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10일 오쓰1 (엔랴쿠지延暦寺 도토東塔1)

同黎 2018. 1. 29. 01:55



일본에서의 열흘째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히에이잔의 엔랴쿠지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떠난다.


요도야바시역에 도착


케이한선으로 환승


산조케이한역에서 오쓰행 열차로 환승


하마오쓰행 탑승


야마시나를 지난다.


어느덧 기차는


지상으로 올라왔다.


전차로 변하는 순간


하마오쓰역에서 다시 이시야마사카모토선으로 환승


이건 또 뭔가

사카모토행 기차는 애니로 도장되어 있다.


등교하는 학생들


고생이 많다

아마 케이온 등장인물들인 듯


드디어 사카모토에 도착


익숙한 사카모토역을 나선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등교하는 학생들을 따라


우리는 히에이잔 위로 가는 케이블을 타러 간다.


저 멀리 보이는 히에이잔 자락


역 광장


이 일대는 과거 아케치 미츠히데의 영지이기도 했고

또한 히에이잔 엔랴쿠지 소속의 천태종 사찰들이 밀집해 있는 전통건조물보존지구이다.


이 석축들이 사카모토의 특징으로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 천태종의 교조인 전교대사 사이초의 탄생지에 세워진 쇼겐지


일단 지나서 직진하다보면 멀리 히요시대사의 도리이가 보인다.


항상 택시를 타고 싶지만 차가 없다.

시골은 시골


올라가는 길


등교하는 학생들


단풍이 곱게 들었다.


석축길을 따라가는 길



가는 길에 보이는 금족지



단풍과 어우러져 분위기가 좋다.


히요시대사의 붉은 도리이가 보이지만 저긴 조금 이따가 가기로 하고


매번 가던 큰길은 차가 너무 많이 다녀 학생들을 따라 골목길로 돌아가기로 한다.


가다보면


이런 개울을 건넌다.


그렇게 조금 가다보면


차도로 가는 계단이 나온다.


힘들다


학교가 보인다


저 학교를 끼고 바로 돌면


드디어 사카모토케이블에 도착


하...


케이블역이 보인다.


역이 이미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오래된 강삭선


사카모토역


등록유형문화재라는 간판

세계문화유산은 도대체 몇 년째 기념하고 있는거냐


배차간격은 30분으로 이용객 수에 비하면 적은 편


간사이 쓰루 패스 제시


케이블 탑승


사실 일본에서는 강삭철도를 케이블, 케이블카를 로프웨이라고 하는 이상한 관습이 있다.


어쨌든 탑승


출발


올라간다


사카모토 케이블은 꽤나 오래 올라간다.


단풍이 슬슬 들어가는 풍경들



중간에 등장하는 터널


멀리 보이는 풍경


안개가 자욱하다


드디어 산정역 도착


여기서 동탑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버스가 다닌다.

다만 시간이 자주 바뀌고 흔치 않고 막차시간이 짧고 겨울엔 안 다니지만...

어쨌든 히에이잔 내에서는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수 밖에 없다.


도토(동탑) 지역으로 가는 길의 운무


산정역 전망대에서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경이다.



산정역


역시 문화재


여기서 10분 정도 걸어가야 동탑이 나온다.


걸어가는 중


가는 길 여기저기 작은 석불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동탑의 모습



텐카이(天海)의 기념비


드디어 입구가 보인다.

입장료는 700엔

예전 550엔보다 올랐다.


히에이잔 안내판

히에이잔 엔랴쿠지(延暦寺, 연력사)는 일본 천태종의 중심이자 일본 불교 성지 중의 하나이다. 헤이안시대 초기 사이초(최징)은 중국에 건너가 당나라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천태학을 배워왔다. 이후 진언종의 구카이가 밀교를 전해오자 천태종 역시 밀교를 연구하고 일본의 천태종은 밀교와 산왕신도를 결합시킨 특유의 모습으로 성장한다. 사이초는 일본 산악신앙의 중심인 미와산(오미와신사)의 신을 권청해오고 교토의 동북쪽 귀문을 지키는 히에이잔에 본산을 건설한다. 사실 엔랴쿠지는 하나의 사찰이라기보다는 사이초 이래 수많은 제자들이 각자 건립한 승원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사찰 집단이었고, 그 중심에 공통의 존중을 받았던 동탑(도토) 지역의 근본중당과 요카와(횡천)의 중당, 그리고 동서탑이 있었다.

