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25호 투고)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의 구속에 부쳐
박세연(한국사 연구노동자)
얼마 전 전공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북한 학자의 논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렵게 열람할 기회가 있었다. 신분증 제출은 물론이고 서약서까지 쓰고 본 그 논문은 그러나 실망을 넘어 북한 학계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는 놀라움이 들만큼 초라했다. 북한의 유일한 역사 학술지에 실린 그 논문은 정권에서 원하는 이야기를 시대만 바꾸어 서술하고 있는데 불과했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한 결과였다.
해방 전후에 이름을 날렸던 비판적 지식인들은 남한의 반공주의를 견디지 못하고 상당수 월북하였다. 그리하여 1960년대까지 적어도 한국사 영역에서 북한에는 백남운을 비롯한 유수의 연구자가 탁월한 성과를 내었고, 그 글들이 일본을 통해 몰래 남한에 흘러들어와 한국사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지배권력에 의해 감시되며 한 하나의 학술지를 통해 발표되어야만 하는 북한의 역사연구는 정체를 넘어 후퇴하였고, 결국 내가 본 북한 최고 대학 교수의 논문은 남한 학부생의 레포트만도 못한 수준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21세기의 남한사회에서는 이와 똑같은 시도가 박근혜 정권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진 그 낡은 검열은 그들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조차 보장한 학문의 분야까지 밀려들어왔다. 서점과 헌책방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고, 또 누군가의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을 모아놓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가 국가보안법의 사슬에 묶여 철창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기막힌 현실을 우리는 또 대면하고 있다. 해군사관학교의 교수사관으로 있던 대학원생이 정체도 모를 불운서적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당해 수년간 고통당했던 것이 바로 몇 년 전이다.
80년대와 같은 명확한 방향성을 잃은 역사학계는 좋게 말하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나쁘게 말하면 방황하고 있다. “연구실과 세미나에서 더 이상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며 어느새 한 시대가 끝난다는 데 놀랐다”던 한 선배 연구자의 회상은 그동안 학계가 얼마나 변했는지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의 여전히 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젊은 연구자들은 과거 선배들이 벌였던 논쟁을 재검토하고 혹시 우리나 놓쳤던 것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 그 토대를 노동자의 책에서 제공하고 있기에 연구자들은 노동자의 책에 빚을 지고 있다. 노동자의 책은 과거의 선배들이 벌였다는, 그러나 이미 대학사회에서는 점차 사라져가 공부할 수도 없었던 그 치열한 논쟁의 흔적들을 다시 찾아 곱씹을 수 있게 해준 보물창고였다.
지배자들은 눈먼 자들의 도시를 원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돈과 법은 아름답고 질서있게 보이지만 사실 사람들의 눈을 가려 그들의 지배에 순응하게 만드는 가림막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책은 우리에게 눈뜬 자들의 도시를 원했던 사람들이 싸우며 밝힌 촛불들이 모여 밝힌 등대이다. 비록 사람은 떠났어도 그 뒤를 잇는 다른 사람들이 또 나타나는 것은 등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책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디 우리에게 노동자의 책이 다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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