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1일 - 이와데1 (네고로지根来寺1)

同黎 2016. 9. 5. 02:56



11일째 아침. 나와 이행묵은 와카야마를 보고, 심희곤은 오사카 주유패스가

아까워 오사카를 본 뒤에 다시 만나 나고야로 이동하기로 한다.

킨데츠 특급 시간이 6시, 닛폰바시에서 난바까지 짐을 가지고 가야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

이행묵은 쳐자는 중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네고로지이다.

워낙 교통편이 불편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사용하려면 아침 일찍 난카이선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타루이역 도착

여기서도 한참을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버스 시간이 안 되어서 주변을 살펴본다.

역은 황량하다.


주변은 공업단지인 듯


조금 무서운 느낌도 든다.

그래도 긴키대학 통학생들이 조금 있었다.


네고로지행 버스 정류장


시간표 중에 아래쪽 긴키대학 경유라고 되어 있는 것만 네고로지에 간다.

하루에 사실상 3편(7시 40분 차는 타봤자 절이 열지 않는다.)이며 나오는 버스 역시 12시 즈음이면 끊긴다.


평일 타루이역 - 네고로지 시간표


평일 네고로지(이와데시립도서관) - 다루이역 시간표

나올 때는 네고로지에서 직접 나오는 버스는 없다.


뭐 가능한 편하게 다니는 게 좋으니까 시간을 잘 맞추는 것이 좋다.

아니면 JR이와데역에서 그냥 택시를 타는 것(1500엔 정도라 함)이 여러 명일 때는 나을 수도 있다.


버스 시간표를 살피는 중


음 힘들다


버스 시간표 촬영 중


잠깐 시간이 남아 뭔가 사 먹어 보려고 했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인도 커리집....

여길 갈 순 없고


결국 슈퍼 하나를 찾아 식빵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 슬슬 버스시간이 되고


버스에 탑승


20분 정도 소요된다.

버스요금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거의 왕복 천 엔 정도가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리자 큰 길 건너편에 탑두사원이 눈에 띈다.


원래는 이 일대가 전부 네고로지의 말사였다고 하니 군데군데 이렇게 사찰이 남아있는 것 같다.


들어가는 길

이와데시립민속자료관이라는 박물관도 있는데 이날 쉬는 날이었다.


뭐 다음을 기약한다.


네고로지로 올라가는 길

엄청 음침하다


가는 길 옆에 부동당으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데 여긴 나오는 길에 가보기로 한다.


네고로지 경내 안내도

거의 1km 아래에 대문이 있다.

본사와 탑두사원들이 안내되어 있다.


가는 길에 만난 작은 하천


단풍이 조금 남아있다.


들어가는 길 입장료를 내고 버스 정류장을 알려달라고 하니 아예 지도를 보여주신다.

내려갈 때는 대문을 지나 아래쪽의 도서관에서 차를 타야 한단다.


이제 절에 거의 다 와간다.


마지막 관문


네고로지(근래사, 根来寺) 표석

네고로지는 헤이안시대 후기 신의진언종을 개창한 가쿠반(覚鑁, 각번)에 의해 개창된 사찰이다.

가쿠반은 당시 타락해가던 고야산을 비판하며 신의진언종이라는 새로운 교리(사실 그 미세한 차이는

잘 모르겠다.)를 내세웠고, 결국 고야산 전체의 좌주가 되었다. 또한 대전법원을 세워 학문에 힘썼는데

이는 기존 고야산 세력과의 마찰을 빚게 되었다. 그러자 가쿠반 일문은 고야산을 하산하여 지금의

네고로 지역으로 옮기게 되는데 하나 둘 모인 사찰이 고야산 식으로 많아져 이 일대의 사찰을

모두 합쳐 네고로지라고 하게 된다. 마치 곤고부지가 고야산 전체를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커진 네고로지는 한 때 사찰령 72만 석에 승병 1만 명을 자랑할 정도의 거대한 세력이 되었고,

심지어 조총부대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불교 탄압을 강화하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재빨리

항복해 우호관계를 가지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크게 반목하여 그의 군대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에 히데요시는 네고로지는 완전 섬멸해 대사당과 대탑만 남기고 싸그리 불태운 뒤 신의진언종을

교토 지샤쿠인(지적원)의 지산파, 나라 하세데라(장곡사)의 풍산파로 나누어 버린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사면된 네고로지는 막부의 비호 아래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신의진언종

총본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산파나 풍산파에 비해 열세이다.

