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수원나들이 5

겨울 수원나들이 - 수원 화성 (장안문 ~ 창룡문)

장안문의 위용복원되었지만 당당함은 여전하다. 옹성의 모습 문루로 들어간다. 장안문과 북동적당의 성벽은 도로때문에 이렇게 육교처럼 연결해 놨다. 서울성곽도 비슷하게 복원될 듯하다. 장안문 옹성을 나선다. 창룡문 문루 내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잠깐 휴식을 취한다. 북동적대북서적대와 함께 장안문을 지키는 구조물이다. 안에는 대포가 있다. 장안문 저 앞으로 화성이 펼쳐져 있다. 멀리 방화수류정이 보인다. 화홍문 인근 화홍문 위 아래로는 수원천이 지나간다. 화홍문은 수원화성의 수문이다.아래로는 다섯칸의 수문이 있어 수원천이 흘러가고 수문에는 쇠창살을 둘러 놓았다.문루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일제시대 대대적인 수리가 있었기 때문에 원형이 다소 훼손되어 안타깝게 보물지정에서는 탈락하였다. 화홍문 내부 화홍문 전..

韓/수원나들이 2013.01.30

겨울 수원나들이 - 수원 화성 (화서문 ~ 장안문)

이제 700미터쯤 걸어 화성 성격으로 올라간다.팔달문이 공사중이라 화서문에서 창룡문을 걷기로 한다. 성벽위로 올라간다. 군데군데 위치를 표시하는 비석들이 있다.숙직할 때 담당구역을 나누는 것이다. 북포루성곽에서 돌출되어 포를 소는 곳인데 병사를 보고하기 위해 누각을 세웠다. 멀리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이 보인다.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은 3층으로 구성되어 많은 인원이 안전하게 성을 공격하는 군사를 공격할 수 있도록 세운 건물이다. 구조의 독특함 때문에 성곽 건축으로는 문을 제외하고 최초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조가 야심만만하게 자랑한 수원 화성만의 구조물이다. 화서문화성의 서문이다. 팔달문과 함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문이다. 다시 장안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멀리 서북각루가 보인다. 화서문에서 바라본 북포루..

韓/수원나들이 2013.01.30

겨울 수원나들이 - 화령전

화성의 오른쪽 구역을 통해서 화령전으로 간다.노래당이 보인다. 노래당은 낙남헌과 함께 유일하게 남은 화성행궁의 건물이다.낙남헌과 득중정 사이에 있는데, 득중정에서 활 쏘다가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앞에는 우물이 있다. 낙남헌 뒤편 낙남헌 앞 넓은 활터 낙남헌꽤 격이 높은 건물이다. 이 앞마당에서 활을 쏘기도 하고 군사 훈련을 보기도 하고 과거를 치루기로 했다고 한다.노래당과 함께 원형을 보존한 건물 중 하나이다. 화령전이 보인다. 초등학교가 옆에 있다 돈을 내고 들어가게 하느라 정문으로 못들어가고 화성행궁을 통해서 쪽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매표소를 하나 더 만들던지... 이건 아닌 것 같다. 화령전에서 본 낙남헌 제관들이 머무는 곳 이 낡은 문을 지나면 화령전의 정각인 운한각이 나온다. 제사에 쓰..

韓/수원나들이 2013.01.30

겨울 수원나들이 - 화성행궁2

봉수당 앞에서 바라본 중양문 화 장락당으로 간다 경룡관 아래를 지나간다. 내전은 확실히 복잡하다.생각보다는 훨씬 큰 규모이다. 장락당화성행궁의 내전이다. 혜경궁의 침전으로 지어졌고, 건물의 이름 역시 정조가 혜경궁의 장수를 빌며 지었다고 한다. 장락당 뒤켠에는 혜경궁의 회갑 잔치상을 재현해놓았다.멀리 산위로 후원 정자인 마로한정이 보인다. 장락당 뒤편의 상궁 나인 처소들 장락당 내부 혜경궁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장락당의 내부. 협칸의 모습이다. 장락당에서 바로본 경룡관 혜경궁의 회갑연 잔칫상 처마에 눈이 수북히 쌓여있다. 복내당으로 이동 중 복내당 가는 길의 협문 복내당은 왕의 처소이다. 본래는 수원이 화성유수부로 승격되고 화성 안으로 읍치를 옮기면서 유수부 내아로 지었던 건물이다. 복내당 내부 복내당..

韓/수원나들이 2013.01.30

겨울 수원나들이 - 화성행궁1

2013년 1월 어느 화요일 낮화성으로 떠난다. 잠실역에서 1007번 버스를 타면 바로 화성행궁 앞까지 갈 수 있다. 동행한 잘생겼던(현재는 그닦) 심상엽과 나와 찍사 채홍병 1시간이 좀 넘는 시간이 걸려서 화성행궁 앞에서 하차 눈 앞에 눈 내리 화성행궁과 팔달산이 보인다.팔달산 위에 있는 것은 서장대 화성행궁 정문정조가 화성천도를 계획하고 화성을 지었을 때 함께 지은 건물이다.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참배하러 올 때 사용하던 것인데 그 후에도 역대 왕들이 융건릉을 참배할 때 머물렀었다. 하지만 역시 절정은 정조가 혜경궁의 육순을 기념하여 한 화성행행이 아니었을까 한다.전성기에는 총 576칸이었다고 하니 대단히 큰 규모이다.상당한 규모의 건물이었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낙남..

韓/수원나들이 2013.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