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근현대 6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무엇이 잘못되었나?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무엇이 잘못되었나? 최근 군함도(하시마)를 비롯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관심이 뜨겁다. 무한도전을 비롯한 인기프로그램에서 일제의 강제 징용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체 이들 유적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식민통치기 일본의 한반도 침략 역사가 다시 한 번 조명되는 것이다. 사실 강제 징병·징용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 총동원 시기 일제의 수탈에 대한 관심은 종종 있었던 것이다. 군함도로 대표되는 이번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는 때때로 국민적 분노를 동원하는 “일제 수탈의 역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식민지시기 일제의 수탈에 대한 기억과 한일협정으로 끝나지..

史/근현대 2015.10.07

리영희의 중국담론

리영희의 중국담론 고려대학교 조선후기사 박사2 박세연 들어가며1. 리영희의 생애와 저서2. 사상과 이념3. 중국을 바라보는 눈 1) 왜 중국인가? 2) 리영희 중국담론이 가지는 의의맺음말 들어가며 70~80년대 남한사회에 있어서 리영희가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특이하다. 반공과 냉전이데올로기가 남한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을때 그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며 냉전이라는 우상을 부수려 하였다. 또한 단지 中共으로 불리며 한국전쟁 휴전의 원인으로 폄하되던 중국의 8억인과 대화하려한 거의 최초의 남한 지식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왕성한 실천 때문에 그는 ‘사상의 은사’ 혹은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리며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다.1)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취한 대북정책의 성과인 6.15 ..

史/근현대 2014.12.19

5.18 광주민주화항쟁 진압군 어느 병사의 20년만의 고백

이경남 1980년은 우리 사회가 격동을 경험한 시대였을 뿐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고통의 시기였다. 당시 나는 신학대학 졸업을 앞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지만, 성서의 요나처럼 내 짐을 감당하기 어려워 군대로 도피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런 나를 하나님은 마치 요나를 바닷물에 던지듯이 특전사라는 곳에 가게 하시고, 끝내는 5월의 광주 그 참옥한 현장에 던져지게 하셨다. 그 후 근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끔찍한 현장의 기억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입은 육체의 부상과 마음의 상처로 말미암아 될 수 있으면 그로부터 멀리 떠나 살려 했던 것이다.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 신앙 생활과 농촌 교회의 목회 여건이 나 자신의 위치를 떠나 심각한 역..

史/근현대 2013.03.08

강화의 성공회 전래와 강화 성공회 성당

강화의 성공회 전래와 강화 성공회 성당 대학원 석사과정 박세연 들어가며 강화도에는 전통 한옥건축과 서양식 교회건축이 혼합된 독특한 모습의 성공회 성당이 2곳 있다. 강화 읍내인 관청리에 위치한 강화 성공회성당과 길상면의 면소재지인 온수리에 위치한 온수리 성공회 성당이 그 곳이다. 두 성당 모두 대한제국 시기에 지어졌는데, 강화 성공회 성당은 그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424호로 지정되었으며 온수리 성당 역시 인천유형문화재 52호, 사제관은 인천유형문화재 41호로 지정되어있다. 강화도의 성공회 성당들은 지성소와 회중석, 회랑이라는 서양식 교회건축에 필수적인 요소를 갖추면서도 韓式 목조건축과 기와지붕의 전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게다가 유교 건축과 ..

史/근현대 2012.10.24

일제시대 경복궁에 모인 유물들

지금은 경복궁 복원사업이 한창입니다만 예전에는 경복궁이 절반 이상이 잔디밭이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앞에는 육중한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었고, 뒤편에는 민속박물관 근처에는 전통공예전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육중하고 권위적인 건물이 또 하나 있었죠. 그리고 넓은 경복궁 잔디밭에는 탑과 석등, 부도 등등의 석조 문화재들이 널려있었습니다. 지금은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하나만 빼고 모두 용산의 박물관이나 본래 있던 지역의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지금도 경복궁이라고 하시면 잔디밭에 널려있던 석조물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경복궁이 일제시대에 훼손되었고, 잔디밭의 석물들이 일제에 의해 옮겨왔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사연을 아시는 분은 별로 없을 것 같..

史/근현대 2012.07.28

어느 민족종교의 불행한 최후

조계사 대웅전 (서울유형문화재 127호) 사진출처 : 다음 백과사전 한국 불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계종의 총본산은 어디일까요? 많은 분들이 혹 삼보사찰인 통도사나 송광사, 해인사를 떠올리실 수 있겠지만 조계종의 총본산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조계사입니다. 조계사는 그 역사가 오래된 절은 아닙니다. 본래 한양 사대문안에는 승려의 출입이 금지되고, 사찰 건립 또한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종로의 원각사나 정동의 흥천사 같이 특수한 목적을 지닌 몇 개 사찰은 예외가 있었지요. (믿기지 않지만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그 쪽에 숲이 우거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종대왕 때 흥천사가 사라지고, 연산군 때 원각사마저 사라지면서 사대문 안에 사찰은 그 흔적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승려의 도성 출입이 허용되는 ..

史/근현대 2012.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