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남의 글 35

부활 - 김규항

부활 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끝이 없다. 기독교도들은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다'며 굳세게 예수의 부활을 주장한다. 반면 부활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불신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역사 속에 실재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인 일은 예수가 잡히자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어느 순간 '예수가 부활했다!' 외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를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달라진 모습 사이에 예수의 부활 사건이 있다. 문제는 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부활이 무엇인가다. 예수의 부활을 둘러싼 모든 주장과 논란은 예수의 부활이 육체의 부활, 즉 예수의 죽은 세포들이 재생한 사..

雜/남의 글 2014.01.10

왼쪽의 힘 - 김규항

왼쪽의 힘 - 김규항 오랜만에 쇼스타코비치 5번을 꺼내 듣다 현실 사회주의 생각을 했다. ‘인민이 주인인 나라’를 표방하다가 인민에 의해 무너진 사회. 그래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채만수처럼 ‘스탈린주의자’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소련이 미국보다 못한 사회였는가’라며 결기를 보이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덜한가 더한가의 상대적 차이는 있겠지만 나를 포함한 1980년대 운동권들은 대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굴절된 비굴함이 있다. 그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한껏 경도되었던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낡고 비현실적인 좌파로 보이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비굴함. ‘386’의 추레한 감상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오늘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 본연의 이상과 ..

雜/남의 글 2014.01.08

인동작변-만들어진 사건, 은폐된 기억 (박범)

인동작변-만들어진 사건, 은폐된 기억 정조의 사후 정순왕후의 수렴정치 기간 동안 정조가 추진해온 수 많은 정책들이 무산되고 다수의 정치가들이 숙청되었다. 이 때 노론 벽파는 남인들에 대한 정치 공세를 통해 그들의 정치적 재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1801년의 신유박해를 들 수 있다. 신유박해는 노론 벽파가 천주교에 경도된 기호 남인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위해 일으킨 종교적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남인은 두 부류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기호 남인과 영남 남인이다. 당시 남인은 천주교도라는 도식 아래 신유박해를 통해 남인이 대거 몰락했다고 역사적 판단을 하지만 영남 남인은 천주교에 관심이 거의 없었고, 신유박해 당시에도 처벌 받은 영남 남인은 거의 없었다. 즉 신유박해..

雜/남의 글 2013.12.09

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윤소영

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윤소영나의 분석적 방법은 인간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주어진 사회적 시대에서 출발한다.- 마르크스(1879~80)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운동의 ‘융합’의 역사에서의 ‘스탈린적 편향’=‘경제주의(기본)+주의주의(부차)’의 특수형태- 알튀세르(1972~76) 1. 알튀세르루이 알튀세르 Louis Althusser는 누구인가? 그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알튀세르적 단계’를 개시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프랑스 밖에서 이른바 ‘알튀세르주의 Althusserianism’를 창시했다고 하여 찬양과 동시에 비난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조차도 그의 사상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는 못하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좌파가 쇠퇴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기..

雜/남의 글 2013.11.13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 - 김규항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 (2005년 5월 18일 연세대 강연문. 다시 5월.. 함께 읽어주시길.)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雜/남의 글 2013.06.30

박제인가 희망인가 - 김규항

박제인가 희망인가 ‘일베’라는 곳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을 심각하게 왜곡·폄훼하고 심지어 희생자들 사진을 음식에까지 비유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일베의 행태에 분노하는 건 시민의 상식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한 분노에 머물러선 안된다. 일베에 분노하며 일베만큼만 생각해선 안된다. 역사는 악의에 의해서만 왜곡되는 게 아니라 게으른 선의에 의해서 더 많이 왜곡된다. 역사 속에서 저항적 사건은 대개 처음엔 체제에 의해 금지되거나 불온시되면서 일부 저항세력에게서만 존중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존중은 일반화하고 공식화한다. 물론 그 사회가 느리게라도 진보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일부의 존중이 일반적이고 공식적 존중으로 변화함으로써 그 사건은 명예를 회복한다. 그..

雜/남의 글 2013.06.30

왼쪽의 힘 - 김규항

왼쪽의 힘 오랜 만에 쇼스타코비치 5번을 꺼내 듣다 현실 사회주의 생각을 했다. ‘인민의 주인인 나라’를 표방하다가 인민에 의해 무너진 사회. 그래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채만수처럼 ‘스탈린주의자’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소련이 미국보다 못한 사회였는가’라며 결기를 보이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한때 현실 사회주의의 전도사였고 여전히 만날 맑스주의를 말하면서도 현실적 결론은 ‘안철수처럼 어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인 이아무개까진 아니더라도 나같은 80년대 운동권들은 대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굴절된 비굴함이 있다. 그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한껏 경도되었던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낡고 비현실적인 좌파로 보이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비굴함. 386의..

雜/남의 글 2013.06.30

참된 활동가를 기다리며 - 서준식

P교수님.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한 후배를 만났습니다. 91년 어지럽던 명동성당 에서 머리띠를 맨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6년 만의 만남이었던 셈 입니다. 근황을 묻는 나에게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기어드는 목소리로 사법시험 준비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괜한 질문을 했다 싶어 화제를 돌리려는 데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선배님, 이제 활동가 생활에는 전망이 없잖습니까?” 활동가가 ‘기능’ 속에 갇힐 때… 9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서 활동가(사회운동가)의 설 땅은 갑자기 좁아졌 습니다. 이것은 물론 세계적 규모로 진행된 진보운동의 퇴조와 관계가 있겠지요. 즉 우리나라에서도 운동의 화두가 ‘변혁’에서 ‘개혁’으로 바뀌면서 사회운동은 (우리 사회의 구조 자체가 아닌) 개별 사안들을 ..

