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3일 - 교토 라쿠호쿠3 (다이토쿠지 고토인大德寺 高桐院)

同黎 2016. 6. 11. 22:21



내가 호슌인에 가 있는 동안 먼저 애들은 고토인에 보냈다.


지난 여행기에 이미 많이 설명해 놓아서 다시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로마치시대부터 유명한 무가이며 현재까지도 총리를 배출한 명문가인 호소카와 가문의

보리사이며 임진전쟁의 주축 중 하나였던 가토 기요마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사찰이다.

그 밖에도 정원으로 워낙 중요한 절이다.



고토인은 산문부터도 한 번에 보여주지 않는다.

소나무가 심어진 이끼 정원을 ㄱ자로 꺾어 들어가야 비로소 산문이 보인다.


산문을 들어선다.


고토인(高桐院)이라는 명패


산문 안으로 들어서면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울창한 대밭이 나타난다.


본래 이끼로 덮여 녹색이지만 밤새 내린 눈으로 살짝 덮여있다.


대나무와 쪼갠 나무로 만든 작은 문

이 절을 지은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워낙 다도의 명인으로 유명했으니

이런 디테일한 부분도 모두 신경을 쓸 수 밖에


길고 긴 대밭을 따라 난 길을 걸어가야 된다.


멀리 문이 보이지만 그 곳은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계속해서 길의 방향을 바꾸면서 방문자는 점차 방향감각을 잃고 고토인 자체에 녹아들게 된다.


본당으로 바로 들어가는 문이지만 열리지 않는다.


이 문은 본당과 대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길을 한번 더 꺾어서 문을 통과해


비로소 고토인에 들어갈 수 있다.


입구에서 파는 다완과 기타 다도구들

이 곳이 워낙 다도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가격이 상당한 물건들이 많다.


먼저 서원부분으로 간다.


다실이 붙어 있는 이 서원은 센노 리큐의 자택 서원을 이축했다고 하는데

왜 문화재 지정이 안 되어 있지?


그 중에서도 다실 부분은 송상헌이라고 하여

센노 리큐의 지도 하에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원의 장벽화


보존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밖에서 바라본 서원 풍경


이 곳 밖의 정원은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니다.


센노 리큐의 서원이라고 하는데 너무 새 것 같아서 약간 믿기지가 않는다.


여기도 폐불훼석의 영향이 있었다던데 메이지시대 때 꽤 많은 변화가 있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는 센노 리큐에 환호하는 일본에서 이 건물들을 그냥 놔두었을리가 없다.


서원 정원 풍경


조릿대로 자라고 있고 뭐 특별한 감흥은 없다.


여기까지 보고 왜 여기로 가라 그랬는지 애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두 바보


일단 사진만 찍는다.


바보들


서원의 다다미 통로


이 곳을 지나서


옆의 본당으로 가야 한다.


마루로 되어 있다.


본당으로 가는 길에 붙어 있는 작은 다실


이 곳이 봉래라고 한다.


센노 리큐의 후손인 우라센가에서 만들었다는 다실로 역시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철저히 소박함을 지키고 있는 다실 안


굽은 나무, 대나무 조각, 토벽 같은 소박한 재료를 가능한 지키고 있다.


다실 바로 바깥의 정원


이제 다실을 지나서


본당으로 간다.

본당 위에는 고동원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도코노마에 걸려 있는 달마도


고토인의 진짜 매력은


본당 앞의 정원에 있다.


본당 앞 정원은 단풍의 정원이라고 불리는데 파격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대나무로 둘러쌓인 이끼정원에 등롱 하나만 서 있는 형태이다.

저 석등은 조선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를 단풍의 정원이라고 하는데 가을에 오면 붉은 단풍잎과 녹색 이끼의 대비가 매우 아름답다.


이렇게 된다.


이렇게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또 운치가 있다.


추운 게 문제지


그래도 일단 앉아서 감상 중


이 등롱은 조선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를 탐내 달라고 하자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한쪽 지붕을 칼로 쳐서 흠을 내고 안 주었다고 한다.

진품은 뒤편에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무덤이 되었는데 한국풍은 아니다.


눈 쌓인 전경



이런 파격적인 정원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잠시 앉아 감상 중


저 멀리 보이는 또 다른 다실


저기는 접근 불가지만 호소카와 가의 묘소는 신발을 신고 내려와 갈 수 있다.


추위타시는 분


이 날씨에도 정원 관리 중


이렇게 난 노지를 따라 걷다 보면


조릿대 너머로 저 멀리 대문이 하나 보인다.


노지 위에 놓인 돌멩이 하나


대문 안을 들어가면 호소카와 가문의 묘소가 있다.


들어가는 길


묘소 대문에 새겨진 칠오동 문양

호소카와 가문의 문양은 이게 아닌데 왜 도요토미가의 문양이 새겨졌는지 모르겠다.

칠오동은 총리의 상징이기도 한데 호소카와가에서 총리를 배출했기 때문일까?


호소카와 타다오키와 가라샤의 무덤


호소카와 가라샤는 아케치 미츠히데의 딸이다. 둘은 금슬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혼노지의 변

이후 아케치 미츠히데가 역적이 된 후에도 정실로써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 교토에 있다 이시다 미츠나리가 무장들의 가족을 가두려 하자 걸림돌이 되기 않기 위해 죽는다.

그러나 그녀는 천주교도이기 때문에 자결을 하지 않고 남편의 가신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하여튼 이후 호소카와 타다오키는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결국 둘은 죽어서 같이 묻혔다.

무덤은 그가 가장 사랑했다는 석등롱이다.


설명문


뒤편을 보면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칼로 내려친 부분이 보인다.


호소카와 타다오키는 2대 당주이며 다른 역대 당주는 옆에 모셔져 있다.


켠의 석등롱


선정을 상징하는 고요한 돌



여기저기 놓인 석등롱에 자연스럽게 이끼가 자라고 있다.


한켠에 있는 커다란 수조.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 왕궁의 나생문(???)에서

가져온 주춧돌이라고 하는데 한국엔 이런 주춧돌이 없는 게 함정


여튼 그런 역사를 지닌 물건도 오늘은 눈 아래 묵묵히 서 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또 있는 작은 다실의 도코노마


본당에는 작은 불상과 호소카와 가의 위패들이 모셔져 있다.


다시 바라본 본당 앞의 정원

한없이 정적인 모습이다.


이제 다이토쿠지를 나선다.


나오는 길 발견한 한국식 담장


흙벽에 기와를 넣은 벽은 처음본다. 마치 조선의 담을 보는 것 같다.

이 곳이 조선통신사들의 숙소여서 그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