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2차

단풍의 간사이 - 7일 교토 라쿠츄1 (라쿠미술관樂美術館)

同黎 2017. 8. 20. 01:23



엔코지 이후 길을 나눠 유선생은 교토고쇼로, 나는 라쿠미술관으로 갔다.

재단법인 라쿠미술관이 청화백자로 새겨진 현판


라쿠가문의 3대 당주인 도뉴(道入)의 작품 중 아오야마라는 이름을 가진

쿠로라쿠다완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기념전이 진행 중


라쿠미술관 현판


평범한 가정집 입구처럼 보이지만 내력이 대단한 집이다.


들어가는 길 작은 석조


들어가는 길


전시실 내부


전시품


이것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아오야마(靑山)


가운데 문양이 특이하다.


후지산을 표현한 쿠로라쿠다완


아카라쿠다완


시로라쿠다완


라쿠가는 센노 리큐가 정한 다도구 장인인 리큐십직 중 다완을 전담한 가문이다. 리큐는 중국에서 건너온 당물다완이나 조선에서 건너온 고려다완을 대신하여 자신만의 미학을 지닌 일본의 다완을 만드려고 했다. 그래서 찾은 사람이 초지로(長次郎)이다.

초지로는 아버지의 이름이 아미타, 어머니의 이름이 비구니로 중국인이라고 전한다. 한국에서는 조선인 출신이라는 말도 있다. 하여튼 기와를 굽던 초지로에게 다완을 굽게 하여 특유는 검은 다완과 붉은 다완을 개발해낸 리큐는 이 다완들은 일본에서 나온 다완 중 최고로 치면 제일을 라쿠, 제이는 하기, 제삼은 카라쓰라는 말로 일본 다완을 정리한다.

사진은 라쿠가의 초대로 일컬어지는 초지로가 만든 이채사자로 중요문화재이다.


초지로는 센노 리큐와 동성으로 알려진 다나카 소케이(田中宗慶)와 함께 가마를 운영한다. 초지로는 소케이의 손녀와 결혼하는데 아들이 있다고 전해지나 일찍 죽었다고 한다. 이후 다나카 소케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즐거운 락(樂)자의 인장을 하사받고 가마의 이름으로 삼았다. 일설에는 히데요시의 교토 저택인 쥬라쿠다이(聚楽第) 공사 중 나온 흙을 사용했다고도 전한다.

여튼 초지로 사후 소케이가 가마를 이어 받고 이후 그의 차남인 조케이(常慶)부터 라쿠라는 성을 쓰고 있으며 아마 3대부터 키치자에몬(吉左衛門)이라는 이름을 습명하게 된다. 사실 라쿠가문의 아주 선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으나 현재는 이 정도로 정리 중이다.


초지로의 다완은 광택이 적고 깊은 색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명 모즈야구로(万代屋黒)


大黑 중요문화재

栗 중요문화재


俊寬 중요문화재

面影


禿

ヲレ


勾当

村雨


隱岐嶋

道成寺


아카라쿠다완도 광택이 없다.

無一物 중요문화재

太郞坊 중요문화재


一文字

白鷺


삼채과문평반


여기는 다나카 소케이(田中宗慶)의 작품

삼채사자향로

이때부터 천하 제일(天下一)이라는 칭호를 쓴다.


天狗

いさらい


初雪


향로모양 수지


아마야키(尼焼)의 작품이라고 전하는 작품

아마야키는 초지로의 어머니라는 설과 초지로의 처라는 설도 있다.


여기부터는 2대 조케이(常慶) 

다나카 소케이의 아들로 센노 리큐가 할복했을 때 그 자식들을 보살펴준 이이기도 하다.

아버지와는 달리 후루타 오리베의 영향을 받아 표현에 변형을 가미했으며

혼아미 고에쓰와의 교류를 통해 3대 도뉴라는 위대한 중흥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黑木

不是


평다완

長袴


국화문 아카라쿠다완

이도형 시로라쿠다완


이도형 아카라쿠다완


아고타(참외의 일종)형 향로

사자향로


이제 천재 예술가 혼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다.

그는 도검의 감정사로 시작해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래에서 공예와 서예, 다도, 회화 등

전방위의 문화를 꽃피운 사람이며 근세 장식예술인 린파를 이끈 사람이다.

작품들을 보면 혼아미 고에쓰는 천재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완사이다.

일본 다완 중 국보로 지정된 건 단 두 점인데, 그 중 하나가 고에쓰의 작품이다.


村雲

얉고 날렵한 입술과 두터운 광택, 긁어낸 유약이 인상적이다.

 

冠雪

立峯


3대 도뉴(道入)

혼아미 고에쓰의 지도를 받아 광택과 추상적 장식을 가하고 그릇의 크기는 크게, 두께는 얉게 만들었다.

역대 라쿠 키치자에몬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木下

殘雪


靑山 중요문화재

흰 유약을 이용해 조릿대 무늬를 넣은 다완


燕児

鵺 중요문화재


山人

僧正

확실히 화려해진 느낌이다.


破れノンカウ

도쿠가와 가문 문장이 들어간 차이레


이채 화병


향합들


녹유 접시

가이세키에 쓰이는 것이다.


