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 묵상 3

同黎 2012. 8. 14. 02:05

21 그리고 그들은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즉시 그분은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서] 가르치셨다. 22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매우 놀랐다. 그분은 율사들과는 달리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그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회당은 원래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 바깥의 유대인 공동체)를 위해 만들어진, 예배당이자 마을회관 같은 곳인데 예수 당시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많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회당에 모여 율사들에게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했다. 율사는 율법을 전업으로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랍비'라는 경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바리사이인들이었다.
사람들은 예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란다. 여기에서 '권위 있다'는 말은 민주적이지 않은 어떤 억압적인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한 분명한 존중이나 신뢰를 말한다. 그럴 만도 했다. 하느님이 달랐던 것이다. 율사들은 하느님을 율법에 담아 가르쳤다. 율법은 '토라'라고도 하는데 구약성서에서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 맨 앞 다섯 권의 책,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를 일컫는다. 율법에 의하면 하느님은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존재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켜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을 매우 꼼꼼하게 명령했는데, 그 명령을 잘 따르면 기뻐하고 상을 주었지만 어기면 크게 화를 내며 벌을 주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사람들이나 사회에 대해선 매우 차갑고 잔혹했다. 온 인류의 보편적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젖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타적인 민족 신으로서 하느님이었던 셈이다.
예수는 그런 하느님상을 뒤집는다. 앞으로 거듭 언급하겠지만, 예수에게 하느님은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다정한 엄마와 같은 존재다. 예수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명령하고 누르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하며 우리와 대화하려 하는 분'이라고 가르친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은 행여 진노할까 두려워 엎드려 눈치를 살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주보며 대화하고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하느님은 비로소 율법의 굴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인민들과 만났다. 하느님이 그런 분이셨다니! 인민들은 경탄하며 예수의 가르침에 기꺼이 '권위'를 부여한다.

권위는 어디서 생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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