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대산인의 본명은 주답으로,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기에 산 사람입니다. 그는 명태조의 후손으로 강남지방의 남창에서 왕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가 멸망하고 그의 고향 남창 역시 함락되어 그 와중에 부인과 자식의 생사가 묘연해집니다. 그는 결국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하게 되는데, 수행을 열심히 해 제법 고승의 반열에 오르게 되지만, 결국 나라와 가족을 잃은 번뇌를 이기지 못하고 미치게 됩니다. 그 후에 그는 벙어리 흉내를 내거나 알몸으로 거리를 다니는 듯 무수한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그림으로 안정을 취하게 되고, 이후 강남지방에서 그림으로 이름을 떨쳐 명사들과 사귀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그림은 파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을 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당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서단과 화단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사실상 현대 서예와 문인화는 모두 팔대산인의 영향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예쁘기만 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팔대산인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팔대산인의 서명입니다. 이 것은 사실 곡지-哭之(울다), 혹은 소지-笑之(웃다)로 읽히기도 하는데, 평생 울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었던 팔대산인의 심경을 잘 나타내는 서명으로 유명합니다.
석창포
자는 새
화병의 난 꽃
서과 (늙은 호박)
예운림의 산수도를 모방하다.
연꽃과 새
쏘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