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3일 나라1 (도쇼다이지唐招提寺1)

同黎 2017. 6. 27. 02:18



택시를 타고 키즈역 도착


가모역이 아니라 키즈역으로 간 건 나라역까지 갈 때 환승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이다.

가모역은 오사카 방면, 키즈역은 교토-나라 방면 직항이다.


역 플랫폼


기차 기다리는 중


작은 역이지만 그래도 큰 선이라 그런지 시설은 크다.


기차 도착


나라역에 도착


나라의 상징 센토군이다.

처음 보면 놀란다는 그 마스코트


JR나라역 도착


헤이조쿄 궁궐을 모티브로 한 웅장한 역이나... 관광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

도다이지에서 2km나 떨어져있어서..


구 JR나라역사


쇼와시대 초기의 건물로 현재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택시 타고 바로 도쇼다이지로 직행

시간이 없다


도쇼다이지 남대문


항상 도로가 좁아 사진 찍기가 불편하다.

나라시대 양식으로 근래에 복원한 것이다.


멀리 금당이 보인다.


나라시대에는 남대문과 금당 사이에 중문이 있고, 중문 좌우로 회랑이 있어

금당과 강당, 종루와 고루를 감쌌다고 하며 동서 양탑도 있었다고 한다.


남대문 현판

진품은 중요문화재이다.


도쇼다이지는 율종 총본산으로 노사나불이라는 이름의

본존을 모시고 있는 몇 안 되는 일본의 사찰 중 하나이다.

본래 당나라 출신의 율사 감진(鑑真)을 어렵게 모셔오고 계단을 설치하고 나서 감진이 주석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황자의 저택을 하사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도 창고 하나는 당시의 건물이다. 

도쇼다이지의 건설 도중 나라시대가 끝나고 천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헤이안시대 초기의 작품들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나라시대 풍을 그대로

지키고 있기 때문에 나라시대, 특히 덴표시대 대표적인 불교미술로 손꼽히고 있다.

이후 일시 쇠퇴했다가 가마쿠라시대 계율 복원 운동에 따라 재건되었다.

건물이 너무나 유려하고 아름다워 나라 최고의 사찰로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생각보다 자주 찾았다.



입장료는 600엔

결코 싸지 않다.


아래서 본 현판

당시 천황의 칙액이라 하는데 쇼무천황인가

 

금당이 보인다.


나라시대 건축의 백미인 도쇼다이지 금당


그 동안 나라시대 건축을 꽤 봤으면서 왜 매번 도쇼다이지 금당에 감동을 받았나 생각해봤더니

도쇼다이지 금당은 절의 본전으로 지어진 유일한 나라시대 건물이다.

호류지 금당이야 아스카시대의 것이라 아직 귀족문화의 성숙함이 모자르고 에도시대 변형된 부분이 있다.

다른 나라시대 건물 역시 대부분 본전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고 나중에 금당이나 본당으로 바뀐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표석


고도 나라의 문화재의 한 구성요소로 등록되어 있다.


경내도

금당과 강당을 중심으로 옛 회랑의 흔적에 다시 지어진 고루와 예당만 남아있다.

그래도 고즈넉한 분위기다.


금당


처마선이 정말 곱다.


마치 학이 한 마리 내려온 느낌

부처를 모시는 신성한 건축으로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금당 앞 석등


하나만 서 있는 것을 보아 일본에서 보기 드문 고식인데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다.


참 석등에 인색한 나라이다.


멀리 보이는 예당과 보장


과거 회랑이 있던 자리


금당의 목구조


파노라마로 찍은 위키의 사진

가운데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천수관음을 놓고 좌우로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노사나불-약사여래-천수관음은 유래가 없는데, 일설에 따르면 감진이 세운 세 개의 계단이 위치한 세 절, 도다이지(노사나불), 규슈 칸논지(천수관음), 시모츠케 야쿠시지(약사여래)의 본존을 모신 것이라고도 한다.


전에는 안 그렇더니 사진 찍기 좋게 열어놓았다.

본존 건칠노사나불좌상


목심건칠천수관음상

나라시대, 국보


목심건칠약사여래상

역시 국보

단 광배는 제 짝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광배에는 천불을 붙여 놓았는데 현재 864개가 남아있다고 한다.


탈활건칠조로 만들어진 노사나불


채색까지 비교적 잘 남아있다.


국보인 목조 제석천상과


목조 범천상


모두 국보이다.


천수관음상

정말 천 개의 팔이 있었는데 953개가 남아있다고


헤이세이 대수리 당시 이 팔을 전부 해체 수리했다는데

대단하다


팔의 모습


내부의 천정


목조 사천왕상

역시 국보


생동감은 좀 떨어지는 듯


아래의 석단도 나라시대 그대로이다.


안상이 선명하다.


약사여래상


이 상은 내부에서 복장으로 발견된 동전의 발행연도에 따라 천도 이후에 완성되었다고 추정하며,

광배는 비례에 안 맞게 너무 커서 다른 불상의 것을 전용했다고 보고 있다.

 

옆에는 사천왕상도 보인다.


그래도 작은 금동불로만 보던 약사여래상을 크게 확대한 모습인 것 같아 좋다.


사천왕상


판벽의 모습


측면에서 본 노사나불


내부 목조 구조


다시 보는 불단의 모습


이제 금당을 나왔다.


바로 뒤편의 강당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