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8일 교토 히가시야마2 (기요미즈데라清水寺·야사카신사八坂神社·세이류지青龍寺)

同黎 2018. 6. 7. 03:27



다음은 기요미즈데라



현재 북법상종 대본산으로 독립해있지만 역사가 복잡하다. 이곳의 창건설화는 부상략기에도 들어있을만큼 유명한데 먼저 고후쿠지의 승려로 수행승이던 연진이라는 승려가 꿈에 따라 지금의 기요미즈데라 터에 다다라 폭포를 발견하고 폭포 수행을 하던 행예거사라는 수행자를 찾았다. 그 행예거사는 사실 관음보살의 화신이었고 그가 남긴 영목에 천수관음을 새기고 암자를 지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2년 후 나라 말기~헤이안시대 초기의 장수인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사슴 사냥을 하던 중 이곳에 왔다가 연진을 만나 살생의 죄를 뉘우치고 자신의 저택을 본당으로 기부하여 지금의 규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후에 그는 에조 평정에 성공하는데 그 때도 기요미즈데라 관음의 가호가 있었다고 하여 유명하다. 아직 헤이안 천도 이전임에도 교토에 세워진 절인 셈이다.

처음에는 북관음사라는 사호를 하사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청수사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헤이안시대 이후 고후쿠지의 영향 하에 있었으나 이 때문에 엔랴쿠지의 승려들에게 방화를 당하기도 했고, 오닌의 난에 소실되었던 때에는 시종 승려가 재건하기도 했다. 현재의 건물은 17세기 큰 화재로 소실된 것을 에도막부의 3대 쇼군 이에미츠가 재건한 것으로 다행히 그 이후로는 크게 화재가 없이 지금의 본사 규모를 이어오고 있다. 다만 에도막부 당시 삼직육방이라고 하여 직임이 복잡해지고 각 직임의 승려는 탑두 하나를 차지하여 9개의 탑두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불훼석으로 영역이 대폭 줄어들어 1개만 남았다. 헤이안시대 중기 이후 고후쿠지의 영향력이 줄어 진언종 사찰이 되었고, 메이지시대 초기에는 잠시 진언종 제호파에 속했으나 이후 고후쿠지로 원대복귀해 법상종 대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호류지 등등이 법상종에서 이탈할 때 같이 이탈해서 현재 북법상종이라는 독자 종파로 활동하고 있다. 말사 몇 개 없이 혼자만 있어서 먹기살기는 충분하니


너무 많이 찾는 관광지라 저평가되지만 사실 이 곳은 나라 말기 산악사찰의

가람배치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건조물만 국보 1건, 중요문화재 15건이다.


선광사당

과거 탑두사원인 지장원의 본당이었으나 지금은 혼자 남았다.


내부의 여의륜관음


가마쿠라시대라고 전한다.


문화재는 아니다

역시 여러 개의 손을 가진 육비여의륜관음


라쿠요 영장이라는 현판


안내문

여기 모시는 지장보살은 목이 360도 돌아가는 지장보살이란다.


이 안에 모셔져 있다.


입구에 있는 마굿간


무로마치시대의 건물로 말을 대던 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중요문화재


인왕문

중요문화재로 칸에이 시대 대화재를 피한 몇 안 되는 건물이다.

무로마치시대


종루


역시 무로마치시대, 중요문화재


달려있는 종은 헤이세이 시대에 건 것이다.

진품은 중요문화재로 따로 보관 중


삼층탑


에도시대 초기에 재건한 것으로 80년대 수리할 때 극채색으로 복원하였다.

중요문화재


본당 표문


공개 안하는 조주인으로 통하는 곳이다.


뒤편에서 본 경당


다시 올라와서 본 삼층탑과 경당


경당은 에도시대 재건한 건물로 경전을 보관하는 곳이자 강당이다.

내부에는 헤이안시대 중기의 일체경이 소장되어 있다.

중요문화재


박공 부분


뒤편에는 전촌당이라고 개기인 사카노우에 타무라마로를 기리는 건물이다.


개산당이라고도 불리며 에도시대 재건한 건물이다.

중요문화재


굉문

입구에 해당하는 문인데


저번에는 수리 중이었는데 끝났나보다.

