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4일 교토 히가시야마9 (쇼렌인青蓮院)

同黎 2017. 7. 30. 02:18



오늘 마지막 방문지는 지온인 옆에 있는 쇼렌인(青蓮院, 청련원)이다.


이곳도 야간개장 중이라 찾은 것인데 참으로 오랜만이다.

2011년에 오고 이번이 두 번째



쇼렌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녹나무

정토진종의 교조 신란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들이다.

입구부터 꽉 채워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쇼렌인의 정문인 나가야몬(장옥문)

메이지시대의 대화재와 좌파 대학생들의 방화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고 사라졌는데,

이 문이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에도시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에도시대 일본의 여성 천황이었던 메이쇼천황(명정천황)의 건물을 이축했다고 한다.


이전 여행기를 보니 일본어를 못해서 그랬는지 정보가 정말 적다. 일제히 손을 봐야겠지...

쇼렌인은 천태종 소속 사찰로, 황실과 연관이 깊은 문적사원 중 하나이다. 본래 사이초가 세운 히에이잔의 여러 숙방 중 하나인 쇼렌뵤(청련방)를 기원에 두고 있다고 하며 이후 교토 시내로 이주하고, 가마쿠라시대에는 후시미천황의 황자가 출가하면서 문적사원이 되었다. 무로마치시대까지는 쇼군들의 후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했으나 전국시대에는 쇠락해 한때 혼간지의 말사가 되었다. 본래 천태종에서 출가한 정토진종의 교조 신란이 이곳에서 득도했던 인연인데, 무려 혼간지 8대 법주 렌뇨가 득도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 교토고쇼가 소실된 이후에는 한때 이곳에 가어소가 만들어져서 율전어소라고 불렸다. 1893년의 대화재로 거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고, 1993년에는 중핵파 대학생들의 방화로 또 일부가 불탔다. 그러나 상당한 양의 유물은 여전히 보관하고 있고, 2차대전을 전후로 한 소유권 분쟁 당시 빠져나간 유물도 엄청나다.


특이하게 문적사원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사찰인데 이게 좋은 건 아니다. 전후에 히가시후시미 지고라는 양반이 문주로 부임했는데 이 사람은 무려 현재 천황의 외숙으로, 누나가 쇼와천황의 부인인 고준황후, 아버지가 황족인 쿠니노미야 쿠니요시왕이다. 이후 후계가 끊긴 히가시후시미노미야의 양자로 들어갔으나 1945년 다른 황족들과 함께 강제로 신적강하를 당했다. 신적강하를 당하자마자 출가해서 득도해 1952년 쇼렌인 문주로 부임했다. 이후 문제를 많이 일으켰는데, 쇼렌인 재건 공사 중 사찰 직원들과 문제를 일으켜 무려 이들이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에 가입해 문 앞에 적기(!)를 늘어놓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했다고 한다. 또 교토시에서 교토의 종교법인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자 교토불교협회 회장이 되서 반대투쟁에 앞장섰고, 또 갑자기 내 아들에게 문주를 대대로 세습시키게 하겠다고 하여 천태종에서 불허하자 그럼 탈퇴하겠다고 해서 결국 천태종이 항복하는... 막장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여튼 2014년 무려 103세, 일본 황족(구 황족 포함) 중 최고령으로 사망했다. 와...


여튼 우리는 산문 안으로 입장


쇼렌인문적이라는 등


현판


뒤돌아본 풍경

분위기 하나는 환상적이다.


쇼렌인 라이트업 티켓


이제 안쪽으로 들어간다.


파란색 조명과 어울려져 환상적 느낌을 준다.


녹나무들



사무소를 통해 서원으로 들어간다.


입구


입장 중


들어가면 현관의 마차 대는 곳, 즉 구루마요세가 나오고


이 곳에 과거 천황들이 사용했다는 가마와


천황가와 시마즈가를 비롯한 여러 가문에서 봉납한 궤가 나온다.

 

저 십자가가 기독교랑은 관련 없단다.


히가시후시미궁가(미야케)의 문장


이제 신전으로 간다.


신전 문의 봉황그림


사찰의 신전(여기서 신은 북두성 신자로 귀신 신자가 아니다. 라고 이야기했으나...)의 가장 높은 곳에

보통 공작을 그린다.


발을 모두 걷어 올린 신전의 모습

메이쇼천황의 건물을 이전하였다고 하나 지금 건물은 메이지시대 불탄 걸 재건한 것

귀가한 사람을 위한 일본식 발이 잘 쳐져 있다.


신전 앞 정원


녹나무를 배경으로 넓은 모래정원이다.


이곳은 단풍나무가 적기 때문에 아예 파란색을 주제로 삼은 듯하다.


어쨌든 분위기는 최고


잘 안 보이지만 귤나무와 사쿠라가 심어져 있는데 이는 천황을 지키는 문무관을 상징


색도 변한다




신비한 분위기에


잠시 넋을 잃고 구경을 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


신전의 후스마에


분리되어 있어 다행히 화마를 피하고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관람객이 그 중 한 폭을 들고 튀어 하나는 분실 중이라고;;


이래봬도 역사가 깊은데, 에도막부 2대 쇼군인 히데타다의 딸인 도후쿠몬인이

고미즈노오천황에게 시집가자 혼수의 일종으로 해주었다고 한다.


