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詩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기타만 기억하네 - 박정대

同黎 2013. 6. 28. 12:33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기타만 기억하네


                                                         박정대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걸어 왔는지

바람이 깍아 놓은 먼지조각 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네

가슴 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 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 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홀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 앞에 망연히 서 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