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2일 - 교토 히가시야마8 (구마노냐쿠오지신사熊野若王子神社·난젠지南禅寺)

同黎 2016. 6. 10. 01:07



닫히는 문을 뒤로 하고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간다.


향하는 곳은 구마노냐쿠오지신사

에이칸도에서 7~8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되는 곳이다.


북쪽으로 길을 잡다가 골목으로 올라가면 된다.


신사 입구에 도착

사실 한일병합기념비가 있다는 다른 신사와 착각하여 온 곳이었지만 대신 다른 만남을 할 수 있었다.


구마노냐쿠오지신사(熊野若王子神社)은 헤이안시대 후기 인세이(원정)을 통해 막대한 권력을 휘둘었던

고시라카와천황이 당시 인기였던 구마노 삼산을 참배하고 그곳의 신을 모셔온 곳이다. 원래 에이칸도와

한몸이었으나 역시 메이지유신 이후 신불분리로 나누어졌다. 철학의 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뭔 비석을 찾았는데 찾는 건 (당연히) 없고


아라오 세이(荒尾精)의 기념비이다

아라오 세이는 나고야 출신으로 일본 육군 군인이었으면서 동시에 사상가였다.

청일전쟁 후 일본은 청에 요동반도와 대만 할양을 요구하는데 아라오 세이는 이를

반대하며 청, 일이 연대해서 서구 열강에 대항해야 한다는 대아시아주의를 주장했다.

그리고 무역을 통한 양국 우호 증진을 꾀하며 일청무역연구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마츠이 이와네(松井石根)는 역시

대아시아주의를 표방했음에도 그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부하들이 미쳐 날뛴 것이

난징대학살이 되었고, 도쿄 전범 재판에서 그 죄로 A급 전범이 되어 사형에 쳐해졌다.

여기에 대해서는 마츠이 이와네가 억울한 면도 좀 있다고 인정하는 추세

일단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아시아주의자로 되어 있고 그가 올린 영토 할양 반대 주장인

<대청의견>, <대청변망> 등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으나, 중국어 위키백과에는

별다른 항목이 없다. 청일전쟁에 참여한 것을 똑같기 때문일까.

 

하여튼 그의 비석은 이렇게 쓸쓸히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간다.


해가 뉘엇뉘엇하니 추워진다.


이건 그냥 시비


본전의 모습

건물 자체는 메이지시대의 것이라 큰 의미는 없는데


뭘 하는지 땅을 파고 나무를 때고 있다.


일본 애들이 신사 앞에서 아무렇게나 이런 짓을 할 애들은 아닌데...

뭔지 모르겠다.


한쪽에 뭐가 있나 보니


칠복신 중 하나이며 풍요와 재물의 신인 에비스가 모셔져 있다.

이제 난젠지로 급히 걸어간다.


언제봐도 큰 난젠지 삼문

나는 힘들어서 여기 앉아 있고, 전여친과 와 본 이행묵만 심희곤을 데리고 사진 찍으러 간다.


멀리 보이는 난젠지 법당

추워서 손이 다 떨렸네


여기는 하도 자주 와서 설명은 지난 여행기들로 때우겠다.



놓칠 수 없는 사진 포인트인 난젠지 수로각

비와호 물이 이 위로 지나간다.


급하게 찍은 기념사진

사실 이 때 빛이 거의 없었다.


내려오는 길

어른 키 두 배는 될 것 같은 석등롱


난젠지는 교통편이 좀 안 좋은 게 흠이다.

그냥 지하철역으로 걸어야 하는데

가는 길에 보니 어느 집 마당에 조선에서 끌려온 망주석이 서 있다.


조선에서는 혼이 드나드는 돌인데 뜻을 알고 장식해 놓았나..


여튼 본격적인 여행을 처음 마친 우리는 편의점에서 미친 듯이 음식을 샀다.

저 파르페 케잌 진짜 맛있었다.


빠질 수 없는 맥주들과


내사랑 에다마메, 농후한 맛의 치즈, 메론빵 등과 함께 술자리를

역시 일본은 이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