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치나가노역에 내리면 칸신지와 곤고지의 표석이 나란히 서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지만 남조 정권과의 관계가 깊은 절이다.
칸신지로 가는 차와 곤고지로 가는 차 모두 여기서 탄다.
카와치나가노시는 난카이선과 킨테츠선이 지나는 환승지점이고 규모는 꽤 큰 것 같다.
버스 시간이 아직 남아 잠깐 주변을 살펴본다.
카와치나가노시 주변지도
역 전체 버스시간표
칸신지로 가는 버스는 20분에 한 대 꼴이다.
이 동네 사정을 생각해보면 많은 것인 편
버스 탑승
난카이 버스라서 간사이 패스가 되는데 여행객이 흔히 오는 동네가 아니라서
버스 기사 아저씨가 뭔가 조작한 다음에야 패스가 기계를 통과한다.
한 15분 정도 달리면 칸신지에 도착
버스에서 내려서 조금 앞으로 가면
여긴가 싶지만 아니고 좀 더 가면
이런 동상이 나온다. 쿠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의 동상이다.
쿠스노키 마사시게는 남북조시대에 활약한 남조의 충신이다.
고다이고천황이 가마쿠라막부에 대항하라고 전국에 명하자 가와치 지방의 군벌이었던 그는
봉기하여 가마쿠라 막부 타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마쿠라 막부는 그를 악당이라고 불렀다.
막부에 의해 유배당했던 고다이고 천황을 직접 맞이하기도 했던 그는 천황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다.
그 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반란을 일으키고 북조를 세우자 천황의 명에 따라 그를 토벌하러 간다.
그 후 미나토강에서의 전투에서 16차례 다카우지와 싸우지만 끝내 지고 동생과 함께 서로를 베는
방식으로 자결한다. 평소 청렴하고 강직하여 다카우지도 적인 그를 존중하고 항복하기를 내심
빌었다고도 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남조를 정통으로 인정하게 되면서 그는 악당에서
충신으로 변모했고 지금도 꽤나 많은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그의 동상이 여기 세워진 이유는 우선 그가 고다이고 천황의 명을 받아 칸신지를 대대적으로 부흥시켰기 때문이다. 때문에 칸신지는 쿠스노키 가문의 보리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나토강의 전투 이후 그의 목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돌려주고 유족들은 여기에 묻었다. 여러모로 칸신지와는 떨어질 수 없는 인물이다.
칸신지(관심사)에 입장
칸신지는 나라시대 수험도의 종조인 역행자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헤이안시대
구카이(공해)에 의해 재건된 것이 지금까지의 사세와 결정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현재도 진언종이며,
당시 구카이가 북두칠성을 권청하여 칸신지에 모셨는데 때문에 지금도 안에는 구카이가 심었다는
일곱 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있고, 일본에서 유일하게 북두칠성에게 제를 올린다.
고다이고 천황에 의해 복구되었고 고무라카미천황(후촌상천황)의 행재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칸신지 산문
입장료는 300엔
들어가면 금당까지 계단이 쭉 있고 좌우에 건물들이 있다.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여기에 고무라카미천황의 어소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잉어만 헤엄치고 있다.
부적과 책을 구입
계속 올라간다.
칸신지에는 아리제모천 즉 귀자모신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그 사당의 배전이다.
본전과 배전 사이에는 연못이 있고 다리가 놓여져 있다.
귀자모신은 본래 사람을 먹는 나찰녀였는데 석가모니가 그녀의 아이 일천 명 중 막내아이를 숨겨놓았다고 한다. 사라진 아이를 찾아 귀자모신이 울고 다니자 석가모니가 나타나 천명 중 하나가 사라져도
안타까운데 인간들은 어떻겠냐며 깨우치자 그 후 선신으로 변해 아이의 양육을 돌보는 신이 되었다.
아리제모천당
중요문화재이다.
남북조시대 재건 당시의 건물이다.
이제 본당 권역으로 온다.
한쪽에는 건괘탑이라는 탑이 있다.
본래 삼층탑이었는데 2개 층은 사라지고 일층만 남았다.
변재천당
부귀의 신
아미타당
안에는 아미타여래와 부동명왕, 보현보살 등이 모셔져있다.
지장보살도 보이고
금당으로 간다.
금당은 화양과 선종양이라는 두 가지 건축 양식을 혼합한 건물이다.
남북조시대 재건 당시의 건물로 역사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오사카부 내의 유일한 국보 건조물이다.
안에는 비불인 국보 여의륜관음상을 모시고 있다.
4월 17~18일에만 공개한다.
비불이 모셔진 주자
이것이 본존 여의륜관음상. 헤이안시대 전기의 걸작이다.
채색도 많이 남아 있고 6개 팔의 표현도 자연스럽다.
본당 내부에는 진언종 사원답게 좌우로 금강계와 태장계 만다라가 있다.
밀교 의식의 기본 구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위의 사진은 금강계 만다라
아래는 태장계 만다라
참배하는 장소인 본당의 외진
태장계 만다라
금강계 만다라
본당 전경
꽤 크다.
옆 쪽으로 간다.
건괘탑과 금당이 보인다.
대사당 쪽에 고보다이시 구카이(홍법대사 공해)의 동상이 있다.
순례를 하러 오신 건지 스님과 여러 아주머니들이 금강령을 들고 염불을 드리고 있다.
어영당
여기 구카이를 모시고 있다.
어영당
행자당
내려오니 아직도 염불 중이다.
개산당
구카이의 동상
옆에는 고무라카미천황의 묘소가 있다.
그 옆에는 쿠스노키 마사시게의 머리 무덤이다.
대충 둘러보고 영보관 쪽으로 이동
다행히 무료이다.
쿠스노키 마사시게의 유품들. 갑주와 목상, 영정
마사시게의 아들 마사츠라의 편지
그가 지니고 다니던 깃발
성관음상, 중요문화재
성관음상, 중요문화재
십일면관음상, 중요문화재
성관음상, 중요문화재
석가여래좌상, 중요문화재
약사여래좌상, 중요문화재
여의륜관음상, 중요문화재
미륵보살상
미륵보살상
지장보살상, 중요문화재
십일면관음상
성관음상
대일여래상
대일여래상
칙액
천황이 내려준 편액
주자 성승상
중요문화재
사리탑
고다이고천황의 윤지
쿠스노키 마사츠라의 편지
고무라카미천황의 윤지
칸신지 금당 앞에서 기념사진
덥다
다시 버스를 타러 간다.
버스 시간 확인 중
내려오니 2시 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밥을 먹고 곤고지까지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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