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25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10 (후삼궁後三宮·어화원御花园·신무문神武門)

이제 건청문을 통과한다 건청문 부터는 청나라 멸망 이후에는 한동안 청나라 소조정 소속이었기 때문에 현판이 한문과 만문이 병기되어 있다 건청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후조의 모습 후조의 정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청궁이 나온다, 건청궁(乾清宫)은 명나라 때 처음 지어져 이름이 바뀌지 않은 몇 안되는 건물이다. 영락제부터 숭정제까지 명 14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었고 이자성의 난 당시 불탔다가 재건되며 순치제와 강희제도 사용하였으나, 옹정제부터는 양심전이 황제의 거소가 되고 이곳은 일종의 편전으로 운영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가경제 때 불탄 것을 재건한 것이다 어로석 내부의 옥좌 정대광명이라는 편액은 순치제의 글씨로 강희제 때 황태자를 정했다가 난리가 나서 태자 제도가 사라진 후 옹정제 이후 황제는 저 편액 뒤에 후계..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9 (영수궁寧壽宫 진보관珍宝馆)

진보관인 영수궁 입구 여기 쯤 되면 지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따로 10위안을 내고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구룡벽 구령벽은 일종의 영벽인데 그중 가장 격이 놓은 것이다 이곳 영수궁 구룡벽도 유명한데, 북해공원의 구룡벽, 대동 구룡벽, 평요 구룡벽이 더 손꼽힌다 영수궁의 정문인 황극문을 지나면 제2문인 영수문이 나온다 진보관으로 사용되는 영수궁 지도 영수궁의 정전인 황극전 영수궁(寧壽宫)은 건륭제가 물러나 태상황이 된 후 살기 위해 지은 궁이다. 본래 후궁들이 살던 곳을 밀어버리고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명청 황실의 가장 진귀한 보물을 전시하는 진보관으로 사용된다 옥으로 만든 십이지상 전황석으로 만든 인장 하나의 돌을 조각해 사슬을 만들었다 마노 필가 홍옥 향로 비취 장신구류 산호 사자 금제상감함 옥..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8 (봉선전奉先殿 종표관钟表馆)

이제 자금성 동쪽으로 간다내우문을 통과 후궁 권역은 이렇게 골목까지 담으로 둘러쌓여 있어 답답하다 또 나오는 문 근광우문 함화우문을 거친다 닫혀있는 영수문 동육궁 중 하나인 영수궁의 정문현재 비공개 골목을 따라 걷는 중 셀카 흠 보화전 뒤편이 나온다 월대의 모습 후조의 정문인 건청문 자금석 최고 크기인 어로석 엄청나게 길다장관 이 거대한 한백옥을 옮기느라 운하가 얼었을 때 얼음 위로 옮겼다고 건청문 여기는 좀 후에 가기로 하고 후좌문 옆으로 빠지면 진보관 입구가 나오고 일종의 광장이 나온다 종표관 입구이게 일반 입구이고 봉선전의 정식 입구는 여기다 역대 황제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황실의 가묘이기 때문에 입구도 화려하다 봉선전 명나라 때 처음 세워졌으며 청나라 때는 계속해서 역대 황제와 황후의 위패를 모신..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7 (수강궁壽康宫)

수강궁의 입구인 수강문작지만 황유 벽돌로 장식해 격을 높였다 수강궁 정전수강궁은 청 옹정제 때 처음 세워진 곳으로 황태후와 태비 들을 위한 건물이다. 황제의 모후들이 입주했으며 주로 건륭제 이후의 태후들이 이곳에서 살았다. 의화단 사건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가 2015년 수리를 마치고 공개되었다. 다만 화원 등은 아직도 복구 중이라고 수강문의 영벽 정전으로 간다 안에는 태후들의 생활상을 복원 전시 중이다 정면 어답로손상이 심하다 내부의 모습 천정 측면의 생활 공간태후의 의자 태후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전시가 진행 중 건륭제로 생모로 이곳에 살았던 효성헌황후(성모황태후)의 초상 건륭제가 어머니에게 바친 글 효성헌황후의 태후 책봉 옥책 황태후의 옥보 시호를 올린 옥책 그녀의 조주 건륭제가 효성황후에게 바친..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6 (자녕궁慈寧宮 조소관雕塑馆2)