안내판


신전 중심의 불각


아름다운 정원 불빛



천천히 돌아보는 중


소어소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불단


3대 문주로 쇼렌인을 옮겨오고 천태좌주까지 오른 지엔(慈円)과

천태종의 중흥조인 원삼대사 료겐(良源)을 주자에 모신 상


지엔


료겐


원삼대사 료겐은 일본에서 구카이 다음으로 많은 상이 만들어진 승려인데

히에이잔 엔랴쿠지를 재건했으며 오미쿠지 등 많은 민간신앙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에게는 도깨비의 모습으로 알려진 각대사(角大師)의 모습으로도 유명하다.

머리에 뿔이 두 개 난 오니의 모습인데 료겐이 변해 악마를 쫓아낼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


신전 도코노마의 선반 후스마에


신전 현판


마당에 놓은 수조


신전 측면의 도코노마


이 앞에 옥좌가 있다.


천황이 머물던 곳


화려한 후스마에가 많이 보인다.


삼나무 문도 정교하게 조각, 채색해 놓았다.



소어소 앞


이 연못 정원은 에도시대 초의 대 작정가 고보리 엔슈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연못은 용심지라고 하는데


이 가운데 박힌 거대한 바위가 목욕하는 용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켠의 작은 석등


멀리 보이는 석탑


곳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말차를 시켜 차석에 앉아야 한다.


역시 돈을 내야 하는구나


단풍이 들지 않은 청단풍


이런 오래된 나무가 곳곳에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그림같은 풍경

신기하게 벌레가 없네


이제 건물을 나와 걸어서 정원을 볼 예정


걸어가는 곳


입구의 작은 정원

공간을 놀리는 법이 없다.


건물 뒤로 돌아간다.


장명등 형식의 석등


정원 들어가는 길


작은 구멍을 통과하면 정원이 펼쳐진다.


또 새로운 풍경



천황의 학문소였던 호문정


메이지시대의 화재는 견뎠으나 1993년 중핵파 방화사건으로 불탔다고 한다.


반대쪽엔 우리가 지나온 소어소가 보인다.


감상 중인 사람들



용심지를 걷는다


삥 돌아가는 중



용심지의 모습



뒤편에 대숲이 어렴풋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석탑



단풍이 에이칸도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묘한 맛이 있다.


자박자박 걸어다닌다


작은 다실



울창한 대숲


조명이 환상적이다.




교토는 대가 참 좋다


진수사인 이나리신사


고요한데 신이 깨지나 않을까


여우들이 지키는 중




대숲의 경관을 바라보면서 걷다보면


본당이 나온다

이 본당은 특이하게 앞뒤로 모두 모셨는데


뒷면은 부동명왕을 모셨다.

원래는 국보인 청부동이라고 불리는 부동명왕이동자상 불화를 모셨다.


그러나 지금은 쇼군즈카라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다른 부동명왕상을 모셨다.


청부동명왕

현재 비불이다


본당 창문은 선종양


본당 정면


여기는 본존이 치성광여래이다. 일본에서도 거의 없는 예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치성광여래는 북두성의 인격화, 비로자나불의 화신으로 보는데 일본에서는 불정존이라고 하여 밀교에서 부처의 머리 정상에서 불법이 의인화되는 것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안에는 치성광만다라가 모셔져 있다는데 비불이며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천태종 4대 비보라고 하는데, 엔랴쿠지 본존 약사여래상, 도쿄 센소지 관음보살상, 미이데라 황부동명왕상으로 추정되나... 확실치는 않다.


본당 현판


명춘?


다시 신전 앞 정원으로 돌아왔다.



푸른 라이트업을 감상 중



어슴프레 보이는 신전의 모습


잘은 안 보이지만



다른 사람이 하길래 나도 플래쉬를 켜본다.



멀리 보이는 작은 건물이 본당



이렇게 정원을 보고 나온다.


이 작은 문은 사각문

역시 에도시대의 건물로 간신히 화재를 면한 건물이다.


이제 밖으로 나간다.


나가는 길도 아름답다.

영화촬영의 명소로 예전부터 유명했다고


오랜만이었다. 안녕


나와 오사카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길

타카야마 히코쿠로의 동상이 보인다.


에도시대 후기(18세기)의 존황파 중의 하나로 천황을 직접 배알했던 인물이라고도 하며,

칸세이의 삼기인라고 하여 에도후기의 대표적인 존황파 삼인 중 하나로 치기도 한다.

산조역 앞에 있는 이 동상은 교토고쇼를 바라보며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아래 이름은 도고 헤이하치로의 친필


케이한선을 타고 오사카로 간다.


키타하마에서 하차


환승


마침내 닛폰바시에 도착


도톤보리는 아직도 성업 중. 이렇게 길고 긴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