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진청 14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어화원, 신무문)

자금성에 감금된 지 5시간째이제 다들 나가고 싶어한다. 곤녕궁(坤寧宮) 뒤편 후삼궁의 출구인 곤녕문(坤寧門)이 보인다.여기를 지나면 후원인 어화원(御花園)이 시작된다. 온갖 기암괴석과 기화요초를 모아 둔 어화원 나무 한 그루도 범상치 않다. 어화원은 자금성의 정식 화원이다. 전체 차지하는 부분은 자금성 총면적의 1.5%에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금성 내에서 보기 드문 나무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자금성에서 유일한 녹지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어화원 외에도 건복궁, 자녕궁, 영수궁에 각각 화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기준에서 볼 수 있는 후원은 어화원과 따로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영수궁의 건륭화원 뿐이기 때문에 일반 입장한 관람객이 볼 수 있는 후원은 어화원이 유일하다..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후삼궁: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후삼궁 구역에 들어가기 위해 건청문 앞으로 가는 길보화전 뒤편이 보인다. 보화전 뒤편에는 자금성에서 가장 크고 긴 것으로 알려진 답도(단지)인 운룡대석조가 있다.중국 측 안내서에는 운룡석계(雲龍石階)라고 써 있었다.길이는 16.5미터, 폭은 3미터, 두께는 1.7미터에 달하는 이 운룡대석조는무게가 200톤으로 원석의 무게는 300톤이었다고 한다.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이 운룡대석조는 북경 서남부의 팡산(房山)이라는 곳에서 채굴되었는데명사에 따르면 병조에서 병사 6천 명을 동원해 채굴했으며 겨울철에 2만 명을 동원하여얼음을 얼린 빙판길을 이용해 옮겨왔다고 한다. 오악과 운룡을 조각한 이 운룡대석조는 명대 석조미술의 대표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러 군데서 극찬을 하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 엄청 감동적인 조각은 ..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동육궁)

이제 종표관(봉선전)을 나와 동육궁으로 간다. 영수궁 옆에 있는 동육궁은 서육궁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비빈의 처소로 활용되던 곳이다.서육궁에 비해서 중요도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곳이고무엇보다 진보관을 보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보기 어렵게 된다.지금은 대부분 청동기관, 도자관, 불상조소관 같은 전시관들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유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보면 좋지만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가장 유명한 연희궁(延禧宮) 정도만 보기로 했다. 함화좌문을 지나면 동육궁이 모여있는 골목이 보인다. 연희궁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경인궁에 잠깐 들리기로 한다.정문인 경인문(景仁門)을 지나면 이렇게 옥으로 된 영벽이 나오고 경인궁(景仁宮) 본전이 나온다.경인궁은 영락제 때 장안궁이었다가 가정제 때 지금의 이름을..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종표관2)

봉선전(종표관) 정전 뒤편에 있는 서양식 시계서양 시계를 본따 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시계 뒤편 벽을 보면 유리벽이 보인다.봉선전 뒷면 벽이 뜯겼던 흔적이다. 침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간 가운데 부분에 전시된 연꽃모양 시계왼쪽에 정전의 뜯겼던 부분에 설치된 유리 벽이, 오른편에 침전의 벽이 보인다. 역시 서양 시계를 모방해 자체적으로 청에서 만든 시계연꽃 화분모양으로 만들었다. 커다란 스위스 시계잘 보면 아래 붓을 들고 있는 인형이 있다.정각이 되면 이 인형이 시간을 종이에 써서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시계는 스위스에서도 귀한 것이다.전세계적으로 몇 개 안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기하다. 청나라에서 만든 시계누각모양의 시계에 시간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을 설치했다.유럽에서 유행했던..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종표관1: 봉선전)

이제 종표관으로 들어간다.여기도 별도로 10위안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면 봉선문(奉先門)이 나온다. 역시 벽에 뚫은 문이다. 문을 들어가면 봉선전(奉先殿)이 보인다. 봉선전은 원래 명나라 때 지어서 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개수된 건물로工자 모양 건물이며 앞의 정전과 뒤의 침전으로 이루어져 있다.봉선전은 원래 역대 황제와 그 조상들을 모시는 건물로 내태묘(內太廟)라고도 불렸던 건물이다.즉 태묘가 국가의 공식적인 사당으로 국가를 보호하는 사당의 역할을 했다면봉선전은 황실 가족의 개인적 사당으로 기능했던 것이다.조선의 경우에도 종묘와 별도로 창덕궁 안에 선원전을 두어서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봉선전은 정전 9칸, 후전 9칸의 거대한 건물로 굉장히 격이 높은 건물이다...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5: 건륭화원, 진비정)

