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호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골목이 나온다.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골목 사이에 어디서 숨어있나 싶게
무린안이 살며시 나온다.
무린안(無隣庵, 무린암)
일본 메이지유신의 참가자로 조슈번의 실력자였으며, 군국주의자였고
총리대신을 2번이나 지낸 괴물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별장이다.
안내문
야마가타 아리토모.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계를 주름잡은 조슈번,
그 중에서도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와 함게 조슈 3존이라고 불렸다. 프로이센의 군국주의를
배우고 돌아와 일본의 근대를 군국주의로 재편하였다. 청일전쟁 당시에는 조선군에 파견된 사령관이었고
군인으로는 원수까지 올랐으며 정치가로써는 2번의 총리대신을 지냈다. 총리를 지내면서 교육칙어와
군인칙유를 만들어 천황제를 공고히 하고 만주와 사할린을 먹었으며 주권선과 이익선의 개념을 만들어
조선을 결국 식민지로 만들었던 인물이다. 메이지, 다이쇼의 흑막 괴물이다.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입장에서는 치안유지법을 만들고 대역사건을 만들어 수많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를 형장의 이슬로 몰고 간 진정한 괴물이다. <도련님의 시대>라는 만화를 보면
당시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역할이 잘 설명되어 있다.
오가와 지헤에가 만든 이 별장은 그의 사후 유족에 의해 교토시에 기증되었다고 한다.
입구
입장료는 410엔
애들이 일본 말차도 마셔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 500엔에 그것도 시켰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인공적으로 잘 조영된 개울과
일본식 주택이다. 무린안은 일본식과 양식 2가지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지금의 무린안은 제3무린안으로, 제1무린안은 고향인 시모노세키에 있었는데 정말 초가집에
근처에 이웃이 없었다 한다. 제2무린안은 교토 니조에 있지만 여러 사람에게 팔렸다가 지금은
요정이 되었고, 일반적으로 무린안이라고 하면 바로 이 제3무린안을 뜻한다.
일식 주택을 끼고 돌면 이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히가시야마에서부터 경치를 차경해 그것이 앞마당에 만들어 놓은 잔디 동산에까지 내려오는 듯하다.
그 아래로는 계곡을 만들어 놓았다.
다실로 가는 노지의 돌들도 범상치 않다.
언덕에 놓인 바위와 계곡의 배치도 예사롭지 않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계곡
부드럽게 굽이치는 계곡과 동산
다른 곳에서 퍼온 사진들
물이 좀 더 많고 잔디가 파란 여름철에는 이런 모습이라고 한다.
모옥(母屋)
우선 길을 따라 걸어 본다.
일본식 건물은 2채로 이루어져 있다.
1층 건물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날이 맑아서 정원과 하늘이 잘 보인다.
솟아오른 물이 잔잔한 호수를 이루고 개울에는 굵은 자갈을 깔아 놓았다.
뭐하니
뭔지 모르겠다.
계곡을 건너가면
작은 샘이 나오고
무린안의 수원이 되는 작은 폭포가 나온다.
지하수가 풍부한 교토라 가능한 광경
물이 좀 가물어서 아쉽다.
물이 많을 때는 이렇게 제법 큰 폭포 같다고 한다.
여튼 이런 조경에는 정말 일본인들이 대단하다.
폭포 쪽에서 내려다 본 무린안의 풍경
누가 교토 도심에 이렇게 넓은 정원이 숲처럼 펼쳐져 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점 때문에 내가 교토를 좋아한다.
오래되어 보이는 석등롱
사슴이 있는 것을 보니 어느 춘일신사의 것이었나 보다.
정원을 돌고 보는 다실
여기에는 와비사비의 정신을 철저히 담았다.
아무리 총리라도 소박하고 비어있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뭐 사실 저기서 얼마나 실제 다도를 행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다실에서 바라본 풍경
이제 돌아서 2층짜리 양관으로 간다.
이토 히로부미, 가츠라 타로 등 정치 거물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뒤돌아 찍는 다실 풍경
2층 모옥
여름철에는 더욱 이렇다고 한다.
양관 안으로 들어간다.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초상
무린안에 대한 설명
1층은 벽돌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술잔과 향로
필기기와 향로 등
2층으로 간다
여기가 바로 무린안 회의의 개최장소
무린안 회의는 당시 원로인 야마타가 아리토모, 정우회 총재 이토 히로부미,
총리대신 가츠라 타로,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가 참석한 회의이다.
러시아 제국이 의화단 운동 등을 빌미로 만주를 계속 넘보고 조선에 대해서도 야욕을 보이자
청일전쟁의 승자였던 일본은 1903년 4월 21일 여기서 러시아에 대한 외교 방침을 결정하게 된다.
즉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절대 우월권, 만주에 대한 협상을 통해 각각의 우월권을 정자하는 방침이자,
여기서 조선에 대해서는 단 한 걸음도 러시아에 양보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러시아와 가급적 전쟁을 피하기 위해 외교적 협상을 지속했다고 평가하나, 전후 상황을
보면 사실상 러시아에 조선을 포기하고 만주를 양분하는 것을 제시하고 수틀리면 한 판 붙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야마가타 같은 사람이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내부에는 무린안 회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 야마가타의 흑막정치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와 별개로 양관의 내부 벽에는 일본식 후스마에 풍의 벽화를 그려 놓아 약간 어색하다.
본의 아니게 키티적 느낌도 난달까
공작까지 그려 넣었네
여튼 응접실은 이만 다 보았고
옆방은 서재이다.
저런 독서대가 있다니 부럽다.
생각보다 책은 많이 안 보았던 듯하다.
한켠에는 그의 젊었을 당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이제 차를 마시러 일본관으로 간다.
모옥 1층으로 가니 무린안이라는 현판 휘호가 걸려있다.
차를 기다리며 잠시 정원을 바라본다.
이윽고 나온 말차와 다과
말차가루를 이용해서 만든 듯한 다과는 상당히 달다.
자세히 보니 다식접시에도 무린안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참 이렇게 주문제작한 도자기 문화가 발달해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다완에는 일본 황실의 국화무늬와 총리대신의 칠오동 문양이 그려져 있다.
멋은 별로 없다.
차 한잔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무린안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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