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名器)와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히가시야마시대(東山時代)에 다회(茶會)가 행해지면서 이에 다기(茶器)의 필요성이 생겼는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 이래 역대 쇼군(將軍)의 선례와 달리 다수의 서화·집기를 수장한 것은 필경 이러한 필요에 기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이것이 우연하게도 명나라 전성기에 해당하고 명나라에서 송나라·원나라의 서화·기구가 대단히 윤택할 때에 적극적으로 명품을 일본으로 수입할 수 있던 것은 실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행운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다례(茶禮)에 사용하는 차이레(茶入), 다완(茶碗), 하나이레(花入), 향합(香合)류는 적어도 가마쿠라시대부터 수입되어 이후 필요에 따라 점차 증가되었다. 모두 히가시야마 시대에 수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