이제 낙수당을 나온다.확실히 낙수당 뒷마당부터는 나무가 많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이화헌(頤和軒) 이화헌은 별당 같은 느낌으로 건륭제 때 만들어졌고 역시 광서제 때 서태후에 의해 중수된 건물이다.뒤로는 회랑이 있어 뒤의 경기각(景祺閣)과 연결되어 있다. 좌우로도 회랑이 있어 전체적으로낙수당에서 이화헌, 경기각까지를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이화헌에서 경기각은 내부가연결되어 있어 안에서는 건물이 바뀌는 것을 그리 느낄 수 없다.앞에는 일대와 월대가 있다. 일대는 말 그대로 해시계고,월대는 물을 담아 놓는 석대인데 밤에 달빛이 비추게 하는 것이다. 낙수당과 이화헌 사이에는 이렇게 향로와 괴석이 있다. 이 괴석은 수석 중에서도 가장 좋다는 관통석이다.보통은 자연석으로 나오는 경우는 좀 드물고 저런 종류는석회암질..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4: 창음각, 낙수당)

이제 양성전 뒤를 돌아 옆으로 가면 창음각이 나온다. 창음각(暢音閣)은 3층의 건물로 경극 무대이다. 건륭제가 이곳으로 이어하면서 지었는데 후일 서태후가 영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졌다. 높이가 약 2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로 이화원에 있는 경극무대와 함께 대표적인 중국 경극무대에 속한다. 앞에는 열시루(悅視樓)라는 경극 관람장이 있는데 현재 청대경극유물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현존하는 경극 고건축으로는 가장 큰 건물이며 건물 뒤쪽으로는 일종의 와이어 장치가 되어 있다.경극 배우들이 입체감 있게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 3층의 건물에는 각각의 층마다 별칭이 있는데1층은 수대(壽臺), 2층은 녹대(祿臺), 3층은 복대(福臺)라고 한다. 너무 ..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3: 영수궁, 양성전)

황극전 뒤로 가면 후전인 영수궁(寧壽宮)이 보인다. 단층의 정면 7칸 건물인 영수궁 건물은 황극전이 생기기 전 영수궁 건물의 원형을 간직한 공간이다.여기도 서태후가 손을 대긴 했지만 그래도 강희제 당시의 원 건축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자금성 후삼궁 중 한 곳인 곤녕궁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동항 잠시 영수궁 옆의 화장실에 들린다.경극 무대인 창음각의 뒷모습이 보인다. 물론 이 때는 이게 무슨 건물인지 몰랐다. 창음각 뒤편의 모습 여기도 조그만 문이 있다.양 옆으로는 수많은 내무부 관원과 환관, 군사들이 업무를 보았을 작은 건물들이 보인다.이런 건물들을 개조해서 매점이나 화장실을 만들다니... 조금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창음각 뒤편에서 바라본 영수궁 이제 다시 진보관 관람을 계속한다.문이 하나 ..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2)

황극전 사방의 회랑은 진보관으로 쓰이고 있다.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주로 금은옥기 등 귀중품으로 만든 화려한 중궁 주보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맨 먼저 보이는 것은 진주로 된 조주(朝珠)라는 것으로 108염주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일종의 목걸이이다.당시 황제를 비롯한 모든 황족과 관료들은 관복이나 예복에 조주를 걸어야 했는데 계급에 따라 조주의 재료가 달랐다. 이렇게 화려한 조주는 황제나 황후, 비빈들만 걸 수 있었는데 순치제의 것이라고 한다. 청금석으로 된 조주강희제 시대의 것이다. 이것은 조대(朝帶), 즉 예복에 걸치는 허리띠이다.허리에 향낭 등의 장식품들을 달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영약(領約)이라고 하는 황후나 비빈들의 목걸이 비취로 만든 팔찌 금과 칠보로 만든 팔찌 수정 염주 비취와 금..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1: 영수궁 구룡벽, 황극전)