도뉴의 동생 도라쿠(道楽)의 작품

広沢


4대 이치뉴(一入)

도뉴의 아들로 좀 더 구상적인 문양을 넣기 시작했다.

또한 검은 유악 안에 붉은 기를 넣는 슈구스리의 유약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嘉辰

曉天


つるし杮

渋杮 떫은 감이라니 이름이 재밌다.


明石

통형다완


수석모양 수지 山川


수지 縄簾


재를 태운 유약인 이유 수지


사자 향로


녹유 접시


역시 접시들


5대 소뉴(宗入) 이치뉴의 데릴사위이다. 다시 소박해져서 초지로를 추구하는 듯한 것이 특징

龜毛

梅衣


比良暮雪


鹿の声

古池


福の神

아카라쿠다완


이유 수지


사자향로


녹유 접시


녹유 그릇


소뉴의 서자로 외가로 입양가는 바람에 따로 가마를 차린 이치겐(一元)

波心


이유 화입

구리로 만든 남만식 화입을 본딴 것이다.


화살통 형 수지


6대 사뉴(左入) 소뉴의 데릴사위로 가문을 이었다.

라쿠가문과 인연이 없었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작품을 남기고 고에쓰를 연습했는데

그가 만든 무려 200개의 연작은 오모테센가 7대 당주가 일일이 이름을 붙여 전해진다.

姨捨黑

ヒヒ


고에쓰의 雨雲을 본딴 것

毘沙門


カイカウ


桃里

橫雲


토끼그림 다완


多福

시로라쿠다완



수지들



각종 접시


7대 초뉴(長入) 사뉴의 장남으로 다도의 대중화와 더불어 조금씩 형식화가 진행되었고

다완의 입부분이 다섯 번 굽이치는 오악(五岳)이 자리잡았다.



팔괘문 화입


말 모양 향로


향합


라쿠집안은 혼아미 고에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일련종을 믿었다.

집안에 직접 만들어 모셨던 일련의 초상조각



8대 토쿠뉴(得入) 초뉴의 장남이었으나 병약하여 금방 동생에게 가독을 이었다.

常盤

통형 다완


萬代の友





9대 료뉴(了入) 8대 토쿠뉴의 동생으로 병약한 형을 이어 가독을 이었다.

화재로 가마와 가게가 불탔으나 센가들의 도움을 받아 가문을 재건하고

작품세계 역시 독창적인 세계로 올려놓아 중흥조라 불리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쿠로라쿠다완

딱 봐도 독특하다.


입학다완

아카라쿠다완


姨捨

아카라쿠다완 고희를 맞아 만든 70개의 다완 중 하나


시로라쿠다완

거침이 없고 현대적인 느낌이다.


수지


화살통형 수지


장고모양 화입


향합


10대 탄뉴(旦入) 료뉴의 차남으로 기슈 도쿠가와가와 깊은 관계를 가졌다.

후지산 문양 다완

破レ窓


千秋楽未央

매화문 다완


秋海棠

라쿠인장을 전면에 찍은 독특한 다완


이라보를 본뜬 다완

카라쓰를 본뜬 다완


화입 巖松


수지


향합


센노 리큐 초상조각


11대 케이뉴(慶入) 10대 탄뉴의 데릴사위로 가독을 이었다.

이 때는 대정봉환이 있던 혼란한 시기이자 다도의 침체기로 라쿠 가문도 화재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이 때 독특한 자신의 개성으로 라쿠가문을 재건한 인물이다.

入舟

大空



潮干


다른 가마에 대한 연구도 보인다.


쿄야키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도시락통


수지


거위모양 향로


향합


12대 코뉴(弘入) 케이뉴의 장남으로 이 당시는 다도의 침체기로 주로 작은 작품을 만들었다.

寿賀

漁舟


초지로 삼백주기를 기념해 만든 다완

龜背


楓錦

빗자루 무늬 다완


중국 청동기를 본딴 수지


오쓰에를 본따 그린 다완

오쓰에는 오미지방의 민화이다.


13대 세이뉴(惺入) 코뉴의 장남으로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아들은 전쟁터로 보냈지만 다도를 연구하는 잡지를 발행하여 다도의 명맥을 이었다고 평가받는다.

荒磯

若草




화입들


수지


포대화상 향로


14대 카쿠뉴(覚入) 13대 세이뉴의 장남으로 전쟁의 시기가 끝났을 때 본격적으로 가문을 이끈 인물이다.

도쿄예술대학을 나와서 현대적 예술을 공부했으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라쿠미술관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전통적 다완과 현대적 다완을 모두 만든 인물이다.











15대 현 당주인 키치자에몬이다. 16대에게 가독을 물려주면 또 호로 불릴 것이다.

도쿄예술대학을 나오고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했으며 유럽에서 유학한 영향인지 독특하고 과감한 작품을 많이 내놓는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데 내가 보기엔 좀 과한 작품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차이레를 쓸 수 있을까?

찻 자리에서 너무 튈 것 같은데






이렇게 라쿠미술관을 다 돌아봤다.


호리카와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 오래된 다리가 나온다.


호리카와 제일교라는 다리


아래에서 본 모습


에도시대 교토고쇼와 니조성을 잇는 다리라고 하며 현재 다리는 1873년 세운 것이라고 한다.

현재 교토시 유형문화재이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호리카와 공원


반대편. 고즈넉한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