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4차 東京, 東北

동일본대탐험 - 6일 유시마성당湯島聖堂

同黎 2018. 7. 12. 20:07



오차노미즈역을 건너가면


바로 유시마성당이 보인다.


나무가 많은 유시마성당 내부


육교를 넘어 바로 서문으로 들어간다.

멀리 보이는 건 정문인 입덕문


서문으로 입장


유시마성당이라고 해서 많은 이들이 성당(?)이라고 오해하는데 천주교와 전혀 관계없다.

여기서의 성당은 공자묘, 우리로 치면 문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유교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유시마성당(湯島聖堂, 탕도성당, 유시마세이도)은 에도시대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가 세운 공자묘로 막부 직할의 학문소이기도 하다. 유시마성당은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하야시 라잔이 우에노 사저 내에 건설한 시노부가오카성당(忍岡聖堂)을 전신으로 한다. 이후 츠나요시가 직접 대성전이라는 편액을 하사하고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후 성당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후 화재로 건물이 몇 차례 소실되고 막부에서도 중시하지 않아 점차 황폐화된다. 특히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주자학보다 의학, 법학, 수학 그리고 서양에서 온 난학 등 '실학'을 중시여기면서 유시마성당의 폐지까지 고려한다.

그러다가 18세기 텐메이의 대기근 등으로 막부의 권위가 떨어지자 차츰 유학 보급을 통해 상하질서를 바로잡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대대로 막부의 유학두를 하고 있던 하야시 가문의 주장과 역시 막부의 개혁을 꾀한 무츠 시라카와번주이자 막부의 로주인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에 의해 이른바 '칸세이의 개혁' 중 '칸세이의 이학 금지(寛政異学の禁)' 때문에 주자학을 제외한 다른 학문이 억압되면서 주자학의 중요성이 커진다. 유시마성당도 이에 따라 하야시가의 사숙에서 벗어나 막부 직할의 학문소가 되고 내부에 쇼헤이자카학문소(昌平坂学問所)라는 기구를 설치한다. 본래의 작은 건물도 커져서 대성전을 비롯한 건물이 2.5배로 커지고 건물로 검은색으로 칠하게 된다. 지금의 모습은 이 때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 것

이후 메이지정부에 의해 학문소가 폐쇄되지만 이 땅에 츠쿠바대학과 오차노미즈 여자대학이 세워져서 학문의 중심지라는 이름은 이어갔다. 이후 유시마성당은 일본 최초의 박람회장이 되고 이후 도쿄국립박물관 건물로 쓰이기도 했다. 또한 도쿄사범학교(츠쿠바대학)과 도쿄여자사범학교(오차노미즈 여자대학)가 일시적으로 건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일대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입덕문과 테미즈야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붕괴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35년 철근콘크리트로 재건하였다. 다만 일본에서는 한국의 성균관 같은 기구는 없고 대성전에서도 주인을 찍어주고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부적을 사고 오미쿠지를 뽑는다. 거의 신사인 셈


한켠에 대지진 때 무너진 석물들이 남아있다.


바로 대성전의 입구인 행단문이 나온다.


행단문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하여 문묘의 별칭을

행단이라고 하고 문묘나 향교에는 은행나무를 심는 풍습이 있다.


행단문의 행단도 거기서 유래된 것

글자는 도쿠가와 종가의 16대 당주인 도쿠가와 이에사토의 글씨


건물이 온통 검은칠이 되어 있다.


대성전


좌우로


회랑이 들어서 있다.


대성전 정면

내부는 토, 일요일과 휴일에만 공개된다.

지금 건물은 쇼와시대에 재건된 것


대성전 현판

황족의 글씨라고


내부


가운데 공자의 목상을 중심으로 맹자, 안자, 증자, 자사자의 오성이 모셔져 있다.

한국에서는 맹자가 나이순으로 맨 끝인데 여기서는 맹자가 두 번째다.


공자


맹자


안자, 안회


증자


자사자


행단문 내부


한쪽에 유시마성당과 쇼헤이자카학문소의 설명이 있다.


대성전


규모는 꽤나 크다.


이제 아래로 내려간다.


입덕문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로 18세기 초에 지은 건물이다.


밖에는 대형 공자상이 있다.

대만 라이온스클럽에서 기증한 것인데 공자상 중에는 제일 큰 것이라고


여기서 놓친 건물

신농묘

농사와 의학의 신인 신농을 모셨다.

본래 3대 쇼군 이에미츠의 명으로 세운 것인데 이후 메이지시대에

혼고에 있는 키타무라가로 이전했다가 쇼와시대에 다시 이곳으로 이축했다.

 

내부에 모셔진 신농상


특이하게 생겼군


나오는 길의 앙고문

유시마성당의 정문


표석


앙고문 앞에는 히지리바시라는 다리가 있다.


오차노미즈 전경


이제 열차를 타고 우에노로 돌아간다.


오늘은 많이 안 다니는 날이다.