건청문 옆으로 난 경운문(景運門)을 지나면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오고 종표관(봉선전) 입구가 나온다. 여긴 좀 이따 가기로 하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전정(箭亭)이라는 건물이 나온다.황족들에게 만주족 방식의 교육을 시키는 곳이었다. 이미 강희제 때부터 황제들은 만주족의 한화(漢化)를 심각하게 느끼고 만주족의 정체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뭐 그 정체성이라는 것이 고유한 것인지 아니면 청 건국 이후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 중이지만 이렇게 진보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붉은 담에 3개의 유리로 장식된 문이다. 이름은 석광문(錫廣門) 여기서 진보관(珍寶館) 표를 사야한다. 진보관 입장료는 10위안이다.자금성 입장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제 입장 진보관..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서육궁2: 저수궁, 익곤궁)

태극전을 나와 익곤궁 방향으로 간다. 익곤궁 가는 길에 있는 광생우문 익곤문(翊坤門)을 지나 익곤궁(翊坤宮)으로 들어간다. 익곤궁 정면난장판이다. 서쪽에 있는 부속건물원화전(元和殿)으로 도덕당(道德堂)이라는 별칭도 있다. 익곤궁은 서육궁의 하나이다. 본래 명대에 만안궁이었다가 가정제 때 익곤궁으로 바꾸었다. 역시 평범한 비빈의 거처 중 하나였지만 서태후(자희태후)가 1884년 50세를 맞이하여 여기서 생신연을 하고 눌러 앉았다.이 때 공사로 익곤궁과 저수궁 사이에 문과 담을 허물고 체화전이라는 건물을 추가하였다. 익곤궁 현판 앞에는 태후의 거처답게 동으로 만든 봉황, 학, 그리고 동항을 배치했다. 향로도 있다. 안에는 여러 호화품들이 전시되어 있다.옥으로 만든 복숭아 나무 화분 보석이 장식된 서양식 시계..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서육궁1: 양심전, 태극전)

보화전 옆 후우문을 통해 서쪽으로 간다. 여기서는 무슨 돈 받고 사진 찍어주는 코너가 있는데그걸 못 찍게 하려고 저런다.그것이 알고싶다인 줄 자금성 서쪽 관람로의 입구인 내우문여기서부터 양심전과 서육궁 관람이 시작된다. 내우문 서관 참관로 지도만만치 않은 넓은 지역이다.제일 먼너 양심전부터 가기로 한다. 내우문 현판 여기서부터는 만주어와 한자가 병기되어 있다.청이 멸망하고도 내조 지역은 청국 소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베이징 정변 이전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에현판이 그대로인 것으로 생각된다. 역시 외조 쪽은 중화민국 시절에 현판이 바뀐 것 같다. 서쪽 부분과 중앙 부분은 이렇게 거대한 벽과 그 사이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건물과 건물 사이가 이런 거대한 벽으로 나뉘어져 있어 바람도 잘 안 불고 답답한 느낌을 준..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외조 삼대전2: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이제 태화전으로 다가가본다. 압박감이 꽤 크다. 조선 사신들이 여기에 와서 태화전(太和殿)을 바라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중앙의 어도를 통해 태화전으로 간다. 월대의 모습 월대 아래서 본 태화전 태화전 월대는 3단으로 1488개의 난간석과 1142개의 배수구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태화전 월대에도 긴 답도가 있다. 자금성의 중심인 건물만큼 답도도 거대하다.3단으로 짜여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태화전 답도 중간에 구름 사이에서 여의주를 가운데 놓고 놀고 있는 용이 보인다. 멀리 태화전이 보인다. 이 위를 황제가 탄 가마가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조선의 예를 보아도 가마가 이 위로 지나간 적은 없다.아마 호사가들의 말인 듯하다. 가운데에 있는 용 답도 하나 당 이렇게 9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외조 삼대전1: 오문, 태화문, 태화전)

태묘를 나와 오문으로 들어간다. 저 줄은 다 입장객 줄이고 또 문 오른쪽에는 영어, 한국어, 일어 등 안내 오디오 가이드 대여소이다. 오문 정면 오문에 대한 설명은 대충 앞에서 했다.오문 안시루 전경 오문 좌측의 누각들 드디어 오문으로 들어간다.이 와중에 표 잃어버렸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오문 현판오문은 시간의 기준이 되는 자오선의 중심임을 뜻한다.즉 하늘의 기준이 여기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오문으로 들어간다. 이제 본격적인 자금성 탐방의 시작이다.현재 중국에서의 공식명칭은 고궁박물원자금성 자리는 원에 이어 명, 청에 이르기까지 8백 년 동안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다.현재의 자금성 자리는 절반 정도 원의 대도 자리와 겹쳐 있다고 한다. 명이 원을 멸망시킨 후 대도를 싹쓸어버리고 남경을 수도로 삼았지만 영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