雜/남의 글 2013.05.08

혁명은 안단테로 - 김규항

혁명은 안단테로 사회주의는 이론이나 사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 한쪽엔 호화, 사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궁핍이, 또 한쪽엔 견딜 수 없는 노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거만한 게으름이 있는, 이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에서 사회주의는 태어난다."(레옹 블룸) 연민은 자선을 낳고 분노는 싸움을 낳으며 다시 그 둘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자선도 싸움도 별 소용이 없다는 깨우침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는 정서가 생략된 과학의 문제이기도 했다. 연민이나..

雜/남의 글 2013.03.29

둘러보자 - 김규항

둘러보자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퇴임연설은 아마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파렴치함의 가장 특별한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너무나 파렴치해서 차라리 경외감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그러나.. 저 파렴치한 인간을 욕하고 조롱하는 게 다라면 결국 우린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저 파렴치한 인간을 욕하고 조롱하면서 동시에 저 파렴치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게 누구인가에 대해, 저 파렴치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가 무엇이었던가에 대해 되새겨 봐야하지 않을까. 이명박은 화성이나 명왕성 출신의 지구침략자가 아니라 민주 시민들이 무려 5백만 표차로 뽑은 대통령이니. 난 이명박을 찍지 않았으니 당당하다, 할 사람이 있다면 이명박 대신 민주당에 대해 그렇게 해볼 수 있다.오늘 ‘동네북’이라..

雜/남의 글 2013.03.29

깨어있는 인민들 - 김규항

깨어있는 인민들 ‘차베스식 사회주의는 석유 덕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덕에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석유가 없으니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반공주의자나 우파보다는 좌파,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차베스식 사회주의가 석유 덕이라면 차베스 전에는 석유가 없어서 사회주의를 못했다는 말인가? 차베스 전이나 차베스 이후나 베네수엘라엔 석유가 있었고 석유로 인한 부가 있었다. 다른 건 차베스 전엔 그 부가 모조리 소수의 지배계급 차지였지만 차베스 이후엔 인민들에게 분배하고 또 인민들의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쓰는 것이다. 차베스식 사회주의는 석유가 없을 때도 지속되었다. 2003년 ‘석유 테러’, 즉 베네주엘라 기득권 세력과 미국이 혁명을 거꾸러트리기..

雜/남의 글 2013.03.28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 알튀세르

.....(전략).....이 새로운 전체 속에서 작용하는 변증법이 전혀 헤겔적이지 않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모순과 연관하여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만일 여러분이 맑스의 전체의 본성과 그 불균등성을 진하게 고려한다면 여러분은 이 불균등성이 필연적으로 과잉결정이나 과소결정이라는 형태 속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잉결정이나 과소결정은, 어딘가 합법적인 존재를 끌어들이는 선행하는 모순에서 덧붙여진 것이거나 정해진 결정량의 가감이라는 용어법으로 사고해서는 안 된다. 과잉결정이나 과소결정은 순수한 모순에 대한 예외들이 아니다. 인간은 홀로 고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사회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맑스가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단순한 경제적 범..

雜/남의 글 2013.03.14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 - 최원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 최 원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각의 진영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제안들이 난무하고 있다. 여기서 사회당과 사회주의정치연합(가칭)으로부터 나온 제안이 논쟁이 묶여 있는 하나의 매듭을 형성하는 것 같다. '사회주의인가 사회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은 사회당 측이 주장하듯이 오랜 동안 소위 좌파 진영을 규정해 왔으며(정성훈, "경선 비판과 사회주의대통령 후보 추대"를 참조하라) 좌파진영의 연대 그 자체를 좌초시켜온 장본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이 좌파진영을 분열과 반목 속으로 몰아넣은 과거의 똑같은 질문을 현시점에서 다시 제기하면서 "통일"좌파를 외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것이다. 논쟁은 여기 묶여 있으며 그것에 연루된 사람들, 조직들은 그 매듭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한..

雜/남의 글 2013.03.14

알튀세르의 '최종심급' 개념

알튀세르의 '최종심급' 개념 - 최종심급- 지배 내 구조 처음부터 문제는 "모순들의 복잡성"이다. 모순들의 복잡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전체 구조 안에 특정한 방식으로 연루된 각각의 모순의 종별적인 실존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록 모순들의 복잡성의 외양(즉, "과잉결정의 외양")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모순들의 복수성과 복잡성을 하나의 본질적인 모순으로 계속 환원하는 헤겔적인 변증법에 알튀세르가 의존한다는 것은 따라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이로부터 변증법의 대상("헤겔에겐 관념의 세계, 그리고 맑스에겐 실재 세계"(Althusser 1993: 91-93))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변증법 그 자체와 그것의 구조에 있어서 맑스를 헤겔로부터 정교하게 분리할 필요가 생겨난다. 러시아의 정세 속에서 전개된 모순에..

雜/남의 글 2013.03.14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 - 이종영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 이종영ꋯ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 사회학 1. 고대 아테네에서 ‘데모크라시’는 ‘데모스’의 지배 또는 통치를 뜻했다. ‘데모스’가 ‘민중’으로 번역될 수 있는 한에서 ‘데모크라시’는 ‘민중의 지배’를 뜻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테네에서의 ‘데모스’의 범주는 오늘날의 민중과는 큰 차이를 갖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아테네의 ‘민중’은 오늘날의 ‘민중’과 범위를 달리 하는 것이었다. 아테네의 ‘데모스’에는 여성, 노예, 외국인 체류자 등이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 인구의 4분의 3 이상은 ‘데모스’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고대 아테네에서의 데모크라시를 데모스의 지배라고 한다면, 그것은 엄밀히 말해 노예소유자계급 남성들의 지배를 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 아테네의 데모크..

雜/남의 글 201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