네고로지 발굴 면적이 400만 평방미터였다고 하나 지금은 그 반의 반에도 못 미친다.

  

계단을 오르니 대전법당이 보인다.


고야산에서부터 전해온 밀교수행의 장이다.


엄청나게 거대한 건물이지만 안타깝게 소실된 것을 에도시대 말기에 재건하였다.

와카야마현 지정문화재


대탑도 보인다


다보탑 형식으로 된 대탑은 억 소리가 날 정도로 거대하다.


고야산의 근본대탑을 네고로지로 옮겨온 것이다. 히데요시도 여기만큼은 손을 대지 못했다.

탑은 조금 이따 자세히 보기로 하고


먼저 대전법당부터 본다.


입장


내부에는 거대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도상이 특이하다.


가운데는 본존 대일여래로 밀교에서 가장 중시되는 근본불이다.


이래봬도 조선이 건국되기도 전인 남북조시대 1387년의 작품이라고 한다.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금강살타보살이 모셔져 있다.

대일여래의 법을 이어받아 밀교의 2대 교주이다.

본래 부처를 수호하던 집금강신이 밀교에서 금강살타로 격이 높아진 것으로 본다.


우측에는 존승불정이 모셔져있다. 역시 흔치 않은 도상이다.

존승불정은 대일여래의 육계에서 그 불법과 지혜가 맺혀 인격화된 것이다.


이런 도상은 일본 전체에서도 흔치 않다.


좌우에는 스님이 서 있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본존 대일여래 앞에는 두 승상이 있는데 아마 홍법대사 구카이와 흥교대사 가쿠반이 아닌가 싶다.


설법을 하는 등고좌


밑에서 본 모습


천정에는 각종 벽화가 화려하다.


이제 대탑으로 간다.

아오 날이 흐리니 사진이 개똥같다.


정상적으로 나오면 이렇게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이 대탑은 공해가 고야산에 지었던 대탑을 모방한 것이다. 일본에는 여기저기

이런 초대형 다보탑인 대탑이 여럿 건설되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존하는 대탑은 이것 하나 뿐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15세기 무로마치시대의 건물로 높이는 무려 40미터, 각 변은 15미터에 이른다.


내부에 들어가볼 수도 있다.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네고로지는 여러모로 너그럽다.


내부는 이렇게 원형 벽에 의해 한번 더 둘러쌓여 있다.


원형 벽 사이의 문으로 들어가면


대일여래와 사방불, 사보살이 모셔져 있다. 태장계에 속한다.

가운데 대일여래와 동방 개부화왕여래(開敷華王如来)


서방 무량수불


북방 천고뇌음여래


남방 보당여래


보살은 각각 보현, 문수, 관음, 미륵이다.


그 아래에는 대사당이 있다.

홍법대사 구카이(공해)를 모시는 곳으로 역시 전화를 피한 건물 중 하나이다.

15세기의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다.


잠시 대탑에서 쉬는 중


거대한 대탑의 모습


기념사진


함께 셀카


탑이 진짜 크다.

이것만 보러 와볼 만하다.



대탑과 대전법당


대사당 정면


중요문화재라는 안내판


대사당 내부


공해의 조각이 모셔져있다.


화려한 천정화


한쪽에는 충혼비가 서 있다.

아마도 태평양 전쟁을 기리는 듯


이제 옆 쪽의 흥교대사 가쿠반의 묘소로 간다.


가는 길에 보이는 수 많은 묘소들


가쿠반에 대한 안내문


수자지장보살들이 나란히 서 있다.


역시 지장보살 석불등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을 살피기 위해 육지장이 나왔다.


어묘로 가는 길


마치 작은 고야산의 오쿠노인을 보는 듯하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고야산 같다.


흥교대사 어묘소라는 표석


작은 다리를 건넌다.


문과 담장에 둘러쌓인 묘소는 고야산을 생각나게 한다.


뒤에는 작은 봉분같은 무덤이 보인다.


저 안에 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듯하다.


뒤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감싸고 있다.


다시 나오는 길


어제 오늘 진언종의 주요 성지들을 다 돌아본다.


이제 정원으로 갈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