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3

수선화에게 -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文/詩 2013.06.17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文/詩 2013.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