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그림방

프리다 칼로

同黎 2013. 3. 8. 00:36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






삶이 무기력해지고
더 이상 새롭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던
무채색의 어느날...

불꽃 같은 일생을 살다간 멕시코 여인
프리다 칼로를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으며
권태로운 내 삶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러넣었다.





[Self-Portrait with Monkey, 1938]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인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의 아버지는 일생을 평화롭게 살라는 의미로
평화를 뜻하는 프리다(독일어)로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그녀의 삶은 일생을 통해 잠시도 평화롭지 못했다.

프리다 칼로는 6살 때 척수성 소아마비로
가늘어진 오른쪽 다리 때문에 심각한 열등감에 휩싸이고
18세 때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대형사고로
버스의 레일이 그녀의 배를 관통하여 척추를 뚫고 들어오는
큰 상처를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평생 아이들 가질 수 없는 불구자의 몸이 되었다.

평생 32번의 수술을 해야했고
특수제작된 코르셋과 몸을 지탱해주는
기구를 착용해야만 했다.

사고 후 그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침대 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그림은 그녀의 인생이었고,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Portrait of Diego Rivera, 1937]


프리다 칼로를 말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인 디에고...
멕시코 역사를 그린 벽화 총 116점을 남긴 신화적인 존재...

디에고는 멕시코 고유의 색감과 영감을 벽화로 제작하여
민중적이면서도 인디오적인 원시성을 과감하게 그려낸 화가이다.

멕시코의 전통과 대통령 궁에 그린 벽화는
멕시코의 현재와 과거를 모두 담고 있다.

아즈텍 고대 문명에서부터 인디언들의 모습
빵과 자유와 땅을 외치는 혁명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멕시코의 400년 역사가 그대로 그려져 있다.

벽화는 문맹율이 높았던 멕시코 국민들이 가장 쉽게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교육수단이 되었다.
멕시코 학생들은 디에고 리베라 벽화를 통해
멕시코의 역사를 배우고 느끼며
멕시코의 과거와 현재를 배운다.

1928년에 그린 벽화 단결 작품은
혁명과 미래에 대한 디에고의 꿈을 나타내고 있다.

태양신 아래 노동자와 농민이 악수를 하는 세상은
디에고의 이상이었다.

멕시코의 고대부터 근대까지 멕시코 민중들의 역사가
그의 벽화 속에서 깨어나 꿈틀대고 있다.





[Self-Portrait as a Tehuana (Diego on My Mind)]


내 마음 속의 디에고...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영혼이었고
고통의 근원이었으며 삶의 목적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자화상 프리다의 이마에 디에고를 새겨넣었다.

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생과 예술을 꽃피운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두 사람은 애증의 연인이자 예술적 영감의 상호 교류
이념과 예술을 서로 교감하는 투쟁의 동지였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구름다리로 연결된 서로 다른 두 채의 집에서
각각 그림을 그리며 구름다리 너머로 서로의 사랑을 전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동료로 스승과 제자로 서로를 도왔지만
서로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Diego and I, 1948]


프리다 칼로는 2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디에고 리베라의 세 번째 아내였지만
지칠 줄 모르는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의 유희는
프리다 칼로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망가진 몸뚱이로 생명의 잉태를 꿈꾸듯
그녀는 육신만큼 망가진 자신의 가슴에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사랑을 새겨 넣었다.

자화상에서의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의 이마에 박힌
자식이자 연인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예술로서 승화시켜 나갔으며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결코 잃지 않았다.





[조부모와 부모와 나, 1936]


프리다는 1936에 그린 그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잘 얘기하고 있다.
유럽인이었던 아버지와 인디오의 피를 물려받은 어머니를 둔 프리다는
멕시코의 원주민이었던 외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았다.
프리다는 가족의 뿌리와 멕시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중요시했다.





[여동생 크리스티나 Christina의 초상 , 1928]


디에고 리베라의 지칠 줄 모르는 애정행각은
그녀를 멍들게 했고, 고통의 도가니로 몰고갔다.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디에고의 깊은 관계를 알고
큰 충격을 받은 프리다는 별거에 이르렀고 이혼을 하게 된다.

프리다는 이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 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940년 디에고와 다시 재결합을 시도한다.





[The Two Fridas, 1939]


두 명의 프리다...
디에고가 다른 여인들과 관계에 빠져있는 동안
구름다리 너머로 프리다는 존재가 분열되는 고통을 견뎌야했다.