에도시대 초기 중건으로 중요문화재


개산당 정면


아래 보이는 석탑


아스라이 보이는 교토


복도를 지나가면 본당이 나온다.


반대편에 보이는 자안탑


본당은 공사 중


국보

이에미츠가 지은 대표적인 무대조 건물로 앞으로 크게 뻗은 무대와

뒤편으로 엄청난 규모로 앉아 있는 내진이 특징이다.

다들 무대만 보는 바람에 본당 규모를 잘 체감을 못한다.


주자 안에는 본존 관음상의 에도시대 전립상과 이십팔부중상이 있고

본존 천수관음은 33년만에 1번만 공개한다. 다음 공개는 2033년이다.


42비 중 두 개가 머리 위로 크게 올라가 있는 것이 특징

본존은 비불로 사진도 없고 학술조사된 바도 없다.

그래서 문화재 지정도 되지 않았다.


전립상 모습


본존 양측 주자에는 지장보살과 비사문천을 모셨다고


좌우에 있는 이십팔부중


신기하게 조사도 지정도 거의 안 되어있다.



잘 찍은 내진 모습


밖에 달린 현불


이것도 거대하다

비사문천


천수관음



현재 본당이 공사 중이고, 기존까지 공사 중이던 오쿠노인과 아미타당 공사가

거의 끝났으니 공사 끝날 때까지 당분간 올 일은 없겠다.


한창 공사 중이었던 아미타당과 오쿠노인


오쿠노인

본당과 같이 천수관음과 지장보살, 비사문천 그리고 이십팔부중을 모셨다.

단지 본존이 좌상이라는 것이 다른데 2002년 처음 본존이 조사되어

2003년에 243년만의 공개를 했고,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중요문화재


아미타당 역시 중요문화재

에도시대 초기


석가당

중요문화재


진수사인 지쥬신사


역시 모두 중요문화재이다.


석가당 방향으로 간다.


에도시대 재건

공사가 얼마 전에 끝났다.


뒤편의 백체지장당


여길 지나면


아미타당이 나온다


바로 옆에는 역시 무대조인 오쿠노인


무대 안쪽 와니구치들


단청이 잘 남아있다.


오쿠노인에서 바라본 본당


한창 공사 중이라니


거대하다


교토 풍경


높이 보이는 삼층탑


교토 시내


멀리 보이는 교토타워


이제


밑으로 내려간다


오토와노타키라는 폭포라기엔 그냥 약수터


이 절의 이름 유래가 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세 줄기의 물이 각각 학문, 장수, 연애를 상징한다는데 한국에만 퍼져있는 이야기이다.


가다보면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에게 투항해 끌려오고

결국 죽음당한 에조 추장들의 추모비가 새겨져 있다.

배경은 도호쿠지방의 지도



석탑


오래된 건 아니다.

탑신의 사방불




글씨가 잘 안 보인다.



한쪽의 필총


이 곳을 나와 걷다보니 고다이지 입구 도리이가 보인다.


히가시오타니 표석을 지나면


야사카신사가 나온다.


관광객이 많으니


포장마차도 많다


서문

이래봬도 무로마치시대 건물로 중요문화재다.


섭말사


이나바의 흰 토끼 이야기

오쿠니누시와 관련된 설화를 조각해 놓았다.


무전

야사카신사는 지나가는 정도이니 따로 소개를 안 하겠다.

불법을 수호하던 우두천왕을 스사노오와 동일시하여 모시고 교토 동쪽을 지키는 신사이다.



남루문은 공사 중

사실 본전도 공사 중이라 볼 게 없다.


납경


석조 도리이

이건 중요문화재이다.

현판이 없는 것을 보니 공사 중인 듯


신란의 묘소인 오타니혼뵤


여기서 고다이지 방면으로 더 가면


중간 목적지인


고다이지 도리가 나온다.


겟신인


 과거 19세기 신센구미의 선배들이 머물던 곳


작은 이나리신사


납경을 받고 나온다.


엔토쿠인


입구만 살짝


야사카노토가 보인다.


탑두사원들


고다이지의 옛 대문


중간 목적지인 세이류지


정토종 사찰로 가마쿠라시대 호넨의 제자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아주 작은 절이다.


납경만 받으러 왔다.


납경 후 고다이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