헤이조쿄가 보인다. 먼저 헤이조궁적자료관으로 간다. 나라문화재연구소 일본은 국립박물관들과 국립문화재연구소들이 수 년 전 독립법인이 되었다. 박물관을 법인화 시키다니... 발상이 놀랍지만 수입이 있을 리 없는문화재연구소까지 법인화시키다니 정말 미친 것 같다. 드넓은 유적 자료관으로 들어간다. 노씨, 채씨가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다 지난번과 겹치는 거라 상당부분 뺐다. 천도 실측 발굴 정비 수도 전체 모습 장안을 본떴다. 1차 궁궐 복원모형 태극전으로 향한다...

관서구법순례기 - 3일 나라1 (사이다이지西大寺)

야마토사이다이지역을 나서서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사이다이지(서대사)로 간다. 사이다이지는 진언율종의 총본산이다. 본래 나라시대에는 남도육종이라고 하여화엄종, 법상종, 구사종, 율종, 삼론종, 성실종이 유행하였다. 근데 이 남도육종은 독립된종파가 아니라 그냥 학문으로서 존재했던 것 같다. 화엄학, 법상학...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헤이안시대가 되면서 사정이 바뀐다. 유학승들에 의하여 진언종과 천태종이 들어온 것이다.모두 밀교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두 종파들과 남도육종은 대립하는데, 천태종은적극적으로 대립하지만, 진언종은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다. 진언율종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심지어 사이다이지는 제대로 된 홈페이지도 없다.)아마 이런 배경하에 광범위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