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원생의 일상

근황 12.06.16

同黎 2012. 7. 26. 03:09
 
근황 12.06.16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비가 올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은 흐린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바쁜 척을 하느라 날씨 따라 기분이 좋지 않더니 어제 발표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이젠 모든 것이 그냥 좋아 보입니다.
논문의 초고에 해당하는 글을 선생님 앞에서 발표했습니다. 이 글을 쓰느라 한 달 정도를 고스란히 바친 듯합니다. 이백 여개의 각주에는 수 십 개의 연구사와 사료들이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역사논문이라는 것은 수많은 연구사와 사료가 마치 지층처럼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과 사실의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마치 대리석의 생성과 같이 서로 융합하는 화학적 결합을 거쳐야 하겠지요.
...
논문을 준비하면 사람의 성격이 약간 이상해진다는데,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방의 세상과 단절된 체. 그저 글만을 고민하면서 살았습니다. 자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새벽 다섯시에 짜증을 내며 글을 쓰려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남의 잘못에도 화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 자신을 보며 낯설어졌습니다. 본래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그 정도가 이 렇게나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수 없이 자괴와 교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습니다. 선학의 연구를 넘을 수 없다는 자괴와 사료를 마음대로 해석하는 교만입니다. 이 두 가지 감정은 글쓰기를 겁나게 하고 결국 제가 쓸 수 있는 문장은 하루에 서너 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문득 영감이 폭발할 때는 잠을 이루지 못한 체 다시 글쓰기에 매달렸습니다. 끊임없이 교만과 자괴의 선을 넘나들며 자숙하고 정돈하여 30페이지의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물론 부족한 글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글을 완성했다는 만족감에 행복합니다.
나 자신 만의 글을 쓴다는 긴 장정의 도중에 한 구비를 돌았습니다. 며칠만 쉬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재정비하려고 합니다. 지금 제 손에 쥐어져있는 글은 비문과 비약 투성이지만 잠깐만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글을 마친 포만감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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