디에고를 사랑하지만 독점할 수 없는 남자였으며
디에고를 사랑할수록 프리다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갔다.

또 하나의 프리다는 고독과 아픔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녀의 꿈이다.
웨딩 드리스를 입은 프리다의 심장은 비어 있고 동맥은 끊어져 있다.
프리다에게 이별은 자아가 두 개로 분열되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The Little Deer]


상처입은 사슴...

프리다의 생일은 아즈텍 달력에서 사슴의 날이다.
사슴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사슴의 몸을 하고
온몸에 화살을 맞은 프리다가 등장하는 그림을 그린다.

뱃속의 아이까지 잃은 프리다는
디에고로부터 화살에 맞은 사슴처럼 잔인한 슬픔을 당하면서도
끝내 사랑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재결합을 하게 된다.





[Henry Ford Hospital]


떠 있는 침대...
갈가리 찢진 마음으로 그려낸 자화상...

프리다는 사고와 잇단 수술로 디에고의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세 번의 유산을 겪고난 후 프리다는
유산에 대한 고통과 아이에 대한 갈망을 그림으로 남긴다.





[Tree of Hope, 1946]


희망의 나무여 우뚝 솟아라...

사고의 고통으로 돌아 누운 프리다의 곁에는 고대의 의상을 입고
다시 희망이 솟기를 기원하는 또 한 명의 프리다가 있다.
고통의 여정을 넘어 단련된 삶의 의지가 나타나는 작품이다.





[The Love Embrace of the Universe,the Earth (Mexico),Me,and Senor Xolotl, 1949]


우주와 지구, 그리고 멕시코에서 나와 디에고...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그의 삶의 기록이다.
벌거벗은 디에고를 안고 있는 자신과
그들을 안고 있는 여신(땅)은
조국 멕시코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다.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한 사랑을 모성애로 승화시키며
여성으로서의 자신과 작가로서의 자신을 성숙시켜 나간다.

1949년 우주와 대지의 여신에 안긴 프리다는
아기의 모습을 한 디에고를 품에 안고 있다.

프리다는 개인적인 아픔을 넘어서
더 넓은 차원에서 디에고와의 사랑을 완성해나간다.





[The Broken Column, 1944]


부서진 기둥...

32번의 수술
육체의 고통은 평생 프리다를 따라 다니는데
자신의 고통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 1940]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

바닥에 잘린 머리카락이 널려있고
가위를 쥔 채 남장으로 앉아있는 자화상은
남편 디에로 리베라로부터 이혼 강요를 받은 후
그녀의 마음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한동안 미국에 건너가 머물면서
두 세계의 사이에 서 있는 자화상을 그린다.

프리다는 아즈텍의 해와 달이 있는 멕시코와
공장과 기계문명이 지배하는 미국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내 치마가 저기 걸려 있다...

1933년 작품으로 뉴욕시내에 걸린 프리다의 옷은
마음은 없이 몸만 미국에 존재하는 프리다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My Nanny and I, 1937]

유모와 나...





[What the Water Gave Me, 1938]

물이 내게 주는 것...





[Self-Portrait with Loose Hair]

머리를 늘어뜨린 자화상...


프리다의 작품은 미술, 사진, 그림, 문학 등
여러 방면의 작가들이 프리다를 주제로
또 다른 프리다를 재창조해냈다.

페미니즘의 영원한 화두를 던지는 프리다...
페미니스트의 관심의 대상인 프리다...
멕시코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프리다...

그녀가 쓴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
...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

프리다는 마침내 생의 고통을 떨치고
삶과 죽음이 하나인 곳
멕시코의 자연 속으로 돌아갔다.

프리다가 죽은 뒤 일 년 후에 디에고는 프리다의 초상화에

... 항상 나의 눈동자로 남을 프리다에게 ...

라고 새겨넣었다.
프리다가 떠난 후 2년 뒤에
디에고도 사랑하는 프리다 곁으로 떠났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는
도시 곳곳에서 살아있는 그들을 만날 수 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인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멕시코 미술사의 살아있는 신화적인 존재로 남게 된다.

... 삶이 무기력해지고 권태로우면 ...
... 멕시코로 떠나 불꽃 같은 삶을 산 ...
... 그들을 만나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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