 기존 나라불교에 협조적이었던 진언종과는 달리 천태종은 독립을 선언하며 독자적인 계단을 건립한다.

본래 천하의 3계단이라고 하여 기존 나라불교에서 관리하던 3개의 계단에서의 수계만이 인정되었으나

히에이잔에 독자적인 계단을 설립함으로써 고후쿠지를 중심으로 한 나라불교와 대립하게 되었고

이에 자체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히에이잔은 승병집단이 되었다.

그래서 전국시대까지 히에이잔은 승병들로도 악명높은 일종의 군사집단이기도 했다.

물론 종교적 의미도 큰데, 이른바 천태3종이라고 하는 천태종·천태사문종·천태진성종은 모두 여기서 탄생했고, 정토종·융통염불종·임제종·조동종·정토진종·일련종의 개조가 모두 히에이잔에서 수행했었다. 히에이잔은 이들을 모두 탄압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본 불교의 뿌리가 히에이잔에 있다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잘 나가던 히에이잔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불태워진다. 승병들을 모두 몰살시키고 무장해제당한 히에이잔은 이후 도요토미, 도쿠가와 정권에 의해 다시 재건된다. 지금의 건물은 모두 모모야마, 에도시대 이후의 건물이며 단지 사이토(서탑) 지역의 상행법화당이 과거의 기초 위에 재건되어 헤이안시대의 모습을 재현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이후 메이지시대 종단이 정리되며 고야산이 곤고부지라는 이름으로 통합된 것과 마찬가지로

히에이잔은 엔랴쿠지라는 이름으로 통합되며 단일 사찰이 되었다.


두 번 올랐지만 매번 뭔가 사정이 생겨 도토지역만 보고 내려갔었다.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고 일찍 왔다.



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근본중당 표석


아래쪽에 근본중당이 보인다.


사이초가 수행한 초암 터에 세웠다고 하며 사이초가 직접 새겼다는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한다고 전한다.

본존은 절대비불로 1988년 한 번밖에 공개된 적이 없고, 노부나가의 공습 때 한 번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근본중당 건물은 국보

행랑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판



한 번 수리 중이었는데 거의 끝난 듯하다.


근본중당 안내판

내부에는 사이초가 밝힌 이래 꺼진 적이 없는 불멸의 법등이라는 등이 켜져있었는데,

오다 노부나가의 토벌 때 이 일대 천태종 사찰들은 거의 다 아작이 나서 한번 꺼졌다고 한다.

다행히 야마가타 지방에 옮겨놓았던 불이 있어 이 불로 다시 밝혔다고


회랑의 모습


반대편으로는 문수루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근본중당 정면

에도막부 3대 쇼군 이에미츠가 재건한 것이라고


사이초(최징)는 입당팔가라고 불리는 8명의 대표적 유학승 중의 최선두였다. 애초에 법화경에

중심을 둔 천태학에 대한 입장이 확실했고 그래서 천태산 국청사에 가서 보살계를 받았다.

그러나 같이 입당했던 구카이(공해)가 진언밀교를 들여오자 이에 흥미를 가진 사이초는

구카이에게 관정을 받고 밀교를 전수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결정적으로 <이취석경>을

빌려달라는 사이초의 부탁을 구카이가 거절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뭐 사실 구카이 입장에서는 법화경 중심의 <이취석경>을 왜 빌려달라고 하나 싶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이취경은 밀교의 중요 경전이면서도 욕망조차 불성으로 인정하면서 좌도밀교적 해석으로 흐를 수 있는 경전이다. 이취석경은 거기에 대한 해석으로 구카이의 입장에서는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후 진언종과 천태종을 갈라지지만 어쨌든 사이초의 이런 개방적 태도는 히에이잔을 일본 불교의 용광로로 만들었다. 천태종의 삼매수행은 염불수행으로 이어져 염불을 강조하는 천태진성종, 융통염불종으로 이어지고 염불의 강조는 정토신앙과 이어져 정토종, 정토진종, 시종으로 이어진다. 법화경 근본주의적 태도는 일련, 법화계 종파로 이어지고 선에 대한 수행은 임제종, 조동종으로 이어진다.


회랑 내부의 모습


회랑 입구 쪽의 모습


근본중당 내부는 외진, 중진, 내진으로 나뉘어져 있고,

중진과 내진은 외진 3미터 아래에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내진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으나 2017년 가을 특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