다음 전시관불교조각 외 다른 것들을 주로 다룬다 북위 부장용 도용 웃고 있다 징을 치는 중 녹유 수레 삼채 도용당 서역인 모양의 도용 삼채 진묘수 크다 낙타와 서역인 높은 가채를 한 여인모두 당 다음은 화상석 전시관산동성 등에서 한나라 때 유행한 무덤의 장식이다 말이 그려진 화상석 반대편 주로 춘추전국시대 고사가 많다 천정의 모서리 말들 사람 공자와 노자의 이야기 주공과 성왕의 이야기 서왕모 묘실의 입구 또 다른 묘실 주작이 그려진 묘실 입구 마차와 함께 글씨도 있다 신수가 그려진 화상석 입구가 남쪽이라 주작이 많다 문의 소맷돌 청룡 주작 현무 백호 벽돌로 만든 화상전 효자들의 이야기 이런게 많다 또 다른 화상전미인도? 청룡 백호 자녕궁의 후전건륭제 때 대불당으로 고쳤다 자녕궁 뒷면 후전 앞의 돌기둥 대..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5 (자녕궁慈寧宮 조소관雕塑馆1)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던 자녕궁이 조소관으로 정비되면서 공개되었다 자녕궁(慈寧宮)은 황태후나 태황태후의 거처로 가정제가 처음 전설하였다. 명나라 때도 황태후나 황귀비들이 살았다가 청나라에 들어서 순치제의 모후이자 강희제의 할머니인 소성황태후(효장문황후)가 오랫동안 살았다. 소성태후가 강희제를 엎어 키웠기 때문에 그녀가 죽은 후 다른 태후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했고 강희제가 소성태후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나 태후를 위한 전례를 행하는 용도 등으로 사용하다가 건륭제가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태후들을 위한 불당으로 바꾸었다.태후들의 공간은 수강궁으로 바뀌었으나 태후궁 중 가장 권위있는 곳인 만큼 건축이 가장 복잡하다. 정문은 자녕문 여기는 처음 문 앞에 두 마리의 기린이 있다 자녕문 현판 만, 몽, 한의 3개 언어로..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4 (외조삼대전外朝三大殿·군기처軍機處)

태화문 정전의 태화전의 정문이다2층 높이에 정면 9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왠만한 건물보다 큰 규모이다명나라 때 황극문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청나라 때 태화문으로 교체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광서제 때 다시 지어진 것으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이다. 셀카 중독자 이행묵 같이 찍잔다 거대한 청동 사자 태화전의 답도중국에서는 어답로라고 한다 지붕의 모습 거대하다 현판 계단 사이사이에는 정이 있다 태화문 내부 화려한 채색이 되어 있다명, 청대에는 황제가 이곳에서 조배를 받았다. 아마 즉위도 문에서 했을 것이다. 보좌가 있는 정전은 예의상 피하는 것이 규범이었다 태화문에서 바라 본 외조의 전경 태화전을 중심으로 융종문과 경전문이 보인다 홍의각 체인각 과거 태화전의 외조에는 청동으로 만든 품계석이 있었다고 하지만..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3 (무영전武英殿 서화관书画馆)

이제 문화전을 나와 무영전으로 간다 협화문 자금성 중앙으로 통하는 문의다 넓게 펼쳐진 태화문 앞마당어머어마하다 내금수하 건너편으로 보이는 태화문 희화문으로 간다 이 문 뒤로 무영전이 있다 희화문 현판 현재 건물은 건륭제 때의 건물 희화문을 지나면 무영문이 나온다 무영문은 명나라 때 건물이다 무영문의 답도한백옥이다 들어간다 무영문 답도 무영전(武英殿) 무영전은 명나라 때 세워진 건물로 황제의 재궁으로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화전이 황후의 재궁, 무영전이 황제의 재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자성의 난으로 자금성이 불탈때 도 무영전은 살아남았고 입성한 강희제는 자금성이 복구될 때 까지 무영전을 거처로 삼았다. 이후 옹정제는 무영전수서처를 설치해 이곳에서 각종 서책을 정비해 교감하고 인쇄하도록 하였고 이..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2 (문화전文華殿·문연각文渊阁 도자관陶瓷馆)

자금성 성벽에서 내려왔다 내부의 금수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내금수하 난간에 유리기와를 얹었다 멀리 보이는 문화문 문화전 일대의 정문자금성 삼대전 동서에 각각 문화전과 무영전을 두었다각각 중요한 편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삼전삼각에 내각대학사를 두고 내각 대학사가 비답의 초안을 잡았다. 말하자면 승정원 역할이 강화된 것인데 명말 부터는 내각대학사들이 정권을 잡았다 문화문 어로석 문화문 현판 문화전 모습자금성의 대부분 전각들이 그렇듯이 전전과 후전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중간은 복도로 이어진 工자 건물이다. 문화전은 전전 후전은 주경전이라고 한다. 좌우로 본인전과 집의전이 있다 명 영락제 때 지은 건물이었으나 이자성의 난 때 크게 파손당한 것을 강희제가 중건한 것이 지금의 건물이다. 본래 명나라 때는 태자가 섭무할..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1 (오문午门·동남각루東南角楼·동화문东华门 고건축관古建筑馆)

이제 오문으로 들어간다오문. 정남을 의미하는 문다섯개의 누각이 있어 오봉루라고 불리며 영락제 때 지어진 것이 이자성의 난으로 불타 순치제 때 재건되었으며 가경제 때 최종 이 모습으로 정착되었다여담으로 자금성에서 오문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건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최초로 박물관으로 활용된 건물이었다. 중국 최초의 박물관은 신해혁명 초기부터 만들어진 고물진열소(古物陈列所)인데 이곳은 북양정부와 떨어진 체 다소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박물관에 대한 최초의 고안은 광서제였다고 하나 결국 나라가 망하고 생겼다. 그런데 19250년대에 고궁박물원이 1926년에는 국립역사박물관(현 중국국가박물관)이 차례로 자금성에 개관하면서 자금성 내에는 3개의 박물관이 자리잡았다. 고물진연소는 이후 계속 쇠퇴하고 고궁박물원이 우세하면..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어화원, 신무문)

