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5가지 오류

同黎 2012. 8. 15. 22:10

역사는 민족의 영역인가? 1

- 유사역사학의 5가지 오류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의 첫머리입니다. 여기서도 잘 알 수 있듯이 한국사는 국사, 한민족사로 완전히 자리잡았고, 한국사 혹은 국사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영광된 면모를 드러내는 것으로 흔히 들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유사역사학”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신화와 종교, 그리고 역사의 영역을 혼동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사역사학은 역설적이게도 지금까지 민족주의 사관 일변도를 걸어왔던 역사학계를 식민사관론자라고 비판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고대사연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고려-조선시대 사에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역사가 과연 민족의 영역인지에 대하여 의문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지금까지 한국사가 걸어온 민족주의의 길이 올바른 것이었는가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유사역사학은 물론이고, 기존 학계에서도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사의 발전 단계가 서양의 발전단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여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서양사, 혹은 일본사의 개념에 끼워 맞춘것이 많습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서양의 정당정치 혹은 양당정치에 비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했던가? 라는 반골적 질문은 역사학 자체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의문의 결과로 기존까지의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에 오류가 많다는 점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본 강의에서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오류와 극복에 대하여 3회에 걸쳐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유사역사학의 오류들입니다. 사실 여기서는 구체적인 지명이나 인명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한 부분은 이미 이문영씨의 <만들어진 한국사>라는 책에서 자세히 검증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루고자 하는 오류는 차라리 유사역사학의 위험성이라고 할 만한 점들입니다. 마냥 한국사를 부풀리고 시대를 올리는 것이 현대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이 강의를 통해 조금이나마 밝히고 싶습니다.


첫째, 한민족이 혈연적으로 단일 민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민족이 혈역적으로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인은 크게 2가지 계통으로 분류되는데 북방계와 남방계가 그것이라고 합니다. 역사학적으로 보아도 북방계의 부여, 고구려계통과 남방계의 삼한계통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사에는 역사적으로 수 많은 귀화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일본, 몽골, 거란, 여진 등 수 많은 귀화인들의 피가 이미 섞인 것이 한국입니다. 또 조선시대 압록강 인근에 살았던 많은 여진인들 역시 이제는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저항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진 일종의 “이데올로기” 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일본인이 만든 것을 답습한 것입니다. 일본은 스스로를 천황의 후손으로 자처하며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했는데, 분명히 아이누와 류큐라는 다른 민족체가 존재해왔습니다. 애초에 단일한 민족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단일한 민족사를 건설하려는 것은 육지와는 다른 역사를 가졌던 제주사, 압록강 두만강의 경계에 살며 어쩌면 소수민족으로의 삶을 살아왔던 여진족의 역사한국사의 다양한 주체들의 역사를 은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 민족사와 지역사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최대로 확장해보자면 현재 중국 영토의 거의 전체(티벳과 위구르를 제외한)는 물론이고 일본, 심지어 티벳이나 북아메리카 까지도 우리 민족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유사역사학자들 스스로도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제거하고 보아도 중국 대부분이 한국사의 영역입니다. 그럼 생각해봅시다. 그 땅에 다 우리 역사의 영토였다면, 거기에 살고 있던 수 천만 - 또 그들의 후손으로 살고 있는 수 억명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겠습니까? 나라는 바뀌었어도 거기에 살고 있겠죠? 그 사람들은 중국인입니까? 한국인입니까? 설명 생물학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도, 지금의 중국인들이 한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유사역사학에 의하면 아주 변방에 불과한 한반도에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이처럼 유사역사학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사를 한국인들이 연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 수 많은 사람이 다 이 좁은 한반도에 집단 이주했을리도 없고 (참고로 한반도의 인구가 천만을 넘은 건 조선 영조 때라고 합니다.), 결국 유사역사학에서 말하는 저 장대한 역사의 주인공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현재 중국 땅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역사이기 때문이죠. 지역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반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한반도에서 있었던 이 땅의 역사를 우선적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유사역사학에서 말하는 역사의 주무대는 한반도가 아닙니다. 이처럼 유사역사학은 민족사와 지역사의 개념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그 역사와 현재와의 관계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셋째, 일제의 제국주의 사관,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유사역사학자, 혹은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를 목에 핏대를 세우면 비판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랑스러운 민족사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목적론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일본과 중국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며, 누가 더 잘, 더 심하게 왜곡하나 경연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사역사학은 일본의 식민사관, 중국의 중화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민족이 과거 동북아지역을 제패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도 다른 국가나 민족에 대하여 우월하며, 인종주의적 태도를 보여도 된다 라는 주장이 유사역사학을 활용하는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이와 똑같은 주장이 일제가 임나임본부를 이용하여 한반도를 침략하고, 또 일본인과 조선인을 1등민족과 2등민족으로 나눌 때 사용되었습니다. 중국의 중화주의적 사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과거 아시아의 패자였기 때문에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가 뭉쳐야 한다는 생각은 한국의 유사역사학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 유사역사학의 논리대로 하자만 위대한 조상들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바보들입니다. 즉 조선시대사는 위대한 조상들을 계승하지 못한 바보 나라죠. 이러한 주장은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인들이 하는 조선무능론과 똑같습니다. 5백년 동안 이어져온 조선 나름대로의 정치와 제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식민지가 된 이유는 그 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겠죠.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같은 민족일지 아닐지도 모르는 과거 청동기시대인들과 조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관념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영웅주의 사관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유사역사학에는 넓은 영토를 확장하고, 다른 민족을 정벌한 지배자, 즉 영웅들의 모습은 나타나지만 이러한 명령을 실제로 수행했던 이들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즉 유사역사학의 역사는 철저히 환인 내지 환웅, 단군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지배계급 중심의 역사입니다. 그 저변에 일반 民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보이지 않죠. 이러한 사관은 일제시대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입니다. 신채호, 박은식 선생 등이 대표적인데, 일제에 의해 한국사가 폄하당하자 을지문석, 광개토대왕, 이순신 등 영웅적 면모를 가진 이들이 조선에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 분들도 이러한 영웅사관을 끝까지 고수한 것은 아닙니다. 신채호 선생만 해도,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 거기에서 또 무정부주의(아나키즘)으로 자신의 사상을 확장해나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민족주의적이었던 신채호선생이 민족의 실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로 변화해갔던 이유를 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영웅주의 사관을 그대로 고수하면 영웅이 나타나기 전에는 독립이 이루어질 수 없죠. 그러나 독립을 수행하는 것은 실제로는 민중들이기 때문에 신채호 선생의 생각도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유사역사학은 여전히 영웅주의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는 지배계급에 의해서만 역사가 발전한다는 제국주의 사관의 모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유사역사학에는 오로지 정치사만이 존재할 뿐,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등 그 시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구는 전무합니다.


다섯째, 지배계급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동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유사역사학은 다분히 국수주의, 인종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양의 역사에서도 잘 볼 수 있듯이 독재자가 내부의 불만을 종식시키고 그 불만을 외부에 돌리기 위하여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입니다. 실제도 지금도 국내적으로 불편한 일이 생기면 곧잘 독도나 역사 왜곡 문제가 터지지 않습니까? 유사역사학은 이러한 민족주의적 감정의 골을 더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이주노동자(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향을 생각하면 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라도 조상의 과거가 화려했다면 기분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문제입니다. 역사 역시 현재성이 제거된다면 그냥 과거를 기록한 자료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사역사학은 식민사관의 극복을 이야기하지만 반대로 유사역사학은 여전히 식민지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식민사관을 진실로 극복하려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고, 식민사관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민족주의, 인종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