자금성에 감금된 지 5시간째이제 다들 나가고 싶어한다. 곤녕궁(坤寧宮) 뒤편 후삼궁의 출구인 곤녕문(坤寧門)이 보인다.여기를 지나면 후원인 어화원(御花園)이 시작된다. 온갖 기암괴석과 기화요초를 모아 둔 어화원 나무 한 그루도 범상치 않다. 어화원은 자금성의 정식 화원이다. 전체 차지하는 부분은 자금성 총면적의 1.5%에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금성 내에서 보기 드문 나무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자금성에서 유일한 녹지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어화원 외에도 건복궁, 자녕궁, 영수궁에 각각 화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기준에서 볼 수 있는 후원은 어화원과 따로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영수궁의 건륭화원 뿐이기 때문에 일반 입장한 관람객이 볼 수 있는 후원은 어화원이 유일하다..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후삼궁: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후삼궁 구역에 들어가기 위해 건청문 앞으로 가는 길보화전 뒤편이 보인다. 보화전 뒤편에는 자금성에서 가장 크고 긴 것으로 알려진 답도(단지)인 운룡대석조가 있다.중국 측 안내서에는 운룡석계(雲龍石階)라고 써 있었다.길이는 16.5미터, 폭은 3미터, 두께는 1.7미터에 달하는 이 운룡대석조는무게가 200톤으로 원석의 무게는 300톤이었다고 한다.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이 운룡대석조는 북경 서남부의 팡산(房山)이라는 곳에서 채굴되었는데명사에 따르면 병조에서 병사 6천 명을 동원해 채굴했으며 겨울철에 2만 명을 동원하여얼음을 얼린 빙판길을 이용해 옮겨왔다고 한다. 오악과 운룡을 조각한 이 운룡대석조는 명대 석조미술의 대표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러 군데서 극찬을 하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 엄청 감동적인 조각은 ..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동육궁)

이제 종표관(봉선전)을 나와 동육궁으로 간다. 영수궁 옆에 있는 동육궁은 서육궁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비빈의 처소로 활용되던 곳이다.서육궁에 비해서 중요도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곳이고무엇보다 진보관을 보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보기 어렵게 된다.지금은 대부분 청동기관, 도자관, 불상조소관 같은 전시관들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유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보면 좋지만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가장 유명한 연희궁(延禧宮) 정도만 보기로 했다. 함화좌문을 지나면 동육궁이 모여있는 골목이 보인다. 연희궁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경인궁에 잠깐 들리기로 한다.정문인 경인문(景仁門)을 지나면 이렇게 옥으로 된 영벽이 나오고 경인궁(景仁宮) 본전이 나온다.경인궁은 영락제 때 장안궁이었다가 가정제 때 지금의 이름을..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종표관2)

봉선전(종표관) 정전 뒤편에 있는 서양식 시계서양 시계를 본따 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시계 뒤편 벽을 보면 유리벽이 보인다.봉선전 뒷면 벽이 뜯겼던 흔적이다. 침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간 가운데 부분에 전시된 연꽃모양 시계왼쪽에 정전의 뜯겼던 부분에 설치된 유리 벽이, 오른편에 침전의 벽이 보인다. 역시 서양 시계를 모방해 자체적으로 청에서 만든 시계연꽃 화분모양으로 만들었다. 커다란 스위스 시계잘 보면 아래 붓을 들고 있는 인형이 있다.정각이 되면 이 인형이 시간을 종이에 써서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시계는 스위스에서도 귀한 것이다.전세계적으로 몇 개 안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기하다. 청나라에서 만든 시계누각모양의 시계에 시간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을 설치했다.유럽에서 유행했던..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종표관1: 봉선전)

이제 종표관으로 들어간다.여기도 별도로 10위안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면 봉선문(奉先門)이 나온다. 역시 벽에 뚫은 문이다. 문을 들어가면 봉선전(奉先殿)이 보인다. 봉선전은 원래 명나라 때 지어서 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개수된 건물로工자 모양 건물이며 앞의 정전과 뒤의 침전으로 이루어져 있다.봉선전은 원래 역대 황제와 그 조상들을 모시는 건물로 내태묘(內太廟)라고도 불렸던 건물이다.즉 태묘가 국가의 공식적인 사당으로 국가를 보호하는 사당의 역할을 했다면봉선전은 황실 가족의 개인적 사당으로 기능했던 것이다.조선의 경우에도 종묘와 별도로 창덕궁 안에 선원전을 두어서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봉선전은 정전 9칸, 후전 9칸의 거대한 건물로 굉장히 격이 높은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